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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왼쪽, 류덕환 분)
 공민왕(왼쪽, 류덕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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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공민왕 시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사극 <신의>가 지난 13일 첫 방송을 탔다. 제1부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공민왕(류덕환 분)에 대한 최영(이민호 분)의 까칠한 태도였다.

공민왕은 몽골제국(원나라)에 살다가 몽골의 지원으로 고려왕이 되어 귀국했다. 드라마 속의 최영은 고려 조정의 명령을 받고 왕을 고려로 데려오는 임무를 맡았다. 최영이 공민왕을 호위하는 모습이 드라마의 첫 장면이었다.

드라마 속 공민왕은 최영의 까칠한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기회를 엿보아 "어째서 나를 싫어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드라마 속 최영은 이렇게 대답했다.

"전하께서는 열 살에 원나라에 건너가서 자라신 분입니다. 뼛속 깊이 원나라 물이 들으셨을 겁니다. 그런 분을 모셔서 나라를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니 우리 고려 백성이 참 재수가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는 공민왕이 열 살부터 몽골제국에서 살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열두 살 때부터였다. 드라마 속 장면이기는 하지만, 공민왕 즉위 당시의 고려 백성도 최영과 똑같은 생각을 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즉위 이전의 공민왕은 누가 보더라도 '뼛속 깊은 친몽골파(친원파)'였기 때문이다.

고려 제31대 공민왕인 왕전(공민왕의 이름)은 제27대 충숙왕의 차남이다. 제27대 충숙왕의 아들이 제28대 왕이 되지 않고 제31대 왕이 됐다. 또 장남이 아니라 차남인데도 왕이 됐다. 이런 점들은 왕전의 즉위에 그만큼 우여곡절이 많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충숙왕의 장남으로 제28대 왕이 된 충혜왕이 사망한 뒤부터 왕전은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열두 살 때부터 몽골 수도에 체류 중이던 왕전은 당시 열다섯 살이었다. 이때 그는 여덟 살짜리 조카인 왕흔과 경쟁했다.

원칙대로라면 왕위계승의 정통성은 왕의 동생보다는 왕의 아들에게 있었다. 그런데도 왕전이 대권 경쟁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는 몽골의 지지를 받기만 하면 정통성의 약점이 치유됐기 때문이다.  

몽골 황실이 왕전을 31대 왕으로 책봉

최영(이민호 분)
 최영(이민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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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전은 조카 왕흔과의 경쟁에서 패배했다. 왕흔은 제29대 충목왕이 되었다. 하지만 기회는 또 찾아왔다. 충목왕이 재위 4년 만에 후계자 없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열아홉 살이 된 왕전은 또 다른 조카이자 충목왕의 동생인 왕저(당시 11세)와 경쟁을 했다.

후임 임금은 전임 임금의 제사를 지내야 했다. 그래서 전임 임금보다 어른인 사람이 후임 임금이 되는 것은 가급 피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충목왕의 삼촌인 왕전이 충목왕을 계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런데 왕전이 대권경쟁에 나선 것은 몽골의 지지를 받으면 그런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왕전은 조카와의 경쟁에서 패배했다. 조카인 왕저는 제30대 충정왕이 되었다. 이때 왕전은 개혁세력인 신진사대부들의 지지를 받았다. 사대부들은 그 전에도 있었지만, 이 시기에는 개혁 성향의 사대부들이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래서 신진사대부란 표현이 나온 것이다. 신진사대부는 지지했지만, 몽골이 지지하지 않았기에 왕전은 연거푸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왕전은 조카들과의 경쟁에서 번번이 패했다. 그러나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어린 충정왕을 내세운 고려 집권세력이 일본 해적단인 왜구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자, 몽골 황실은 더 이상 충정왕을 지지할 명분이 없었다.

<고려사> '공민왕 세가'에 따르면, 몽골 황실은 멀쩡히 살아 있는 충정왕을 몰아내고 왕전(당시 22세)을 제31대 왕으로 책봉했다. 고려 말기 최고의 군주로 평가받는 공민왕은 이렇게 '대권 3수' 끝에야 즉위했다. 제27대 충숙왕의 차남인 그가 1351년에 제31대 왕이 된 데는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다.

몽골이 공민왕 대신 조카들을 선택한 것은 고려왕이 어려야만 통제하기 쉽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몽골이 결국 공민왕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공민왕은 즉위하자마자 반몽골(반원)을 표방했다. 그런 공민왕을 지지해준 이유는 무엇일까?

