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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지난 1월 2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도중 목을 축이고 있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지난 1월 2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도중 목을 축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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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 망신을 당하고 사퇴하고 싶을까?"

대통령직 인수위의 한 관계자가 지난달 24일 기자들과 한 오찬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인사청문특위 새누리당 간사를 맡고 있는 권성동 의원이 이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심사보고서 채택 무산 사실을 밝히며 특위 활동 종료를 선언한 지 2시간도 안 된 시점이었다. 

기자들이 이를 설명하며 "인사청문특위 활동시한이 하루 더 남았는데도 (민주통합당과) 협상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 자체가 새누리당도 이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의지가 없다는 거 아니냐"고 묻자, 그는 "그 망신을 당하고 사퇴하고 싶을까"라고 반문했다. 전 국민 앞에서 망신을 당했는데 그냥 순순히 물러나겠느냐는 얘기였다.

결과적으로 이 관계자의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이 후보자는 명예회복을 거론하며 사퇴를 거부했다. 지난 6일자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자리가 문제가 아니라 평생을 떳떳하게 살아왔는데 인격 살인을 당한 상태인 만큼 지금으로선 명예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국회 표결도 있기 전에 사퇴할 경우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을 인정하는 것이란 오해를 받을 것"이라고 사퇴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결정적인 부적격 사유로 꼽혔던 특정업무경비 사적유용 의혹에 대해서는 '전액 사회 환원' 카드로 맞받았다. 게다가 "내가 통장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바람에 기획재정부가 최근 특정업무경비 지침을 개선하는 계기가 만들어진 것"이란 궤변까지 펼쳤다.

횡령 혐의로 고발까지 당한 이동흡, 박근혜-황우여 믿고 배수진 쳤다?

참여연대 박근용 시민감시국장과 행정감시센터 실행위원 강영구 변호사가 6일 오전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특정업무경비를 사적인 용도로 유용했다며 '형법 356조 업무상 횡령혐의'로 서울중앙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 이동흡 후보자 결국 '횡령혐의' 고발 참여연대 박근용 시민감시국장과 행정감시센터 실행위원 강영구 변호사가 6일 오전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특정업무경비를 사적인 용도로 유용했다며 '형법 356조 업무상 횡령혐의'로 서울중앙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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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낙마' 상태에 빠졌던 이 후보자가 이처럼 명예회복을 거론하며 배수진을 친 것은 든든한 뒷배가 마련됐기 때문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자신의 특정업무경비 사적유용 의혹에 대해 "(특정업무경비를) 콩나물 사는데 쓰면 안 되지"라고 꼬집었던 황우여 대표도 지난 4일 "후보자나 지명자가 스스로 결단하면 모르되 비정상적인 거부로 지명 철회, 후보자의 사퇴가 강요된다면 의회주의에 반하는 강제적 폭거"라며 이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표결을 주문했다.

박근혜 당선인도 이틀 뒤인 6일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워크숍에서 "인사청문회가 개인의 인격을 과도하게 상처 내지 않고 실질적인 능력과 소신을 밝힐 기회를 줬으면 한다"면서 "법에 따라 정해진 절차를 통해 표결이 이뤄지는 민주국회, 상생의 국회가 되도록 여야가 노력해달라"고 표결 처리를 주문하고 있다.

이처럼 박 당선인과 집권여당 대표가 표결처리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이 후보자가 굳이 자진사퇴를 택할 이유는 없다. 앞서 물밑에서 정치권 지인들에게 자신의 거취에 대해 자문하거나 인준 통과를 위한 지지를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던 이 후보자로서는 그 누구보다 확실한 '답변'을 얻어낸 셈이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가 특정업무경비 사적유용 의혹과 관련, 참여연대로부터 횡령 혐의로 고발된 것도 '배수진'을 택하게 한 다른 요인으로 보인다. 이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특정업무경비와 월정직책금 등이 입금된 자신의 개인계좌와 단기금융투자상품인 MMF(Money Market Fund) 계좌 간의 거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특정업무경비를 유용한 것은 아니라는 태도를 견지했다.

그러나 자진사퇴를 할 경우, 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특정업무경비 사적유용 의혹을 그대로 인정하게 되고 고발된 횡령 혐의에 대해서도 검찰 수사 이전에 인정하는 꼴이 된다. 사퇴하지 않고 본회의 표결에서 부결돼 헌재소장에 취임하지 못하더라도 고발된 횡령 혐의에 대해서는 차후 법정에서 다툴 여지가 남아있게 되는 셈이다.  

표결 여부 놓고 새누리당에서도 왈가왈부... "정치적 부담 큰 위험한 선택"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서 황우여 대표와 대통령직 인수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진영 정책위의장, 최고위원 등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새누리당,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서 황우여 대표와 대통령직 인수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진영 정책위의장, 최고위원 등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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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후보자의 '명예회복'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망신살만 더 뻗칠 수 있다. 임명동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인데다 표결 처리를 주문하는 여당 쪽도 '절차의 완성'에만 관심이 있지 '절차의 결론'에 대해서는 사실상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이 후보자의 특정업무경비 전액 사회 환원 입장을 놓고 "3억 원으로 헌재소장 자리를 사려고 하느냐"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일단 임명동의안 상정 경로만 따져봐도 그렇다. 황우여 대표의 주장대로 다시 인사청문특위를 열어 여야가 청문회 심사보고서 채택을 합의하는 방안이 있지만, 민주당이 '자진사퇴'만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성사되기 어렵다.

강창희 국회의장이 이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직권상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강 의장도 이 후보자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밝힌 상황이다. 이날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강 의장의 측근은 "강 의장이 참모들과 이 후보자 문제에 대해 논의하면서 '어떻게 아직도 입장 정리가 안 되나. 상황 판단이 되지 않는 건가. 그럼 떳떳하게 살았다는 건가' 등 불만을 내비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공공연히 당 지도부의 '표결 처리' 입장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인사청문특위 위원이었던 김성태 의원은 이날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과 한 인터뷰에서 이 후보자의 자진사퇴 거부에 대해 "대단히 참담하고 갑갑한 심정이다, 헌재 재판관까지 하셨던 분이 이렇게 본인의 거취문제를 갖고 나라 전체를 어려움에 빠지게 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또 "(특정업무경비 사적유용 의혹 등) 이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무조건 부인하기만 했지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해명을 내놓지 못한 상태였는데 이제 와서 본인이 받았던 특정업무 경비를 사회로 환원한다고 해서 의혹을 깨끗이 덮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냐"면서 "특정업무경비 사회환원과 헌법재판소장 후보로서의 적격성 여부 재검토는 전혀 상관없는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특히 당 지도부의 표결 처리 주장에 대해서도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따르는 위험한 선택"이라며 "표결 강행 자체만으로도 부정적 여론이 상당히 거셀 텐데 만약 본회의에서 부결된다면 새누리당은 정치적 타격이 극심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도 표결 처리까지만 주문할 뿐, 임명동의안의 통과 여부에는 관심이 없다. 그 목적이 이 후보자의 헌재소장 취임보다 거듭된 인사실패로 난관에 부딪힌 박 당선인의 정치적 부담을 덜고 향후 국무총리 및 장관 인사청문회를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한 사전 포석에 가깝기 때문이다.

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오전 YTN라디오 <출발 새아침>에 출연, "(이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에 대해) 300명의 국회의원이 투표를 통해서 최종 결정을 하자, 그것이 정상적인 방법"이라면서도 "저희 당이 방향을 정해서, 당론을 정해서 (이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통과에) 찬성하자고 할 입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태그:#이동흡, #박근혜, #황우여, #김성태, #특수업무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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