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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 어느 집 대문간에 서있는 감나무에 감 하나가 따로 떨어져서 열렸습니다. 매우 예쁘네요.
▲ 감 시골마을 어느 집 대문간에 서있는 감나무에 감 하나가 따로 떨어져서 열렸습니다. 매우 예쁘네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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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 감나무 보니까 이오덕 선생님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응? 이오덕 선생님? 아아! 그러고 보니, 이집엔 감이 조금밖에 안 열렸구나. 빈집이라서 그런 가보다."
"그렇지? 역시 선생님 말씀대로야. '감'은 사람 숨소리, 말소리, 발자국 소리 듣고 열린다더니, 이것만 봐도 진짜 그렇다는 걸 또 느낀다."

오랜만에 나온 자전거 나들이

지난 17일 무척이나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나갔어요. 그동안 밴드에 오케스트라 활동까지 한다고 늘 음악에만 빠져서 일요일이면 여러 가지 행사를 다닌다고 무척 바쁘게 살았답니다. 그러다 보니, 쉬는 날이면 늘 자전거를 타고 나갔던 우리 부부가 좀처럼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지요.

어느새 들판에는 금빛 물결이 일렁이고, 벌써 나락을 베고 마을길마다 나락을 말리는 곳도 여럿 있었어요. 우리가 다른 일로 바쁘게 살고 있는 동안 자연은 자기네 질서를 따라 철이 바뀌고 있었어요. 이렇게나 가까이에서 한창 무르익고 있는 가을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고 살았다는 데 대해 자연한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답니다.

시골마을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풀냄새, 나락 베는 냄새, 가을걷이로 바쁜 농사꾼들의 땀 냄새까지 맡으며 온몸으로 가을을 느끼며 다니고 있었어요. 가다가 마음 내키는 대로 마을을 찾아 기웃거리며 다니고 있던 터에 구미시 해평면 금호리 와동마을에 들어섰어요.

금호리엔 '금호연지'라고 하는 '연꽃자생지'가 넓게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랍니다. 들머리부터 발갛고 튼실하게 속을 채우며 익어가는 감들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텃밭 앞에 대문처럼 우뚝 서서 집을 지키는 듯 보이는 감나무가 집집이 서 있습니다.

속을 튼실하게 채우며 감이 익고 있습니다.
이쪽 경상도 지역에서는 어디든지 시골로 가면 풍성하게 익어가는 감나무를 많이 볼 수 있답니다.
▲ 오롱조롱 보석같은 감 속을 튼실하게 채우며 감이 익고 있습니다. 이쪽 경상도 지역에서는 어디든지 시골로 가면 풍성하게 익어가는 감나무를 많이 볼 수 있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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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정겹게 살을 맞대고 익어가는 감도 있어요.
▲ 둘이 같이 서로 정겹게 살을 맞대고 익어가는 감도 있어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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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아세요? 감이 홍시가 될 때엔, 감 잎사귀를 먼저 떨군답니다. 왜 그러냐고요? 그건 바로 홍시가 떨어져도 터지지 않도록 미리 이불처럼 깔아놓는다고 하네요. 제 스스로 감잎을 떨구는 슬기로움이 아름답지 않나요? 그래서 자연앞에 또 사람은 겸손해집니다.
▲ 감 그거 아세요? 감이 홍시가 될 때엔, 감 잎사귀를 먼저 떨군답니다. 왜 그러냐고요? 그건 바로 홍시가 떨어져도 터지지 않도록 미리 이불처럼 깔아놓는다고 하네요. 제 스스로 감잎을 떨구는 슬기로움이 아름답지 않나요? 그래서 자연앞에 또 사람은 겸손해집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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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는 이 가을을 하나라도 놓칠새라 사진기에 하나씩 차곡차곡 담아둡니다. 오롱조롱 보석처럼 박힌 빨간 열매들을 보면서 파란 하늘빛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모습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도 느낍니다.

그러다가 바로 앞집에 있는 감나무를 올려다 봤어요. 겉보기에도 벌써 오래 앞서부터 빈집인 채로 남아 있는 듯 보였는데, 어김없이 담장 곁에는 감나무가 있습니다. 거기에도 똑같이 감이 열렸는데, 앞집 감나무보다 씨알도 훨씬 작고 감도 적게 열렸네요.

