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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터미널에서 택시 타고 10분만 오시면 됩니다."

의외였다. 또래 친구 없이 혼자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홀로 1학년생' 연진이(8)를 만나러 가는 길은 그리 멀지도, 험하지도 않았다.

연진이가 다니는 학교는 전북 순창군 유등면에 위치한 '유등 초등학교.' 입학생이 한 명뿐인 학교라고 해서 당연히, 한번 들어가기도 힘들고 나오기도 힘든 산간오지일 거라 생각하고 길을 물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연진이 담임 선생님의 대답은 명쾌했다. 택시도 있고, 읍내에서도 멀지 않단다.

눈이 부실 정도로 푸른 빛이 반짝거리는 들판을, 택시로 시원하게 가로지른 지 몇 분이나 흘렀을까. 나는 이미 목적지에 닿아 있었다. 오후 1시 30분, 학교에서는 방과후 수업이 한창이었다. 

전교생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학교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체육실에 가보니, 연진이는 2학년 언니오빠들과 함께 스포츠 댄스를 배우고 있었다. 

전북 순창 유등초등학교 1,2학년 아이들이 방과후 스포츠 댄스 수업을 받고 있다.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나홀로 1학년' 연진이.
 전북 순창 유등초등학교 1,2학년 아이들이 방과후 스포츠 댄스 수업을 받고 있다.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나홀로 1학년' 연진이.
ⓒ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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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 스포츠 댄스 시간에 연진이가 선생님의 자세를 따라해 보고 있다.
 방과후 스포츠 댄스 시간에 연진이가 선생님의 자세를 따라해 보고 있다.
ⓒ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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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진아, 이쪽 손이 이렇게 와야지. 다시 한번 해보자. 그렇지. 아주 잘했어요."

총 5명의 아이들이 참가하는 스포츠 댄스 교실은 인상적이었다. 선생님과 함께 춤을 춰보고 자세를 교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확실히 많아 보였다. 학창 시절 체육이나 무용 수업 시간이면 50명이 넘는 학생들이 어깨 너머로 선생님의 자세를 따라해 본 게 전부였던 기자에게는 조금 생경한 모습이다. 도착하자마자 잠시 얘기를 나누었던 조순자 유등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제가 (다른 학교에서) 평교사였을 때, 한 학급에 40명 정도 되는 학생들의 이름을 다 불러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요. 지금 우리학교 아이들은 선생님의 관심을 듬뿍 받으면서 자랍니다."

유등초등학교의 전교생은 20명. 일반 초등학교 한 학급의 학생 수도 되지 않는 규모다. 이 중에 1학년과 4학년생이 각각 1명이고, 2학년이 3명, 3학년이 3명, 5학년은 5명, 6학년이 6명이다. 이를 다 합하면 19명인데, 그렇다면 나머지 한 명은 누구일까?

바로 연진이 담임 선생님인 김동주 교사의 막내 아들 성현이(6)다. 성현이는 유치원에 가야 할 나이이지만, 혼자 공부해야 하는 연진이를 위해 선생님이 특별히 데려온 청강생이다. 

1학년 연진이의 짝꿍은 6살 동생 성현이

연진이는 2살 어린 동생 성현이와 함께 한 교실에서 공부한다. 성현이 덕분에 '나홀로 1학년' 연진이는 외롭지 않다.
 연진이는 2살 어린 동생 성현이와 함께 한 교실에서 공부한다. 성현이 덕분에 '나홀로 1학년' 연진이는 외롭지 않다.
ⓒ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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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진이는 매일 성현이와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다. '나홀로 1학년' 연진이가 정말 혼자 외로이 공부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김동주 담임 선생님에게는 약간의 고민이 있었다.

"연진이가 언니오빠들보다는 어린 동생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생각의 폭을 넓힐 기회가 많지 않아 걱정입니다. 또래 집단과의 활발한 교류가 지적 성장에 도움을 주는 부분도 적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연진이한테, 성현이 유치원 보낼까 하고 물어보면, 그건 싫다고 하네요."

기자가 하루 동안 살펴보니, 아이들은 아웅다웅 다투는 듯하다가도 이내 함께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어울려 놀았다. 연진이는 동생과 함께 공부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기자의 질문에 연진이는 딴청을 피우며 수줍게 대답했다.

