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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 선생, 옛날에 트롬본을 하셨다면서요?"
"아, 네. 학교 다닐 때, 트롬본을 했지요."
"그거 참 잘 됐네요. 우리 악단에 브라스 파트가 적어서 걱정이었는데, 우리 악단에서 같이 한 번 해보지 않겠어요?"
"아이고 그걸 제가 할 수 있겠어요? 벌써 손 놓은 지가 몇 십 년인데요?"
"무슨 말씀을요. 내가 이 선생 연주 실력을 아는데요.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한 번 해봅시다."
"그렇더라도 트롬본은…."

이틀에 걸쳐 금오산 대주차장에서 공연이 펼쳐졌어요. 하루는 지역가수들과 주민들이 한데 어울렸고, 이튿날은 방송 녹화공연이었답니다. 작곡가 정원수 씨와 가수 진선미 씨의 사회로 펼쳐졌답니다.
▲ 낭만콘서트 '트로트만만세' 이틀에 걸쳐 금오산 대주차장에서 공연이 펼쳐졌어요. 하루는 지역가수들과 주민들이 한데 어울렸고, 이튿날은 방송 녹화공연이었답니다. 작곡가 정원수 씨와 가수 진선미 씨의 사회로 펼쳐졌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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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달 앞서, 남편이 김충수 선생님이 꾸리는 라이브카페에 갔다가 아주 멋진 제안을 받았답니다. 선생님은 구미, 경북 지역의 크고 작은 공연 행사를 이끄는 '김충수 악단'의 악단장님이시랍니다. 벌써 한 해가 넘도록 밴드 합주실에 다니면서, 여러 차례 공연도 했던 터라 새롭게 시작한 음악 생활이 무척 즐거운 일이기도 했지만, 악단 단원이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답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남편의 남다른 열정


실버TV 트로트만만세 사회를 맡은 분들이세요. 진선미 씨는 우리 구미 지역 출신 가수이기도 하답니다. 공연을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무척 반갑더군요.
▲ 작곡가 정원수 선생과 가수 진선미 씨 실버TV 트로트만만세 사회를 맡은 분들이세요. 진선미 씨는 우리 구미 지역 출신 가수이기도 하답니다. 공연을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무척 반갑더군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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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학창시절부터 악기 연주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지요. 한때는 그룹사운드도 하고, 연주인으로서 밥벌이까지 했던 사람이니, 그 실력만큼은 뒤지지 않는 답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말이지요. 밥벌이에서 손을 놓은 뒤로도 기타나 전자오르간 만큼은 지금까지 날마다 연주를 하고 살았으니, 음악 감각은 잃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트롬본 파트로 제안을 받다니요? 그것도 우리가 늘 연주인으로 우러르는 선생님 악단에 들어오라고 하시니 많이 놀랄 수밖에 없었답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제안을 받은 뒤로 곧바로 서둘러서 악기를 마련하여 그날부터 연습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모습이 무척 남다릅니다. 퍽 진지하고 모든 열정을 다 쏟는 듯했어요. 오르간이나 기타, 드럼을 칠 때는 워낙 익숙해서 그런지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도 멋진 연주를 해내는 걸 많이 봐 왔는데, 이 트롬본은 학창시절 뒤로는 손을 놓고 살았기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였어요. 하다못해 소리 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포지션을 익히는 데만 꽤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이더군요.

난 연주를 하는 남편의 열정을 믿고 있었기에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어요. 워낙 집념이 강한 사람이라 한 번 한다고 하면, 끝을 보는 성격을 알기에 말이지요. 더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니 왜 안 그러겠어요. 그 옛날, 새로운 악기를 익힐 때면, 적어도 석 달 동안은 잠자는 시간 줄이고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오로지 악기에만 매달려서 온종일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늦도록 연습하다가 새벽이 밝아오면 이젠 더 연습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화가 나곤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만큼 악기 하나에 온 마음을 쏟고 그런 열정으로 지금처럼 연주할 수 있는 솜씨를 익혔다는 걸 잘 알기에 이번에도 반드시 해내리라고 믿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연습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거였어요. 벌써 공연이 두 건이나 잡혀있다고 하더군요. 아직은 서툰 악기인데다가 자칫하면 선생님 악단에 폐를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앞서 애를 많이 쓰는 모습을 보니, 곁에서 지켜보는 내가 다 안쓰럽게 느껴졌어요. 난 그저 꾸준히 격려하면서,

"자기는 잘 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른 악기 다루듯이 그렇게 해요."