남편이 먼저 이오덕 선생님 하신 말씀을 되새기면서 이야기를 꺼내는데, 참으로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빈집에 열린 감나무는 어쩌면 외롭지 않았을까? 말을 건네는 이도 하나 없고, 살갑게 보듬어주는 손길도 없었을 터이니, 저(감나무)도 무척 외로웠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꽤 여러 해 동안 빈집으로 있었을 듯보이는 집앞에 서있는 감나무에요. 이 녀석도 사람 숨소리, 말소리, 살갑게 보듬어주는 손길이 그립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다른 집 나무보다 열매가 씨알이 작고 조금밖에 열리지 않았다.
▲ 빈집에 열린 감 꽤 여러 해 동안 빈집으로 있었을 듯보이는 집앞에 서있는 감나무에요. 이 녀석도 사람 숨소리, 말소리, 살갑게 보듬어주는 손길이 그립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다른 집 나무보다 열매가 씨알이 작고 조금밖에 열리지 않았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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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를 보며 노래를 부르다

외로움도 깊어 가면 눈물마저 마르지/손 내미는 이 없으니 하늘만 보고 서있네/구름아 너는 내 마음 잘 알고 있지/언제나 넌 그렇게 나를 내려다보며 슬프게 웃고만 있구나!

나도 모르게 흥얼거립니다. 몇 해 앞서 내가 쓴 시에다가 남편이 곡을 붙여 노래를 하나 만들어줬지요.

바로 '임자 잃은 감나무'란 노래인데, 바로 지금처럼 빈집에서 홀로 세월을 지키며 아무도 보듬어주지 않지만, 때가 되면 감잎을 내고 또 감 열매를 내놓지만, 왠지 모를 그리움과 외로움을 느끼는 감나무의 마음을 담아 쓴 노래랍니다.

그 뒤로 늘 가을이 되어 감나무가 오롱조롱 보석처럼 열릴 때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자주 부르는 노래이지요.

노래는 영 어설프지만, 함께 올려봅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듣고 가을을 느끼며 자연을 가까이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자 잃은 감나무(시)
시 - 손현희

아침 운동 길에
모퉁이 돌아서면
대문 앞을 지키는
커다란 감나무 하나 있다.

여러 해 지나도록
봄이면 노란 감꽃 피고
가을엔 빨간 홍시 열어
오가는 사람들 눈을 즐겁게 했지.

올해 첫머리에
대문 앞 빈자리를
새로 난 큰 길이 가로막더니,
집임자가 딴 데로 이사를 갔나보다.

언제부터 집 둘레에
잡풀이 자라더니,
날이 갈수록 차츰차츰
집을 차지하고 말았다.

옳아!
그러고 보니, 지난해까지
가지가 휘도록 열리던 감이
올해는 몇 개 안 보이더라.

그랬구나!
감나무도 제 임자를 잃어버려
많이 아팠나보다.
거두어 줄 이 없으니,
저도 마음을 꾹 닫은 게지.
임자 잃은 감나무(노래)
노랫말 - 손현희
작곡    - 노을
노래    - 손현희

이른 아침 햇살 비추고
즐거이 새들 노래 불러도
찾는 이 하나 없는 곳
외롭게 서 있네.

봄이면 노란 감꽃 피우고
가을엔 빨간 열매
웃으며 노래 부르던
그때가 너무 그리워

외로움도 깊어 가면
눈물마저 마르지
손 내미는 이 없으니
하늘만 보며 서있네

구름아 너는 내 마음 잘 알고 있지
언제나 넌 그렇게 나를 바라보면서
슬프게 웃고만 있구나

언젠가 내가 다시 일어나
빨간 열매를 맺을까


어제는 온종일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본 풍경들 하나하나가 매우 사랑스럽고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나오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그 사이에 풀과 나무, 꽃, 들판에 풍성하게 익어가는 벼들, 그리고 빨간 감나무 열매조차도 그저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주지 못했다는 게 미안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 언제나 아무 말 없이 우리 곁에 다가와서 제 할 일을 다 하고 어떤 투정도 부리지 않으며 머물다 가는 자연 앞에서 무척이나 미안한 생각이 말이지요.

짧게 머물다 가는 가을, 따듯한 눈빛으로 마음껏 느껴보고 즐겨보면 어떨까요? 그러다가 풀과 꽃, 나무, 작은 열매를 만나거든 나지막하게라도 인사를 건네주면 어떨까요? 

ⓒ 손현희


태그:#감나무, #임자잃은 감나무, #감 노래, #빈집,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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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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