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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이혼을 결심한 정다은(가명·31)이에요. 남편의 폭행이 너무 심해서 더 이상 못 살겠어요. 그동안 시부모들이 대신 용서를 빌고, 재산을 물려 주겠노라고 사정사정해서 참고 살아왔는데 이제 다 필요없습니다. 무조건 이혼하려고요. 남편도 그러자는군요.

그런데 한 가지 고민이 있네요. 5살 딸 아이가 하나 있는데 제가 꼭 키우고 싶어요. 딸은 엄마가 키우는 게 맞잖아요. 그런데 당장 가진 것도 없고 직장도 없어서요. 애를 돌봐줄 사람도 없는데 제가 키운다고 했다가 만일 감당을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요. 남편도 아이는 자기가 잘 키울 자신이 있다면서 양보할 수 없다고 하네요.

쉽게 결정을 못 내리겠어요. 차라리 형편이 나은 남편이 키우는 게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요. 아니면 제가 친권을 행사하고 남편이 양육권을 갖는 건 어떨까요. 해법을 알려주세요.

이혼할 때 반드시 해결해야 할 자녀 양육 문제 3가지 

친권자와 양육자는 한 사람이 맡는 게 좋습니다. 친권자와 양육자가 다를 경우, 일상생활이 무척 번거롭습니다.
 친권자와 양육자는 한 사람이 맡는 게 좋습니다. 친권자와 양육자가 다를 경우, 일상생활이 무척 번거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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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은 어른들의 선택입니다. 그런데 이혼 뒤에 가장 상처받고 소외받는 이들은 부부 자신이 아니라, 바로 자녀들입니다. 이혼 과정에서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고 합니다. 또한 이혼 가정의 아이는 공격적, 충동적, 반사회적 행동을 더 많이 보인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이혼할 때 반드시 아이의 미래도 함께 고민해봐야 합니다. 이혼을 하면서 자녀 양육과 관련해서 반드시 이혼 전 해결해야 할 3가지 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① 엄마와 아빠 중에 누가 아이를 키울까 (친권자, 양육자 지정)
② 아이의 양육비는 얼마를, 어떻게 지급해야 할까 (양육비)
③ 함께 살지 않은 부모와 아이가 어떻게 만날까(면접교섭)

오늘은 그 중 첫 번째로 ① 친권자, 양육자 지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친권자나 양육자가 정해지지 않으면 이혼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친권과 양육권, 어떻게 다르나

친권과 양육권의 뜻부터 파악해봅니다. 먼저, 친권이란 미성년 자녀의 신분과 재산에 관한 사항을 정할 수 있는 부모의 권리를 말합니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신분상 권리로 ▲자녀를 보호 교양할 권리·의무 ▲자녀가 살 곳을 지정할 거소지정권 ▲징계권 등이 있습니다. 또 재산상으로는 ▲자녀 명의 재산 관리권 ▲법률행위 대리권, 동의권을 포함합니다.

쉽게 말하면 자녀를 대신해서 법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친권입니다. 예를 들어 미성년자가 휴대전화를 개통하거나 전입신고를 하거나 여권을 발급할 때,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입할 때, 부동산·은행예금을 관리하거나 다른 사람과 계약을 체결할 때, 민사소송을 하거나 당할 때 친권자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반면 양육권은 미성년 자녀의 양육에 필요한 사항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자녀와 함께 살면서 자녀를 보호하고 교육할 권리·의무입니다.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는 권리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겠습니다. 

양육권과 친권은 어떻게 다를까요. 자녀의 신분과 재산, 양육 등에 관한 사항 전반을 결정할 권리인 친권이, 자녀와 함께 살면서 교육할 권리인 양육권보다 좀 더 넓은 개념입니다. 친권자는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되는 반면, 양육자는 따로 기재되지 않는다는 차이도 있습니다. 

친권자와 양육자를 한 사람으로 정해야 하는 까닭

친권과 양육권은 결혼 중에는 부모가 공동행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이혼을 하게 되면 누가 친권자와 양육자가 될지 반드시 정해야 합니다. 어떻게 정해야 할까요.

