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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하게 들리는 소리가 있다. 지난 5·18기념재단 후원으로 열린 '2010 동북아시아 포럼'에서 '자이니치' 관련 발언을 하던 한 일본 청년의 목소리가 그런 경우다.

 

19일부터 20일까지 광주에서 있었던 '동북아시아 이주노동자 인권증진을 위한 포럼'에서 질의를 하던 청년의 발언 말미에는 물기가 느껴졌었다. 동시통역을 하던 통역사의 목소리 역시 촉촉해져 있었다.

 

청년은 오랫동안 일본에서 자이니치 지원 운동을 해 왔던 '일본 이주노동자 연대' 아카모토 사무처장의 아들이었다. '재일(在日)'이라는 뜻의 자이니치는 재일동포끼리 서로를 호칭할 때, 혹은 일본인이 재일동포를 부를 때 사용하는 용어다.

 

청년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중, 조선, 중국 등 식민지 출신들로 전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정착한 주민들을 일컫는 '올드 커머(old comer)' 이주노동자로 분류되는 자이니치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일본에서의 자이니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음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왜 자이니치 여성들이 치마저고리를 입고 거리를 다닐 수 없는가?"라고 질문을 던진 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청년의 울음 섞인 발언 이후 자이니치 문제에 관심이 생겼던 터에, 같은 포럼에 참석한 재일동포 김종찬씨와 식탁에서 자연스레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김종찬 씨는 재외동포 지원 운동을 해 왔던 사람이다. 그는 자이니치 차별 문제의 핵심은 "돌아갈 집이 없는데, 너희 집에 돌아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했다.

 

재일동포들에게 있어서 '자이니치'는 그들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단어이긴 하지만, 자라고 배운 나라를 떠난다는 것은 정든 집을 떠나는 것과 같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집을 떠나라, 너희 집으로 가라'고 하는 것은 뿌리 깊은 차별 의식이 자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어 김씨는 이 문제는 전후에 입국한 이주노동자인 뉴커머(New comer) 문제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했다. 특별히 체류 기간 도과자(Over stayer)들의 문제에 있어서, 돌아갈 집이 없는데, 너희 집에 돌아가라고 하는 것은 개인의 행복 추구권을 무시하는 폭력이라고 강변했다.

 

치마저고리로 시작한 김종찬씨와의 대화는 일본 민주당 정권이 지난 3월말 통과시킨 고교무상화법에서 조선학교를 배제한 문제까지 이어졌다. 김씨는 그 문제에 대해 매우 격분해 있었다.

 

"나는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에 속한 사람이다. 하지만 조총련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북한과의 사이가 나빠지면 일본에서 자이니치에 대한 문제가 빈번해진다. 일본 민주당 정권이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하겠다고 하면서 조선학교에 대해서는 지원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여론이 나빠지자 한 발 물러서서 검토를 한다고 했다. 그 사람들이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상식이고, 인권이다."

 

현재 문제가 된 고교무상화법에서의 조선학교 배제는 시민단체의 비난으로, 민주당 정부가 8월까지 다시 검토를 한다고 했지만, 그 결과는 장담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동안 재일동포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들여다 볼 기회가 없었던 사람의 입장에서,  평소 '자이니치'라는 단어는 재일 동포에 대한 차별적 용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종찬씨와의 대화를 통해 자이니치라는 말이 단순히 어디에 사는지를 표현하는 용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종찬씨는 자이니치라는 말을 할 때, '자이니치 조센진(조선인)'과 '자이니치 강꼬꾸진(한국인)'을 구별해 사용했다. 역시 '조센진'이라는 단어에 대해 일제 이후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멸시하는 용어로 사용하던 단어라는 인식을 갖고 있던 입장에서는 '자이니치 조센진'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하지만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김씨가 그렇게 사용한 것은 조총련측 재일 조선인과 민단측 재일 한국인을 구분하고자 함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김씨는 자이니치 조센진과 자이니치 강꼬꾸진을 정치적으로 구분하지는 않았다. 민단에 속한 그는 조총련계에 대해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가질 정도로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김씨와 이야기를 나눈 후, 어쩌면 '자이니치'는 김씨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단어이면서 일본사회 구성원으로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발걸음을 딛는 기제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는 돌아갈 집이 없는 자이니치이기 때문이다.


태그:#5.18기념재단, #이주노동자, #자이니치,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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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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