"연진아, 성현이랑 같이 공부하니까 어때?"
"(성현이가) 자꾸 까불어서 싫어요."

그러자 성현이도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나도 그래요."

적극적이고 활발한 성현이가, 차분한 성격의 누나에게 장난을 많이 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성현이 귀엽지?"
"귀엽죠."
"성현이랑 계속 같이 공부하고 싶어?"
"네, 그러고 싶어요."

"연진이랑 똑같은 1학년 친구들은 없어도 괜찮아?"
"아니요, 있어야 돼요. 하지만요 제가요 7살 때 캠프 갔을 때요, 저하고 똑같은 7살짜리 친구 두 명 있었어요.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유등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다녔던 연진이는 그때도 언니, 오빠, 동생들과만 놀았다. 그런 연진이가 작년 여름 유치원 캠프에서 친구 두 명을 사귀었던 것. 연진이는 그 친구들에 대한 기억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었다. 

연진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성현이가 좋아하는 과자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연진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성현이가 좋아하는 과자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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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맞춤수업, 시골학교에도 좋은 점 많아"

스포츠 댄스 수업이 끝나고 오후 2시가 넘었지만 연진이는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1학년 교실로 돌아온 연진이와 성현이는 영어 방송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이 시간에 연진이는 주로 담임 선생님의 지도 아래 부족한 수학 공부도 하고 책도 읽는다.

김동주 선생님은 연진이의 학업 수준과 흥미를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덕분에 방과후 수업은 고스란히 연진이를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이다. 김 선생님은 셈에 약한 연진이가 계산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돕는다. 또 연진이가 순창 읍내에 있는 영어 학원에 다닐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영어 동화방송을 반복적으로 틀어주며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힐 수 있도록 해준다. 책 읽는 것을 즐기지 않는 연진이가 독서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기도 한다.

"우리 학교에서는 절대 아이가 방치되는 일이 없어요. 30~40명의 아이들이 모여있는 도시 학교에서는 학생 스스로가 적극적이지 않으면 발표할 기회조차 얻기 어렵잖아요. 적극성과 학습태도를 기르기에는 시골 소규모 학교가 좋습니다."(김동주 담임 선생님)

연진이와 성현이가 선생님께 컴퓨터 사용법을 배우고 있다.
 연진이와 성현이가 선생님께 컴퓨터 사용법을 배우고 있다.
ⓒ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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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학교 수업이 좋아도 도시의 사교육을 따라잡기는 힘든 게 엄연한 현실이다. 김 선생님은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가까운 순창 읍내와 비교해 봐도 이곳 아이들의 학업 수준이 조금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젊은이 없는 농촌, 연진이 엄마도 '나홀로 34살'

오후 4시 30분, 기자는 연진이와 함께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서 3km 가량 떨어진 연진이의 집으로 향했다. 학교 병설 유치원에 다니는 연진이의 남동생 연옥이(5)도 함께 였다. 이때쯤 되자 연진이의 수줍음도 조금은 사라졌다. 옆에서 연신 재잘거리더니, 버스에서 내릴 때쯤엔 먼저 손을 잡아왔다.

연진이의 어머니 유수희(34)씨는 막내 영선이(3)를 업은 채 마당으로 나와 반갑게 기자를 맞아주었다.

연진이의 부모님은 요즘 시골에서 찾아보기 힘든 젊은 부부다. 아버지 서성국(39)씨는 이 마을에서 자랐다. 연진이 어머니의 고향도 가까운 임실이다. 이들은 2000년에 가정을 꾸린 후 서씨가 자란 집에서 지금껏 살아오고 있다. 서씨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년 정도 일용직 일을 하다 올해부터는 농사일을 시작하게 됐다.

연진 엄마 유씨도 지금 살고 있는 마을에는 또래 친구가 없다. 동네 이웃은 대부분 '형님'들. 요즘에는 필리핀 등지에서 온 외국인 아내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그들은 나이가 한참 어린 동생들이다.

