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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가 유난히 많은 캘커타의 거리.
 까마귀가 유난히 많은 캘커타의 거리.
ⓒ 김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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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은 일상을 탈출하는 느낌보단 또 다른 일상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여행이기보다는 사회를 되돌아볼 수 있는 여행이었다.

'학교를 그만 다녀야겠다'고 생각한 후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택한 여행지는 인도였다. 평소 인도의 음식이나 문화를 즐겨왔던 이유가 컸다. 두 명의 일행과 함께 출발해, 2주 동안 인도의 수도인 델리에서 여행자들의 성지라는 바라나시까지의 여정을 함께했다. 그곳에서 원래 계획했던 여행 일정이 틀어지는 바람에 우리는 각자의 여행을 새로 구상했다. 일행 둘은 바라나시에 남기로, 나는 다시 델리로 돌아가 북인도 고지대로 올라가기로 했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다는 다람살라의 맥그로드간즈에서 홀로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매일 아침 그곳의 기도길을 산책했다. 호수를 보러 8킬로를 걸었다가 호수가 있던 흔적만 남아있는 모습에 허탈해하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멋진 폭포를 만나 황홀해하면서 그렇게 또 2주의 시간이 흘렀다. 슬슬 캘커타로 이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간에 시크교도들의 성지 아므리뜨사르에 들러서, 황금사원과 영국 식민지 시절 잔인한 학살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잘라완왈라바그 공원을 둘러보고 서둘러 캘커타로 향했다.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캘커타에서의 시간을 길게 잡아 놓았다. '마더 테레사 하우스 (이하 마더하우스)'에서 봉사활동을 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신의 존재를 믿는 것도, 다른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봉사활동이라면 중고등학교 때 봉사시간을 얻기 위해 은행이나 어린이집 청소를 해본 게 다였다. 봉사활동에는 관심도 없었던 내가 왜 그렇게 마더하우스에 꼭 가보리라 결심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마음 한편에서 '도대체 봉사활동이란 뭘까?' 하는 질문이 일었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도대체 혹자들은 왜 자기 시간을 내서 아무 보수도 없이 봉사라는 걸 하는 것일까? 봉사로 무얼 느끼고 얻어야만 하는 것일까?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으로 자기 위안을 하는 것일까? 좋은 일로 몸을 고되게 하면 정말 보람이라는 게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걸까?

내 근본적인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은 종교단체나 봉사단체에 들어가서 꾸준히 행하지 않는 이상, 내가 중고등학교 때 했던 청소와 별다를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행을 기회 삼아 그곳, 캘커타의 '마더 하우스에 가보자'고 생각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아이들...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지는 마음

돈보스코 아살람의 점심시간. 마당에 끼리끼리 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이 아이들이 지낼 세상엔 조금의 변화나 변화에 대한 희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돈보스코 아살람의 점심시간. 마당에 끼리끼리 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이 아이들이 지낼 세상엔 조금의 변화나 변화에 대한 희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김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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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커타의 여행자 거리인 서더스트리트에서 마더 하우스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가 걸린다. 그 중 10분 정도는 길게 뻗은 무슬림거리를 지나가야 한다. 그 거리엔 화장실이 없어 집 밖에 있는 수돗가에서 샤워하는 사람들과 물을 받기 위해 새벽부터 긴 줄을 선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린아이들은 맨발은 물론 아랫도리도 제대로 챙겨입지 않고 밖을 돌아다니고, 주변에는 무슬림 정육점들과 버려지는 고기를 기다리는 까마귀떼가 가득하다. 때만 되면 여행자들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골목이어서 그런지 구걸을 목적으로 골목을 지키고 서 있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이 무슬림 골목에서 불과 10분 거리에는, 캘커타에서 가장 큰 서점과 고급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외국 프렌차이즈 패스트푸드점은 물론 자동차 대리점, 쇼핑몰이 번쩍이는 곳 한 쪽에 이런 공간도 있다는 것이 마음에 무언가 일게 했다. 물론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은 인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다. 하지만 도시의 반짝임 바로 옆에서 공존하는 그들을 보면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한 번은 어떤 아이가 부모님, 친구들과 함께 레스토랑에서 생일파티를 하고 선물을 잔뜩 안고 나오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레스토랑 바로 앞엔, 돗자리를 깔고 부모님과 구걸을 하며 거리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었다. 불과 10분 거리, 화장실 없는 집이라도 편히 몸 뉘일 집이 있는 것이 다행이다 여겨질 만한 모습이었다.