하지만, 나팔의 특성이 소리가 워낙 크기 때문에 아무 데서나 연습하기도 만만치 않았어요. 문틈마다 문풍지를 붙이고 이불까지 겹겹이 쳐놓고 그렇게 연습을 했답니다. 날마다 조금씩 좋아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희망이 보이기도 했답니다.

구미, 경북 지역에 여러 행사마다 좋은 연주로 공연을 펼쳐주시는 [김충수 악단] 악단장님이랍니다.
▲ 김충수 악단장님 구미, 경북 지역에 여러 행사마다 좋은 연주로 공연을 펼쳐주시는 [김충수 악단] 악단장님이랍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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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날짜는 자꾸만 미뤄지고...

4월 중순 쯤에 이틀에 걸쳐 두 가지 공연을 한다고 잡혀 있었는데, 천안함 사건, 애도기간과 맞물려 모든 공연이 미뤄지고 말았답니다. 더구나 두 번째 공연은 실버TV방송 가요콘서트 녹화 공연이기 때문에 미리 섭외했던 가수들의 일정까지도 다시 맞춰야 하는 거라서 모든 일정이 엉키고 말았답니다.

그 바람에 가수가 바뀌고 그에 따라 연주할 곡목도 여러 차례 바뀌고 말았지요. 무엇보다도 악보를 미리 받아볼 수 없다는 게 더욱 힘든 일이었어요. 그러나 이런 걱정은 오로지 남편만 하는 걱정이었답니다. 선생님 악단에 모든 단원들은 이른바, '초견 악보'가 되는 분들이었어요. 그러니까 공연이 잡히고 곡목이 정해지고 악보가 나오는 건, 공연하기에 앞서 하루 이틀 전에 나오더군요. 그러다보니, 전체 단원이 모여서 연습할 시간이 따로 없는 거예요.

공연 두 세 시간 앞서서 리허설 하는 시간에 악보를 처음 보는 거랍니다. 이러니 이분들이 얼마나 대단한 분들인지 알 만하지요? 실제로 공연 때 보니까 참으로 놀랍더군요. 금방 받아든 악보를 보고 그 많은 곡을 실수 한 번 없이 연주하는 걸 보니, 그야말로 프로연주자들이에요. 그 틈에 울 서방님이 끼었으니, 그 마음에 부담은 얼마나 컸을까요? 오죽하면 머리위에 커다란 돌덩이를 날마다 이고 사는 것 같다고 했을까요.

4월에 하려고 했던 공연은 미뤄졌고, 새로 잡은 날짜가 5월 중순, 그러나 또 다시 미뤄지고 맙니다. 애써 잡은 날에 하필이면 전국에 비가 내린다고 하네요. 어쩔 수 없이 그 다음 주로 미뤄져서 마침내 지난 5월 29일과 30일에 공연을 했답니다.

드디어 울 서방님 데뷔공연 무대에 서다!

공연하기에 앞서 무대에 자리 잡은 남편을 찍었어요. 울 서방님, 이렇게 보니 무척 멋지군요.
▲ 울 서방님, 데뷔무대에 서다 공연하기에 앞서 무대에 자리 잡은 남편을 찍었어요. 울 서방님, 이렇게 보니 무척 멋지군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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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공연은 '경북팝스연주회'란 이름을 내걸고 지역가수들이 한데 모여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공연이었어요. 나는 이번 공연에 촬영을 맡아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답니다. 서툰 솜씨라서 나 또한 부담이 되었지만, 남편이 김충수 악단에서 처음으로 데뷔공연을 하는데 이 놀라운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답니다.

악단장님이 첫 날 공연은 나름대로 관객들과 하나가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공연할 수 있는 자리라서 크게 부담 갖지 말라고 하셨지만, 남편은 아침부터 준비하고 집을 나설 때부터 몹시 걱정을 했어요. 나도 겉으로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준비하고 연습한 대로 잘 해내기를 참맘으로 빌었답니다.

구미 금오산 대주차장에 펼쳐진 무대를 보니 이제야 실감이 납니다. 저 무대 위에서 우리 서방님이 연주를 한다고 생각하니 설레기도 하더군요. 공연장에서 받아본 안내장 끄트머리에 연주인들의 이름이 실려 있었는데, 그 끝에 'TB2 이원주'라는 남편의 이름도 또렷하게 적혀 있더군요. 가슴 저 밑에서부터 큰 감동이 밀려왔어요.

