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 차로 서울왕복 여행을 계획했으니 무모했달까, 그러나 어쨌든 결과는 아주 나쁘지 않았다
 이 차로 서울왕복 여행을 계획했으니 무모했달까, 그러나 어쨌든 결과는 아주 나쁘지 않았다
ⓒ 김수복

관련사진보기


운전경력 6년이라지만, 말이 좋아 6년일 뿐 시속 백 킬로만 넘어서면 다리가 후덜거리고 차량 또한 비틀거리는, 기계치인 주제에 태어난 지 열다섯 살이나 된 고물차를 타고 있는 내게 기묘한 미션이 떨어졌다. 서울에 와서 사람 한 명을 태우고, 그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옷가지며 생활용품을 실어가라는 내용이었다.

고속도로는 딱 세 번, 그것도 다른 사람의 꽁무니를 따라가는 방식으로나 들어가 봤을 뿐이고, 복잡한 도심의 거리는 고창에서 사십여 분 거리인 광주까지, 그것도 금남로 같은 중심가 쪽으로는 감히 들어갈 엄두도 못 내고 변두리에서나 빙빙 돌다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서 돌아온 게 전부인 내게 서울특별시로 진입하라는 것은 죽을 각오가 전제된 모험을 해보라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정리하자면 아마 이런 얘기쯤 될 것이다. 목숨이 아까우냐? 죽을까봐 겁이 나? 그러면 포기해라. 목숨보다도 고독이 더 무섭다면 도전해 보라. 그러나 명심하라. 이십 년 가까이 홀아비로 살아온 적막한 너의 인생에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잊지 말라.

"나를 좀 데려가 줘요. 내 발로 걸어서 전철 타고 버스 타고 또 버스를 타는 그런 복잡한 방식으로는 안 갈 거예요."

전화기 속에서 그녀는 그렇게 속삭이듯이 말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내가 잘못 들은 소리인지도 모른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녀의 또 다른 소리를 듣고 있었다. '내 인생에서 한 번쯤은 그런 호사를 누려도 되지 않나요?'하는 소리를.

나는 아마 서른 번쯤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가자, 안 된다, 가자, 안 된다. 그러다가 결국 죽어도 좋다는, 아니 목숨을 걸어볼 만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고 말았다. 어쩌면 명실이 상부하게 '내여자'라고 부를 수 있는 그녀, 그녀가 내 옆으로 오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그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사실 미치지 않은 이상은 꿈에서도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운전이나 자동차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나는 운행 중에 자동차가 우뚝 멈춰 버리는 식의 어리둥절한 사고를 당한 적이 아직은 없었다. 다만 연식이 오래된 차를 운전하다 보면 그런 황당한 사고를 겪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이중으로 겁이 나 있기는 했지만 그녀에게 그런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내 차가 아주 고물이고, 나는 운전을 잘 하지도 못하는 데다 겁이 엄청 많아서 서울진입은 안 된다 하는 말을 어떻게 감히 입에 올릴 것인가 말이다.

어쨌든 결심은 섰다. 죽어도 좋다는 쪽으로. 그리하여 다음 날부터 준비에 착수했다. 포털 사이트를 뒤져 그녀가 사는 동네에 이르는 쉬운 방법을 찾아서 숙지했고, 타이어 공기압을 확인했고, 작년에 동생이 필요할 때 쓰라고 내려놓고 간 구닥다리 네비게이션을 꺼내서 사용방법을 익힌 다음 모의주행까지 몇 번이나 해 보았다.

내가 운전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굳이 자동차를 두고 있는 까닭은 농촌의 특성 때문이었다. 버스가 두 시간 간격으로 있다거나, 오후 여덟 시면 막차가 끊긴다거나, 택시를 타면 왕복요금을 지불해야 한다거나, 등등 그런 농촌의 특성이 나로 하여금 자동차 운전을 배우게 했다고 보는 게 옳았다. 때문에 그동안 내가 차를 몰고 다닌 길은 거의 한정되어 있었고, 토끼처럼 아는 길만 다니는 내가 네비게이션을 사용해야 할 일은 사실상 없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 네비게이션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것 참, 사용방법을 익히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지시하는 대로만 하면 서울 아니라 별 곳이라도 거뜬히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출발시간은 새벽 다섯 시로 잡았다. 그 시간에 출발하면 아무리 느긋하게 천천히 달린다 해도 열 시 이전에 그녀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에게도 그렇게 큰소리를 뻥뻥 쳐두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첫 번째 사고는 너무너무 창피해서 말도 안 나오게시리 집 앞에서 일어났다. 마당에서 대문 밖으로 후진을 하던 중에 옆집 담벼락에 꽁무니를 들이받고 말았다. 우지끈 쿵탕, 소리가 어찌나 크게 났던지 마을의 개들이 어둠 속에서 일제히 짖어대기 시작했다.