10분 동안 무슬림 거리를 지나면서 그동안 내가 인도에서 봐왔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대부분 아프고, 집이 없고, 가족이 없고, 돈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도, 쉴 새 없이 그리고 끈질기게 먹을 것과 돈을 요구하는 그들이 어느 순간 귀찮아질 때가 있다. 그런 마음을 가졌다는 것에 죄책감이 들다가도 무던해지는 것이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보편적 경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마음을 갖고 봉사활동이란 걸 해도 되는 걸까. 생각은 더없이 복잡해졌다.

일단 봉사자 등록을 했다. 마더 하우스에느 예닐곱 개의 봉사기관이 있는데, 내가 선택한 곳은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쉬슈바반 중에서도 장애아동들이 있는 곳이었다. 등록을 마치고 다음 날 아침부터 봉사활동을 나갔다. 아기를 돌보는 일, 특히 장애가 있는 아기들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이들 모두 겉으로 드러나는 신체뿐 아니라 몸속과 마음에까지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는 동시에 사랑과 관심에 목말라 있었고, 언제나 고통스러워했다.

아이들처럼 나 역시, 봉사활동을 하며 몸도 힘들었지만, 마음도 불편했다. 내가 봉사라고 하는 일 중 일부분은 아이들이 정말 싫어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밥을 먹이는 것이었다. 쉬슈바반의 아이들은 늘 호박죽과 비슷한 색의 노란 죽을 먹는데, 매일 똑같은 것을 먹는 탓도 있겠지만, 늘 몸이 아픈 아이들은 밥 먹는 것 자체를 너무 싫어했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매일같이 입을 다물고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아서 봉사자 한 명이 팔과 다리를 잡고 있으면, 쉬슈바반에 상주하며 아이들을 돌보는 '마씨'가 아이의 양 볼을 눌러 강제로 입을 벌려 먹을 것을 입에 넣고, 다시 입을 다물려 뱉어내지 못하도록 막고 있어야 했다. 그런 전쟁이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된다. 아이들은 늘 울고, 지쳐있었다. 봉사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일까, 밥 시간에 전쟁을 벌여야 하는 아이들을 봉사자들은 늘 꺼렸고, 놀이시간에도 그런 아이들은 소외당했다.

기관의 보호를 받고, 치료를 받고, 끼니를 거르는 일 없이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난히 돌보기가 까다로워 봉사자들에게 소외당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기관에 상주하는 마씨들이 아이들 모두에게 사랑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마씨의 수가 너무 적고 늘 바쁘다. 때문에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것은 많은 시간 봉사자들에게 맡긴다. 하지만 육아전문가도, 의사도 아닌 봉사자들은 특정 아이들을 외면하고 돌보지 않음으로써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봉사활동을 할수록 내가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만 지는 것 같았다.