양육자와 친권자를 다르게 하거나 이혼 후에도 부모가 친권을 공동행사하는 것은 어떨까요.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양육자와 친권자를 같은 사람으로 정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무척 번거롭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전입신고를 하거나 통장을 만들거나 휴대전화를 개설하려고 하면 그때마다 친권자에게 도장을 받거나 인감증명을 받아야 합니다. 만일 연락이 되지 않거나 협조를 해주지 않으면 고생을 겪게 됩니다. 자녀가 학교나 가정생활에서 사소한 법률행위를 하는 데도 친권자의 동의나 대리를 받는 수고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양육자를 친권자로 정하는 게 좋습니다.

그렇다면 친권자와 양육자를 누구로 정하는 게 바람직할까요. 부부가 협의하여 결정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게 안된다면 법원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법원은 부부의 주장과, 자녀의 의견을 들어본 뒤 아이의 미래와 복지를 위해 결정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법원의 기준은 어떤 것일까요. 경제적인 여건? 당연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부모 중 누가 친권자 적합할까...법원의 조건은?

[사례] 40대 후반 남성인 A씨는 띠동갑인 여성 B씨와 스무살 무렵부터 동거하다가 몇 년 뒤 결혼했다. A씨는 동거 무렵부터 폭행과 욕설을 일삼아서 B씨가 임신 3개월만에 유산한 적도 있었다. 결혼 몇 년 후 B씨는 인공수정을 통해 쌍둥이를 낳아서 길렀는데 남편의 폭력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집을 나왔다. 그는 경제적 능력이 없어서 친언니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을 키우면서 식당일로 생계를 꾸려왔다. A씨는 택시운전을 하고 있어서 B씨보다는 형편이 조금 나았다. B씨는 법원에 이혼소장을 내면서 친권자와 양육자로 자신을 정해달라고 청구했다.

1심과 2심 법원은 이혼판결을 내리면서도 "경제적 여건으로 볼 때 아버지 A씨가 친권자 겸 양육자가 되는 게 타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쌍둥이를 키우는 즐거움으로 살아왔던 B씨로서는 충격적인 결과였습니다. 

다행히도 대법원은 이 결론을 뒤집었습니다. "자의 양육을 포함한 친권은 부모의 권리이자 의무로서 미성년인 자의 복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전제한 대법원은 "미성년인 자의 성별과 연령, 부모의 애정과 양육의사의 유무는 물론, 양육에 필요한 경제적 능력의 유무, 부모와 미성년인 자 사이의 친밀도, 자녀의 의사 등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대법원은 ▲B씨가 인공수정을 통해 어렵게 자녀들을 출산한 점 ▲지금까지 양육하는 데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점 ▲6세 남짓 어린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성숙할 때까지 어머니가 양육하는 것이 성장과 복지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들어 B씨가 키우는 게 타당하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B씨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점에 대해서는 "A씨와 양육비를 분담함으로써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고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법원은 결국 B씨를 양육자 겸 친권자로 결정했습니다.  

딸은 무조건 엄마가 키워야 한다?

대법원은 "미성년인 자의 성별과 연령, 부모의 애정과 양육의사의 유무는 물론, 양육에 필요한 경제적 능력의 유무, 부모와 미성년인 자 사이의 친밀도, 자녀의 의사 등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대법원은 "미성년인 자의 성별과 연령, 부모의 애정과 양육의사의 유무는 물론, 양육에 필요한 경제적 능력의 유무, 부모와 미성년인 자 사이의 친밀도, 자녀의 의사 등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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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부모 중 한 사람이 키워야 한다면 그래도 엄마가 낫겠지요. 하지만 항상 그런 결론이  정답은 아닙니다. 