지난 6년 동안 적어도 구백 번은 후진과 전진을 했던, 오른손으로 왼손의 가려운 곳을 눈 감고도 긁어줄 수 있듯이 그렇게 익숙하게 빠져나가야 마땅한 집 앞에서 범퍼 한쪽이 댕강 떨어져 나갈 정도의 요란한 사고를 내버린 나는 요새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멘붕에 빠지고 말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불길한 징조인가? 여기서 그만둬야 하는가? 아니 그럴 수는 없었다.

후진 중에, 그것도 집 앞에서, 이런 사고를 내는 사람이 세상 또 어디에 있을지
 후진 중에, 그것도 집 앞에서, 이런 사고를 내는 사람이 세상 또 어디에 있을지
ⓒ 김수복

관련사진보기


두 번째 사고는 군산을 지나면서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고창에서 서울을 가자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다가 군산 지나 서천 못 미쳐 어딘가에서 공주 쪽으로 빠졌다가 경부선을 타야 했다. 출발 전에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고, 네이게이션 또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놈의 네비게이션이 오작동을 일으켰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어딘가를 잘못 만졌던 것인지 느닷없이 주행안내가 중단되고 게임 모드로 전환되어 있었다.

어라 이게 뭐냐, 하는 사이에 나는 이미 군산을 지나 있었고, 공주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보면서도 그쪽으로 빠져야 한다는 결정을 선뜻 못 내린 채로 기연가미연가 하는 사이에 지나치고 말았다. 지나고 나서야 아차, 했지만 이미 늦었다. 하는 수 없이 서천 요금소에서 곱게 요금을 지불하고 요금소 직원에게 "제가 공주쪽으로 빠지는 길을 놓쳐버린 게 맞죠 잉?"했더니 그렇단다. 일단은 나갔다가 반대 방향으로 다시 들어가야 한단다.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야 한다는 것쯤이야 난들 모르나, 어쩌고 그렇게 혼잣말을 해대며 나왔는데 얼씨구나, 이건 또 뭔가. 아무리 가도 반대 방향으로 들어가는 길이 안 보인다. 어찌어찌 겨우 길을 찾아서 고속도로 입구에 도착하고 나서야 내가 초기에 유턴 지점을 그냥 통과해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 바람에 한 시간 가까이를 그냥 도로에서 허비해 버렸다.

아 이거 내가 지금 흥분해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흥분을 좀 가라앉히자는 생각으로 휴게소에서 이십여 분씩 두 번이나 쉬어주기도 했지만, 서울이 가까워질수록 내 머릿속은 금방 뚜껑이 열릴 듯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안성 분기점 근처 어디서부터였을 것이다. 아까도 안성이었는데 한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안성 부근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고, 큰소리 탕탕 치며 그녀에게 약속한 시간 열 시는 이미 코앞을 넘어서 똑딱거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세 번째 사고가 없었다면 그것도 아마 이상한 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 세 번째 사고가 있었다. 운전도 제대로 잘 못하는 주제에 차선을 바꿔 끼어들기를 시도하다가 이름도 어렵게 아름다운 제네시스 백밀러를 스치고 말았다. 내 관점으로는 살짝 스친 것이지만, 자동차 소유주의 판단으로는 양쪽 백밀러를 통째로 다 갈아야 하는 사고였던 모양이다. 죄송, 죄송, 보상, 보상, 그 끔찍한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었던가.

안성을 빠져나와서 그럭저럭 잘 달리던 자동차는 양재동 근처에서 또 한 번 걸리고 말았다. 이번에는 가다 서다 정도가 아니었다. 아예 그냥 서서 잠이나 자는 게 낫겠다 싶은 정체가 한 시간도 넘게 이어졌다. 어쨌든 이제 서울이었다. 나를 기다리는 서울의 그녀는 전화기 속에서 "어디에요? 왜 아직도 거기 있어요?" 하고 있었다. 시간은 열두 시를 넘었다. 할 말이 없었다.