남편은 저 뒤 오른쪽 맨 끝에 자리 잡고 있어요. 마음에 부담이 커서 그랬을까요? 공연 내내 얼굴이 안 보여요. 다른 분들은 모두 프로 연주자들이랍니다. 멋진 연주인이지요.
▲ 악단 브라스 파트 남편은 저 뒤 오른쪽 맨 끝에 자리 잡고 있어요. 마음에 부담이 커서 그랬을까요? 공연 내내 얼굴이 안 보여요. 다른 분들은 모두 프로 연주자들이랍니다. 멋진 연주인이지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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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부터 본 공연까지 거의 여섯 시간 가까이 하는데, 한낮 뜨거운 해를 그대로 받으면서도 모든 단원들이 하나가 되어 열심히 연주하는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진지합니다. 그리고 걱정을 많이 하던 남편의 트롬본 소리도 실수 없어 잘 나는 걸 보니 무척이나 뿌듯했어요. 무엇보다도 15인조 악단 모두가 하나가 되어 연주하는 그 음악은 참으로 아름답고 놀라웠어요.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훌륭한 연주회였답니다.

이튿날 공연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펼쳐지는 방송 녹화 공연이었답니다. '실버TV 트로트만만세'라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작곡가 정원수 선생과 성인가요 방송에서 자주 뵈었던 가수 진선미씨의 사회로 하는 공연이었지요. 그리고 이 자리에 나온 가수들이 모두 방송에서 많이 봐왔던 사람들이었어요. 우리가 워낙 음악을 좋아하다보니, 성인가요 방송은 빠뜨리지 않고 보는 편인데, 텔레비전 방송에서만 보던 가수들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신기하고 또 그들이 부를 노래를 연주하며 저 무대 위에서 열심히 트롬본을 부는 남편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답니다.

남편이 데뷔 무대에 서서 연주를 한다는 것도 무척이나 설레는 일이었지만, 텔레비전 방송에서만 보던 가수들을 만난 것도 퍽 즐겁고 신나는 일이었답니다. 김범룡 씨와 함께 '친구야'를 불렀던 가수 박진광 씨
▲ 가수 박진광 씨 남편이 데뷔 무대에 서서 연주를 한다는 것도 무척이나 설레는 일이었지만, 텔레비전 방송에서만 보던 가수들을 만난 것도 퍽 즐겁고 신나는 일이었답니다. 김범룡 씨와 함께 '친구야'를 불렀던 가수 박진광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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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 어떡하나'라는 곡으로 사랑받고 있는 가수 김영철 선생입니다. 이분은 김충수 악단에 전속가수이기도 하지요. 여러 가지 봉사공연도 많이 다니신답니다.
▲ 경북팝스연주회 요즘 '나 어떡하나'라는 곡으로 사랑받고 있는 가수 김영철 선생입니다. 이분은 김충수 악단에 전속가수이기도 하지요. 여러 가지 봉사공연도 많이 다니신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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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에 걸쳐 큰 공연을 끝내고 난 뒤, 그제야 남편은 한시름 놓았답니다. 몇 달 동안 머리 위에 큰 돌을 얹어 놓은 듯 부담되고 힘겨워했던 시간들이 끝나고 이제야 마음이 좀 가벼워진다고 하더군요. 또 악단장님을 비롯해서 여러 단원들이 처음 하는 공연인데도 참 잘했다고 칭찬까지 해주셨어요. 그러나 그저 마음을 놓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돌아오는 6월 16일 경북 청송에서 하는 공연이 또 잡혀 있답니다.

첫 데뷔공연을 아무 탈 없이 잘 치러낸 남편이 무척이나 대견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남편 자랑하는 팔불출 아내라고 나무라실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서방님, 이만하면 자랑해도 되지 않을까요?

오늘부터 2010년 월드컵 축구가 시작됩니다. 이에 맞춰, 이번 '경북팝스연주회' 때 연주한 '월드컵송' 연주곡 동영상을 함께 올립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첫 데뷔공연으로 함께 하며 연주한 연주곡이랍니다. 아울러 이번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우리 나라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동영상을 보면서 힘찬 응원 부탁드립니다.

▲ 월드컵송 - 김충수 악단 공연 실황 경북 팝스 연주회에서 공연한 동영상입니다. 김충수 악단 단원으로 이번에 새롭게 함께 한 남편이 트롬본을 연주했지요. 데뷔공연을 아무 탈 없이 치러낸 남편이 무척이나 자랑스럽네요. 오늘(11일)부터 월드컵 축구가 시작되네요. 이에 맞춰 '월드컵송' 연주곡을 하나 올립니다. 마지막 부분에 아주 재미난 모습이 기다리고 있으니 끝까지 지켜봐주세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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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http://cafe.daum.net/kcsacdan 김충수 악단 카페에 오시면, 이틀에 걸쳐 찍은 동영상과 사진이 있습니다.



태그:#김충수악단, #연주인, #트로트만만세, #트롬본, #월드컵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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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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