몽골 황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반몽골파에게 왕위를 맡겼을 리는 없다. 제31대 고려왕을 책봉할 당시의 몽골 정부는 공민왕이 친몽골파라고 확신했다. 나이가 많아서 마음대로 다룰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공민왕에 대해 몽골 황실이 믿음을 갖게 됐던 것이다. 왜냐하면, 공민왕 자신이 그런 믿음을 주고자 절치부심했기 때문이다.

몽골 수도에 거주하면서도 몽골의 지지를 받지 못해 고배를 마셔야 했던 공민왕은 결심했다. 몽골 황실에 더욱더 잘 보이자, 뼛속 깊은 친몽골파로 보이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공민왕, 몽골인 노국대장공주와 결혼... 친몽골파로 행동

노국대장공주(박세영 분)
 노국대장공주(박세영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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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은 두 곳을 향해 구애 공세를 펼쳤다. 한쪽은 몽골 황실이고, 한쪽은 기씨 일파였다. 몽골 황후인 기황후를 배출한 기씨 집안은 1340년 이후부터 고려 정부에서 실권을 장악한 가문이다. 이 가문은 대표적인 친몽골파였다.

몽골 황실을 향한 구애가 성공했다는 점은, 공민왕이 몽골 황실의 신임을 얻어 몽골인인 노국대장공주와 결혼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이 결혼은 공민왕이 등극하기 2년 전에 성사되었다.

기씨 일파에 대한 구애 역시 성공했다는 점은 공민왕이 기황후의 지지를 받고 기씨의 도움을 빌려 충정왕을 몰아낸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기씨 집안이 공민왕의 등극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은 공민왕 즉위 이듬해에 발생한 해프닝에서 상징적으로 반영된다.

<고려사>를 축약한 책인 <고려사절요> 공민왕 편에 따르면, 이때 고려에서는 몽골제국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행사가 열렸다. 기황후의 남동생인 기원은 말에 올라탄 채 자신의 말을 공민왕의 말과 나란히 함으로써 위세를 과시하려 했다. 기원의 행위는 불경스러운 것이었지만, 공민왕이 자기 집안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뼛속 깊은 친몽골파로 행동하여 몽골 황실과 기씨 집안의 지지를 받은 공민왕. 그는 얼마 안 있어 본색을 드러냈다. 임금 자리에 앉혀 주기만 하면 평생 몽골과 기씨를 위해 살 것처럼 행동했던 공민왕은 즉위 이듬해부터 그 유명한 반몽골 운동(반원운동)과 기씨 척결운동을 전개했다. 

공민왕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비주류 세력을 결집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는 개혁세력인 신진사대부를 중용하는 한편, 이성계 같은 변방의 무인세력을 중앙으로 끌어들였다. 이런 노력 덕분에 몽골과 기씨 집안을 몰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뼛속 깊은 친몽골파처럼 보였던 공민왕이 즉위하자마자 돌변한 것은, 그의 친몽골이 실은 거짓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의 친몽골은 '뼛속 깊이'가 아니라 '살갗으로만 살짝'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공민왕의 친몽골 행세는 순전히 쇼에 불과했다. 드라마 <신의>의 최영은 공민왕을 보고 '뼛속 깊은 사대주의자가 아닐까?'라고 염려했지만, 귀국 당시의 공민왕은 이미 몽골을 몰아낼 궁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 속 최영은 "뼛속 깊이 원나라 물이 들은 분을 모셔서 나라를 맡겨야 하니, 우리 고려 백성이 참 재수가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공민왕은 즉위하자마자 몽골에 반기를 들고 고려를 위해 살았으므로, 고려 백성은 실은 '재수가 참 좋은 백성들'이었던 것이다.

공민왕의 친몽골 행세는 순전히 '쇼'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작년에 공개한 미국 외교문서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2008년 5월에 이상득 국회부의장은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과 함께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궁극적으로 이 대통령은 미국·일본과 잘 협력할 것"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 깊이 친미·친일이니까 그의 시각에 대해서는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태도는, 즉위하자마자 '나는 뼛속 깊은 반몽골입니다'고 표방한 공민왕의 태도와 정반대다. 대한민국 경제를 위해 목숨을 걸 것처럼 행동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친형을 통해 '저는 뼛속 깊은 친미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미국에 전달했고, 임기 내내 대한민국보다는 미국에 유리한 일을 더 많이 했다. 드라마 속 최영이 말한 '참 재수 없는 백성들'은 대한민국 백성이다.


태그:#신의, #공민왕, #사대주의, #최영, #노국대장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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