유씨는 그래도 농촌 생활이 좋다고 말했다. 공기 좋고, 인심 후하고, 아이들에게 체험학습 따로 시킬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도 유씨는 딸아이의 학교 교육을 만족스럽게 여겼다. 교육열 높은 선생님 밑에서 맞춤식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지금의 학교가 도시의 학교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는 게 유씨의 생각이다.

"연진이 또래 딱 한명만 전학왔으면..."

하지만 역시, 연진이의 단짝 친구가 되어줄 또래가 하나도 없다는 데 대한 아쉬움은 컸다.

"연진이 주위에는 동생밖에 없어요. 집에 와도 동생들만 있고, 동네에서 노는 애도 동생, 같이 공부하는 성현이도 동생이고요. 유치원 때부터 동생들이랑만 노는 거에 애가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좀 받는 것 같아요. 요즘엔 부쩍 언니들하고 어울리고 싶어 해요."(연진이 어머니 유수희씨)

일을 마치고 귀가한 아버지 역시 딸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았다.

"초등학교에서는 걱정할 것이 없어요. 기초를 다지기에 이만큼 좋은 환경도 없지요. 문제는 중학교에 가고 나서예요. 순창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가면 다른 애들은 끼리끼리 다 알고 있을 건데 연진이만 아는 애가 없잖아요. 연진이가 좀 내성적인 것 같은데 혹시 중학교 가서 적응을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많습니다."(연진이 아버지 서성국씨)

서씨는 또 "연진이가 자꾸 말수가 줄어드는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것도 그만큼 애가 외롭다는 얘기 같다"며 안쓰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5학년 현진 언니와 함께 서서 활짝 웃고 있는 '나홀로 1학년' 연진이.
 5학년 현진 언니와 함께 서서 활짝 웃고 있는 '나홀로 1학년' 연진이.
ⓒ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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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군 유등면 유촌리의 아이들이 1일 아침 마을 어귀에서 스쿨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왼쪽에서 첫번째는 유치원생 미선이, 두 번째가 연진이다.
 전북 순창군 유등면 유촌리의 아이들이 1일 아침 마을 어귀에서 스쿨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왼쪽에서 첫번째는 유치원생 미선이, 두 번째가 연진이다.
ⓒ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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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터미널의 서울행 막차는 오후 3시 반이다. 저녁쯤 취재를 마친 기자가 서울로 돌아갈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 인심 좋은 연진이 부모님의 배려로 기자는 연진이의 집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연진이가 등교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 하나둘씩 모여드는 유촌리의 아이들은 유치원생 미선이를 제외하고 모두 연진이보다 나이가 많았다. 5학년 현진이 언니는 연진이를 만나자마자 껴안기부터 한다. 언니오빠들의 귀염둥이인 연진이가 외로워할 일은, 적어도 지금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앞으로 연진이가 느끼게 될 허전함은 생각보다 클지도 모른다. 2학년 연진이와 함께 노는 2학년 친구, 3학년 연진이와 싸우기도 하고 또 화해하는 3학년 친구, 4학년 연진이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4학년 친구는, 누군가가 이곳으로 전학을 오지 않는 이상, 여전히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서울 갈 때 엄마가 같이 안 가도 괜찮대요"

연진이는 오는 9일부터 11일까지 2박3일간 <오마이뉴스>가 주최하는 '나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 캠프에 참가해 서울과 인천 강화도를 방문한다. 이곳에서 연진이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또래 친구들 30여 명을 만나 함께 놀이공원에도 가고 체육대회도 하며 멋진 추억을 쌓는다. 다음 주가 되면 친구들 많이 만날 건데 기분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연진이는 "에버랜드도 간대요"라며 연신 방긋거렸다.  

며칠 전, 연진이 어머니가 이렇게 물었단다.

"연진아, 엄마는 동생 땜에 캠프에 못 가고 선생님이 같이 갈 건데 괜찮겠어?"

아직 한번도 엄마 아빠와 떨어져 자본 적 없는 연진이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응 괜찮아 괜찮아."

캠프가 끝난 후 연진이의 기억 속에 고이 간직될 수 있는 친구의 이름이 몇이나 될까. '나홀로 입학생' 연진이가 '또래 친구들과 더불어 함께하는' 추억을 고이 간직할 수 있기를...


태그:#나홀로 입학생, #더불어 함께 입학식, #유등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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