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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은 독일통일의 23년이 되는 해다. 독일 통일에 대하여는 많은 책과 연구가 있다. 독일 연방정부는 2010년 9월 말 통일 20년을 결산한 <독일통일백서 2010>에서 "통일 후 20년 동안을 돌이켜 볼 때 많은 비판과 회의가 있을 수 있으나 통일의 부정적 측면보다는 긍정적 측면이 극명하게 돋보인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동독의 형제와 자매들에게 '자유'를 안겨준 역사는 그 어떤 실수나 비난으로도 훼손할 수 없는 최고의 절대적 가치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동독 주민들이 시민 혁명과 민주적 절차를 통해 얻어 낸 것이기에 더욱 값진 것이다.

1989년 5월 2일은 독일 통일로 가는 첫 관문이 열린 날이다. 동독 주민들이 자유를 찾아 서독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헝가리 정부가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지역에 설치된 철조망을 철거한 것이다. 이날 철조망 제거 행사에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의 외무장관이 직접 참석했다.

비록 극히 제한된 지역의 철조망을 제거했고 여전히 국경수비대가 감시를 하고 있었지만 그 반향은 너무나 컸다. 국경선의 철조망을 제거하는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본 동독 주민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바늘구멍 같은 기회가 왔다. 우리도 가야 한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비록 국경을 완전히 개방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는 국경이 무장해제될 것이라는 신호로 해석하기에 충분했다.

동독 주민들이 대거 탈출한 그 순간까지도 호네커(Erich Honecker,1912~1994)를 비롯한 동독 공산당 지도부는 동독의 안정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1989년 6월 동독 정부는 천안문 광장 시위에 대한 중국의 무력 진압을 "질서와 안전의 회복"이라고 공식 옹호했으나, 동독 주민들 사이에는 헝가리와 폴란드에서 추진되고 있던 개혁에 대한 갈망이 눈덩이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동독 주민 탈출 사태에 대한 동독 지도부의 반응은 이러한 현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결국 호네커 정권은 동독이 직면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필요한 개혁을 거부함으로써 동독의 붕괴를 가속화했다고 볼 수 있다. 서독 정부는 동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일 주민에 대한 유일 대표권을 견지해 왔기 때문에 동독 탈출민들을 서독시민으로 빨리 정착시키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서독 정부와 여당은 "동독의 고유 국적을 인정하지 않았던 정책이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라고 평가하고, 만약 사민당의 주장대로 동독 국적을 인정했더라면 1989년 탈출난민을 받아들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헝가리, 체코, 폴란드, 동베를린 등을 떠나 서독으로 탈출한 동독 주민 수가 급증함에 따라 서독 연방정부는 이들을 위한 긴급 수용 및 정착 대책을 마련하였다.

통독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일관된 의지와 열망이다. 독일국민들이 결정적인 순간 "우리는 한 민족이다(Wir sind ein Volk)"란 외침이 가장 강력한 통일의 힘이었다. 둘째, 정권이나 정치가의 변화와 무관하게 일관된 통일 정책의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셋째, 정치, 경제적 힘의 우위와 상대적 열위의 북한을 포용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넷째, 통일비용(cost), 분단비용, 통일의 기회와 편익(benefit)에 대한 바르고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다섯째, 남북교류의 지속과 경제적 협력은 통일을 위한 장기적, 전략적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여섯째, 한반도 통일에는 독일보다 큰 위험과 희생이 수반될 수도 있기 때문에 지도자와 국민의 확고한 통일 의지와 결단력이 있어야 하고, 통일 후유증 보다 기회가 큼을 이해해야 한다. 일곱째, 미국,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의 이해와 협력이 필요하다. 이들 어느 나라의 적극 반대가 있어서는 곤란하며 적어도 중립이나 침묵까지는 유도하고 설득해야 할 것이다.

여덟째, 통일의 당사자인 남한 주민과 북한 주민의 통일의지가 가장 중요하며, 현시점에서는 남북한의 연결체인 탈북민에 대한 배려와 정착이 그 시금석이 될 것이다. 통일공간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영향력이 가장 큰 사람들이 탈북민들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들의 남한에서의 행복한 생활이 북한 주민설득에 가정 중요한 실제적 대안에 될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한반도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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