열악한 환경의 아동 기관들... 근본적으로 문제 해결할 순 없을까

여행자거리에 있는 카페 아살람 2층. 2011년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카페 관리인 라메스와 함께 유리창과 카페 내부를 꾸몄다.
 여행자거리에 있는 카페 아살람 2층. 2011년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카페 관리인 라메스와 함께 유리창과 카페 내부를 꾸몄다.
ⓒ 김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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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쉬슈바반에만, 마더 하우스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캘커타에서의 생활 도중, 나는 또 다른 기관을 알게 되었다. '돈 보스코 아살람(이하 아살람)'이라는 기관이었는데, 이곳은 가족 없이 길거리 생활을 하는 청소년들에게 수공예나 기술을 가르쳐 독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곳이었다. 이곳을 알게 된 것은 여행자 거리의 한 카페를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오랜 여행 중 책이 그리웠던 나는 함께 봉사하던 여행자를 통해 한국 소설이 많은 카페를 알게 되었다. 그 카페가 바로 아살람에서 운영하는 카페 아살람이었다. 여행자 거리 가까이 있는 그 카페는 아이들이 만든 노트, 양초, 목도리, 쿠키, 케이크 등을 팔고 후원을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책을 읽으러 수시로 카페에 드나들면서 난 카페 관리인 라메스와 친분이 생겼다. 하루는 라메스가, 한 달에 한 번 있는 아살람 아이들의 발표회에 나를 초대 했고, 난 궁금한 마음에 아살람을 방문하게 되었다. 길을 헤매는 바람에 늦게 도착해서 발표회는 보지 못했지만, 처음 보는 나를 반갑고 친근하게 대하던 아이들이 맘에 들어서 그다음부턴 마더 하우스의 휴일인 목요일마다 아살람에 가서 아이들과 엽서를 그리고 수업시간에 간단한 수학과 영어공부를 봐주곤 했다.

아살람에서 아이들과 지내면서 느낀 문제도 마더 하우스와 비슷했다. 사랑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줄 수 없었다. 잘 알려진 곳이 아니어서 봉사자도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더 정확했다. 봉사자뿐 아니라 아이들을 돌봐주는 선생님의 수도 턱없이 부족했고, 오후에 하는 수업에서도 전문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였다. 게다가 생활환경도 열악했다. 마더 하우스처럼 후원자가 많지 않아서였다.

마더 하우스나 아살람의 문제뿐 아니라 인도 전체의 빈곤 문제까지 그 모든 것에 대해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니, 결국 문제는 국가와 지역운영에 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현재의 가난한 가정들이나 버려지고 방치된 아이들의 각 가정이 최소한의 생필품을 누리고, 교육을 받을 수 있게끔 이라도 운영되었더라면 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수의 빈곤자들과 그들의 생활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은, 내가 할 수 있는 행동만큼이나 적고, 또 추상적인 것들뿐이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인도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제3세계 국가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심지어는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이런 현상은 일어난다. 차이가 있다면 잘 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 비율, 숫자 그리고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돌이켜보면 전 세계에 이런 문제는 늘 존재해 왔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수 세기 동안 왜 이렇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안타깝기만 하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 이렇게 살아도 될까

인도 여행을 통해서, 특히 캘커타에서의 생활을 통해서 '우리는 과연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것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왜 어떤 사람들은 남들만큼 혹은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도 그 스스로 삶을 영위할 수 없으며,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삶을 살아갈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일까?

세계의 많은 나라가 각각의 문화를 형성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살아왔지만, 결국 모든 사람의 행복은 많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하루 세 끼 밥을 먹을 수 있고, 자연재해로부터 몸을 보호해줄 집과 옷을 가질 수 있고, 가족들과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교육을 받고 일자리를 갖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저 기본적이고 적당한 만큼의 것을 원한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당연히 누려야 할 이 간단한 것들이 도대체 왜, 현실에서 많은 사람에게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이런 현상 속에서 그들에게 행해지는 '봉사활동'이라는 것이 과연 좋은 영향만을 끼치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당장 가난과 아픔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모른척한다는 것은 당연히 있어선 안 되는 일이지만, 봉사라는 이름으로 어쩌면 그들을 더 우리에게서 분리하고, 일반 사회와는 다른 그들만의 공간에 보호라는 포장을 씌워 밀어 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것은 도움을 받는 그들을 행복하게 한다기보다는 지금보다는 덜 불행하게 하기 위한 미봉책은 아닐까.

우리가 정말 해야할 것은 그들과 함께, 모두가 다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현재 사회적 약자들, 특히 경제적 의미에서의 약자들은 우리가 도움을 주어야 할 대상이기보다는 우리와 같은 것을 누리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가 어디에 사는지, 외국사람인지, 한국사람인지를 떠나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사람'이라는 것이다. 비록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많은 시간이 걸리고, 아주 어려운 문제라 하더라도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공정여행 기사 응모. 인도여행은 2010년 10월부터 2011년 1월까지 다녀왔습니다.



태그:#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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