[사례] 수년간 별거해 온 남편 C씨와 D씨 부부. 이혼만 하지 않았지 남남과 다를 바 없었다. 별거 후 C씨는 딸이 9살이 될 때까지 혼자서 키워왔다. 두 사람은 부부애는 없었으나 자식사랑은 각별해서 이혼하면서 서로 아이를 키우기를 원했다. 2심 법원까지는 어머니 D씨가 키우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판결했다. C씨는 이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했다.   

일반적으로 아빠보다 엄마가 자녀들과 정서적으로 유대관계가 더 깊고, 어린 아이들일수록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딸은 무조건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기준은 없습니다. 자녀복리를 위해 종합적인 고려가 있어야 합니다. 대법원의 생각도 같았습니다.

대법원은 "아버지 C씨가 어린 딸을 잘 길러왔다"면서 "단지 어린 여아의 양육에는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더 적합할 것이라는 일반적 고려만으로는 양육상태 변경의 정당성을 인정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쪽 부모가 기르던 자녀를 다른 부모가 기르려면 "현재의 양육상태를 변경하는 것이 현재의 양육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보다 아이의 건전한 성장과 복지에 더 도움이 된다는 점이 명백하여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아빠가 딸을 잘 키우고 있다면 굳이 엄마로 친권자나 양육자를 다시 바꿀 이유는 없다는 뜻입니다.

이혼재판을 담당하는 수도권의 한 판사는 양육자를 정하는 데 현재의 양육상황과 부모와의 유대관계를 가장 크게 고려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이 판사는 "부모가 이혼한다고 해서 아이의 양육상황이 갑자기 달라져서는 곤란하며, 아이와 부모의 정서적 유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폭력 아빠, 매정한 부모는 친권상실되는 경우도
 
친권과 양육권은 부모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아닙니다. 의무의 성격도 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자녀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양육자를 바꿀 수도 있고 친권자도 변경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양육자나 친권자가 정해진다면 다시 바꾸기가 그리 쉬운 건 아닙니다. 애초에 정할 때 여러 상황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문제로 2번, 3번 재판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한편, 부모 역할을 제대로 못해서 친권이 아예 상실되는 사례도 있습니다.

[사례] E씨(30대 여성)는 남편의 폭행에 못 이겨 이혼했다. 초등생 아들이 둘 있었는데 친권은 공동행사하고 E씨가 양육하는 걸로 조정을 했다. 하지만 F씨는 이혼 후에도 찾아와 E씨와 아들들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F씨는 큰아들을 밀쳐 바닥에 넘어뜨려 머리를 다치게 하였으며, 작은 아들을 데려가선 밤늦게까지 집에 못가게 하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함께 저 세상 가고 싶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E씨는 아버지 자격이 없는 F씨의 친권을 뺏어달라며 법원을 찾았다.  

민법(924조)에 따르면 "부 또는 모가 친권남용, 현저한 비행, 기타 친권을 행사시킬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 때" 법원은 친권상실을 선고할 수 있습니다. 

법원은 F씨의 행동이 "친권을 행사시킬 수 없는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친권과 면접교섭권을 상실한다"고 판결했습니다. 그 밖에도 10년 전 이혼한 뒤, 아이를 한번도 보지 않았고 양육비를 한 번도 내지 않은 매정한 아버지, 친딸을 성폭행하는 만행을 저지른 아버지에게 친권상실을 선고한 사례도 있습니다.

정다은씨, 남편의 상습적인 폭행은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에 해당되어 이혼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소송보다는 상처가 덜 남는 협의이혼으로 해결하시길 바랍니다. 더구나 딸을 키우는 문제도 남아 있으니까요.

정다은씨가 친권자 겸 양육자로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에게 양육비를 받는 방향으로 해결하는 게 어떨지, 저로서는 조심스레 제안해봅니다. 합의가 안된다면 누가 키우는 게 더 나은지 법원의 판단을 받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법정에 가기 전에 두 분이서 어린 딸을 위해 현명한 결정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법률책 <생활법률 상식사전>과 <생활법률 해법사전>을 썼습니다.



태그:#이도남, #이혼, #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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