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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 나선 김태영 국방장관에게 천안함 침몰과 북한의 연관성에 대한 발언 수위를 조절할 것을 요청하는 메모를 보낸 사실이 뒤늦게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5일 <노컷뉴스>가 공개한 메모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기뢰와 어뢰 중) 어뢰가 더 실제적"이라는 김 장관의 답변에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메모를 통해 "기존 답변대로 모든 가능성을 열고 조사 중이라고 답하라"는 구체적인 지침을 내렸다.

 

김 장관은 이날 '북 잠수정 추적 실패'를 지적한 김동성 한나라당 의원이 "(내부 원인과 암초 가능성을 제하고 남은)기뢰와 어뢰의 가능성 중 어느 것이 높나"라고 질문하자, "어뢰일 가능성이 조금 더 실질적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의 답변은 '어뢰'와 '기뢰' 두 가지 가능성만 놓고 봤을 때 어느 것이 더 가능성이 높냐는 데 대한 대답이었다.

 

사실 이날 김 장관의 답변은 대체로 "천안함 침몰과 북한과의 연관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북 잠수정의 특이동향과 관련해 그는 "지난 24~27일 잠수정 2척이 보이지 않는 않은 바가 있었다"면서도 "이 지역(사고해역)과 꽤 먼 곳이기 때문에 연관성은 약하다"고 말하며 관련성을 부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대다수의 언론들은 김 장관의 '어뢰 가능성' 답변에만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결국 김 장관에게 전해진 메모는 언론 보도에 부담을 느낀 청와대가 직접 '긴급 진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어뢰' 부담된 청와대, 장관 발언 조정하려다 '꼬투리' 잡히나

 

<노컷뉴스>가 공개한 메모에는 "장관님! VIP(대통령을 뜻하는 은어)께서 외교안보수석(→국방비서관)을 통해 답변이 '어뢰 쪽으로 기우는 것 같은 감을 느꼈다'고 했다"고 돼 있다. 이 대통령이 천안함 침몰 원인으로 '북한 어뢰 공격'이 확정되는 듯한 분위기에 큰 부담을 느낀다는 뜻이다. 바로 뒤 괄호 속에는 "기자들도 그런 식으로 기사를 쓰고 있다고 한다"는 경고 문장까지 담겼다.

 

청와대는 메모를 통해 "여당의원 질문형식으로든 아니면 직접 말씀하시든 간에 '안보이는 것 2척'과 이번 사태와의 연관성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기존 입장인 침몰 초계함을 건져봐야 알 수 있으며 지금으로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고 어느 쪽도 치우치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시라"고 구체적인 답변 내용을 전달했다.

 

또 사라진 북한 잠수정 2척과 관련해 "또한 보이지 않은 2척은 식별 안되었다는 뜻이고, 현재 조사 중에 있으며, 그 연관관계를 *** 직접적 증거나 단서가 **** 해 달라고 한다"는 이 대통령의 뜻 역시 전달됐다.('***' 부분은 사진으로 확인 불가능한 단어)

 

메모 전달 뒤 현안질의 후반부로 갈수록 김 장관은 북한 개입설에 대해 좀 더 신중한 답변 태도를 보였다. 

 

마지막 질의자였던 정옥임 한나라당 의원이 "(김 장관이)어뢰에 의한 피격 가능성 높다고 했다"고 물었을 땐 "앞으로 분명한 조사 및 분석을 통해 밝혀지기 전에는 '어뢰일 것이다, 기뢰일 것이다' 말투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확실히 못 박기도 했다. 

 

김 장관은 또 4일 국방부 기자실을 직접 방문해 '북한 연관설'을 진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국회에서는) 질문이 기뢰하고 어뢰하고 어느 게 유력하냐는 식의 2지선다형으로 몰고가다보니 그렇게(어뢰가 더 실제적이라는) 대답이 나온 것"이라며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 중"이라고 재차 설명하기도 했다. 기자들에게 "소설 쓰지 말고 기다려 달라"는 요청도 덧붙였다.

 

청와대 "MB 뜻 담긴 메모 아냐,  국방부가 임의로 'VIP' 삽입"

 

'VIP'라는 표시가 담긴 이 메모 속 내용은 보기에 따라 큰 파장을 낳을 수 있다. 언뜻 보면 청와대가 난무하는 유언비어를 경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북한 혹은 6자 회담 당사국과의 관계, 남북정상회담 준비 등을 이유로 '북한 연관설'을 애써 부정하고 싶은 이 대통령의 뜻이 담긴 것이라면 여당과 보수층의 반발을 불러 올 수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문제의 메모가 이 대통령의 진의를 드러낸 게 아니고 실무진 차원에서 전달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이날 "TV를 보다가 우려스러운 면이 있어 실무진을 통해 뜻을 전했는데 받아들이는 국방부가 '청와대에서 왔으니 대통령 뜻이겠지'라고 생각해 VIP 운운하는 메모를 넣은 것 같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북한 연관설'을 부정하는 듯한 이 메모 한 장에 대한 해석을 놓고 의혹은 더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이 메모는 북한의 공격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는 보수언론의 추측을 막으려다 의혹을 더 키우는 '자충수'를 둔 꼴이 되는 셈이다.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일 한나라당 의원들과의 오찬에서 "지난해 11월 대청해전 때와 달리 이번 사고 직후에 감청된 북한군의 교신기록을 보면 특이 동향이 없다"며 "정황도 없는데 개입했다고 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여당 의원들의 입단속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5일 라디오 연설에서도 "섣부른 예단과 막연한 예측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종합적으로 엄정한 사실과 확실한 증거에 의해 원인이 밝혀지도록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태그:#이명박 , #메모, #김태영, #북한 개입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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