양재동을 지나 한강다리를 건널 즈음 그때까지 내내 잠자고 있던 네비게이션이 갑자기 주행안내를 시작했다. 야 이거 상서로운 조짐이로구나, 하고 속으로 얼마나 기뻐했던가. 그런데 아니었다. 한강다리를 지나서 서울 하고도 북부지역, 가난한 사람이 가장 많이 산다는 그 동네에 이르렀을 때 나는 완전히 혼란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네비게이션의 아가씨가 지시하는 대로 이리 가라 하면 이리 가고, 저리 가라 하면 저리 가기를 얼마나 했지만 도대체가 말도 안 되는 일만 반복되고 있었다. 가야 할 곳이 저기 어디인 것은 알겠는데 길어봐야 이백 미터도 채 안 되는 그곳에 이르는 정확한 길을 네비의 아가씨는 안내해 주지를 못하고 있었다. 오십 미터 전방에서 좌회전을 하라 해서 좌회전 준비를 하고 보면 좌회전 금지라는 경고문이 나타나고, 삼십 미터 전방에서 우회전 하라 해서 그렇게 하려고 보면 커다란 가위표와 함께 진입금지 일방통행, 하는 식이었다.

오, 무슨 이런 빌어도 못 먹을 일이 다 있단 말인가. 내 비록 죽음을 각오하고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이것은 아니다, 아니란 말이다. 나중에는 네비 아가씨의 지시를 무시하고 내가 아는 건물만 바라보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방향을 찾느라 좌우를 둘러보게 되고, 그러다 보니 뒤에서 빵빵거리는 소리에 나는 점점 주눅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내게 선경지명 같은 것이 있었던가. 서울에 들어가면 헤맬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생각으로 기름통을 잔뜩 채웠기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나는 아마 멈춰서 버린 자동차 안에서 그냥 배 째라는 식으로 잠이나 쿨쿨 자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어쨌든 나를 기다리는 그녀의 집 근처에 도착은 했다. 시간은 장하게도 원래 예정했던 것보다 세 시간 삼십 분을 지나서 한 시 삼십 분이었다. 아침부터 밥도 안 먹고 기다린 그녀는 짧게 한 마디로 나의 장한 서울입성에 대한 코멘트를 해주었다.

"신기록일 거예요. 기네스북에 올려야 할 정도로."

타버릴 듯이 뜨거워진 엔진
 타버릴 듯이 뜨거워진 엔진
ⓒ 김수복

관련사진보기


자, 이제 네 번째 사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쪽에서 올라온 내가 한강다리를 건너 서울 북부 지역으로 나가는 간선도로를 탔으니 내려갈 때도 그렇게 하면 되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것은 무식도 지나친 무식이었던 것일까. 뭐 그랬던 모양이다. 내 팔자에 한강 구경을 하자는 것도 아니련만 가도 가도 강변도로일 뿐 한강다리 위로 올라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는 거였다. 그날의 결정적인 사고는 아마 거기 어디쯤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돌아보면 그랬다. 맨 처음 네비게이션을 작동했을 때 최종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이백구십이 킬로미터였다. 왕복을 한다 해도 육백 킬로미터가 채 안 되는 거리였다. 그런데 무려 칠백오십 킬로가 넘는 거리를 그날 하루 동안에 구십칠년식 고물 자동차가 뛰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속도로 어디쯤에서부터 속도가 붙지를 않았다. 백 킬로를 꾸준히 유지하던 속도계가 팔십으로 내려앉은 채 아무리 밟아도 올라가지를 않는 거였다. 그런 상태인 채로 요금소를 빠져나와서 신호대기에 걸렸다. 그 순간 그 일이 벌어졌다. 부르릉 소리와 함께 시동이 꺼지더니 다시는 살아나지 않겠다는 듯이,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너 같은 무식한 주인의 말은 듣지 않겠다는 듯이 꼼짝도 안 하는 거였다.

일단 비상등을 켜고, 하릴없이 운전석을 빠져나와서 엔진 뚜껑을 열어보았다. 불에 달궈진 쇳덩어리 특유의 칼칼한 열기가 훅 뿜어져 나왔다. 아, 엔진과열이구나,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때는 3월 하고도 말이었다. 우리 집 마당에는 수선화가 활짝 피었지만 날씨는 매우 쌀쌀한 바람과 함께 빗방울이 듣고 있었다. 타버릴 듯이 뜨거워진 엔진이 식어가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인 셈이었다.

이게 만일 고속도로에서 멈춰 버렸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 생각을 하는 순간 가슴에서 열이 푹푹 나고 북 치는 소리가 진동하고 있었지만, 그런 한갓진 감회에 빠져 있을 여유는 없었다.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워둔 채로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을 수신호로 유도하기를 얼마나 했던가. 이제 됐겠거니 하고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어보니 그래 됐다, 하는 듯이 부릉, 소리를 내주고 있었다.

그날의 사건이 내게 준 교훈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그녀가 서울에 있었고, 서울의 그녀를 내가 데리러 가야 한다는 미션이 있었다는, 그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나의 애마 때문에 생긴 일' 응모 글



태그:#자동차사고, #고물자동차, #엔진과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