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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19일 오후 청와대에서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교장관을 접견, 악수를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19일 오후 청와대에서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교장관을 접견, 악수를 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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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프랑스의 베르나르 쿠슈네르 외교장관이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에 대한 협력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2007년 시민단체인 문화연대의 프랑스 법원을 상대로 한 외규장각 도서 반환 소송 1심 판결이 기각되자, 문화연대는 이에 대해 항소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한편, 정부가 프랑스에 외규장각 도서의 '영구대여'를 공식 요청해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상황에서 쿠슈네르 장관의 이 발언은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바야흐로 외규장각 도서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셈이다.

일본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본 '기증' 사태, 잊었나

이달 초 정부가 외규장각 도서를 영구대여를 요청하기로 추진하고 이에 관한 문서를 프랑스에 전달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았을 때 큰 충격에 휩싸였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왜냐하면 영구대여는 가장 큰 패착이자 악수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본을 일본에서 반환 받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반환'이라고 분명히 못박았는데, 일본은 '반환'이 아니라 '기증'이라고 했다. 물론 오대산 본이 돌아온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양국 사이에는 '반환'이라는 용어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다(신병주,<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책과함께, 2007 참조).

어쩌면 사소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 입장에서 보면 '반환'한 것이 아니라 양국의 우호증진 차원에서 '선심'으로 '기증'한 것이라고 해석될 여지도 있다. 이는 앞으로 우리가 문화재를 환수 받는 입장에서 얼마든지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외규장각 도서를, 그것도 영구대여를 추진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는 결국 외규장각 도서를 완전히 돌려받는다는 의미의 반환이 아닌, 영원히 빌린다는 의미가 된다. 완전히 돌려받는다는 것과 빌린다는 것은 의미가 전혀 다르다. 우리는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외규장각 도서가 분명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고 프랑스에 약탈된 것이기에 어떻게든 돌려받아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돌려받느냐는 것이다. 어떻게 받을 것인가?

예를 들어보자. 우리집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이 물건을 훔쳐가고 물건이 가득 담긴 가구를 불살랐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도둑을 용서하고 도둑과 우호를 다져나가기로 한다. 그러나 법으로 따질 때 도둑은 물건을 우리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도둑에게 어떤 식으로 물건을 받을 것인가? 법에 따라 정당하게 돌려받을 것인가? 아니면 도둑이 법에 따라 내놓지 않는다고 조급한 마음에 도둑에게 영원히 빌릴 것인가?

너무 단순한 비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영구대여는 이러한 위험성을 안고 있다. 외규장각 도서를 최초로 발견한 박병선 박사의 외로운 투쟁까지 포함한다면 족히 30년 가까이 펼쳐져온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 문제(이에 관해서는 이태진, 외규장각도서를 찾는 의미, <왕조의 유산-외규장각도서를 찾아서>, 지식산업사, 1994. 참조). 왜 30년 동안 조용하지만 끊임없이 이 문제가 제기됐을까? 바로 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된 문화재이기 때문이다. 정당한 방식으로 프랑스에 건너간 것이 아니라 불법적인 수단으로 약탈을 당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약탈된 도서는 파손도서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으며, 심지어 어람용 <기사진표리진찬의궤>(己巳進表裏進饌儀軌)는 관리 소홀로 싼 값에 대영박물관에 넘어가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본다면 과연 프랑스가 외규장각 도서에 대해서 발언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영구대여 아닌 반환이 옳다

그렇다고 해서 외규장각 도서를 되돌려 받는 게 쉽다고 생각했다면 그것 또한 위험천만한 생각이다. 비록 약탈 문화재라 해도 자기 손에 들어온 것을 쉽게 내놓으리라고 생각했다면 지극히 유아적인 발상이 아닐까? 그렇기에 우리는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딛으면서 반환을 추진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외규장각 도서의 실사가 있었고, 유일본 의궤의 디지털화 사업도 진행됐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이 앞으로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르나 분명한 것은 시간이 얼마가 걸렸든 반드시 정당한 방식으로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약탈된 문화재를 영구히 빌린다는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게 아닐까?

위의 오대산 본 사례에서도 봤듯이 우리 입장에서 아무리 반환을 공식화했다 해도 일본은 기증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명칭의 완전한 합의조차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 문화재 환수다. 그런 사정을 뻔히 안다면 영구대여를, 그것도 정부가 공식적으로 추진하고 요청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생각인가를 우리는 바로 봐야 한다.

우리 국민들도 절대로 조급하게 무엇을 돌려받는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거북이의 걸음처럼 그렇게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속에서 언젠가는 반드시 정당하게 돌려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그런 정의와 정당이라는 고통과 인내의 길을 걸어온 사람에게 비로소 값진 성공과 승리의 열매를 안겨주었다. 우리는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쿠슈네르 장관이 이야기한 '반환'이라는 뜻이 정말로 반환에 협력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영구대여에 협력하겠다는 것인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영구대여는 가장 큰 패착이자 악수이며, 이것이 선례가 되어 우리는 앞으로 문화재를 환수받는 입장에서 물건을 훔친 도둑에게 돌려받는 것이 아닌 빌리는 이상한 방법의 제 2, 제 3의 문화재 환수를 낳을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정부의 영구대여 추진 입장은 철회되어야 한다. 우리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외규장각 도서를 정당한 방법으로 되돌려받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 같은 내용의 글을 새벽에 먼저 실었는데, 기사로 올리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을 수정하고 고쳤습니다.



태그:#외규장각도서, #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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