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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

 

어떤 사람의 삶이든 그 삶 속에서 적지 않은 일을 겪는다. 기쁜 일도 많겠지만, 가슴 시릴 만큼 슬프고 아픈 일들 또한 그에 못지 않게 겪는다. 물론 그 아픔은 기억에서 덜어내버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덮어내고 잊어버리기보다는 그 아픔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다시는 이를 겪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20세기 궁궐은 무수한 상처를 입었다. 대한제국을 불법으로 강점한 일본에 의해, 그리고 해방 이후 우리 자신의 오해와 무지, 편견에 의해. 비록 때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의 사랑과 관심으로 그 아픔은 상당 부분 아물었다. 식민통치의 본산으로 전락했던 경복궁은 얼마 전 광화문 복원에 앞서 상량식(上樑式)이 펼쳐지면서 1차 복원 정비 사업의 마무리를 눈앞에 두고 있으며,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또한 궐내각사 영역이 일반인에게 개방되고, 부분적인 보수, 정비가 이뤄지고 있다. 다른 궁궐 또한 미미하나마 궁궐다운 모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상처는 아물었을지언정 상처를 입었던 사실 자체마저 지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진실은 가려진다고 가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궁궐이 입었던 아픔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그것을 냉정히 살펴보고 다시 그런 아픔을 겪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스스로 다독이며 대비해야 하는 것, 그것이 궁궐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나는 궁궐을 답사하며 수많은 문헌들이 소개하고 있는 궁궐의 파괴, 변형, 왜곡된 모습을 특히 눈여겨보며 찾아다닌다. 물론 내 나름대로 우리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어떤 것들이 있는가를 찾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이를 찾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시간을 들여야 함도 새삼 깨닫는다. 답사를 하면서 다시 꼼꼼히 살펴본 수많은 것들 가운데 몇 가지를 여기에 소개하려 한다(광화문과 조선총독부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앞글에서 했으므로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궁궐 경내에 불교 유물?

 

현재 경복궁 경내에서 그리 낯설지 않은 탑 하나를 볼 수 있다. 교과서에서 그 이름을 접했던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法泉寺 智光國師 玄妙塔) 그것이다. 이 탑은 고려 때의 승려인 지광국사의 승탑(僧塔, 부도)이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탑이 불탑(佛塔)이라면, 승려의 사리를 모시는 탑이 승탑이다. 물론 이전에는 이 말고도 수많은 불탑, 승탑 등이 경복궁 경내에 있었는데, 용산에 국립중앙박물관이 들어서면서 대부분 이곳으로 옮겨갔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이름대로 지광국사 현묘탑은 법천사터에 있었어야 한다. 그런데 왜 경복궁에 왔을까? 아니, 불교와 관련된 유물 자체가 왜 경복궁에 있었을까? 우리가 국사를 배우면서 귀에 따갑도록 들은 말 가운데 하나가 조선의 이념은 억불숭유(抑佛崇儒)였다는 것이다. 그럴다면 이 유물들은 경복궁이 궁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들을 소개하고 있는 안내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유물들의 상당수가 1915년 무렵 경복궁으로 옮겨온 것으로 되어 있다.

 

1915년은 일본이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始政五年紀念朝鮮物産共進會)를 연 해였다. 식민통치를 한 지 5년을 기념하여 경복궁 경내에서 연 일종의 박람회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전각들이 헐려나가고 주요 전각들과 여러 시설들이 전시장으로 전락했다. 이는 또한 조선총독부를 짓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국보급의 불교 유산들이 이곳에 옮겨졌고 최근에야 새로 지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가게 된 것이다.

 

어릴 때 수학여행을 오고 대학생이 되어 처음 단체답사를 왔을 때도 나는 이러한 유물들이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 별반 의심을 하지 않았다. 궁궐에 관해 전혀 모를 때이기도 했지만, 조선총독부가 철거되기 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여 조선총독부보다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다가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 뒤에 가려진 경복궁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덜 했었다. 그것이 불과 10여 년 전의 생생한 내 기억이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에 소름이 끼친다.

 

창경궁이 겪은 쓰라린 아픔

 

창경궁의 관천대를 둘러보고 난 뒤 그 일대를 보면 온통 빈 터일 뿐이다. 그러나 창경궁을 그린 그림을 살펴보면 이 일대에는 수많은 전각들, 시설들이 가득했다. 자연스럽게 없어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일본은 이곳에 동물원을 세웠다.

 

1907년 일본에 의해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고, 순종이 원치 않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1907년 11월 순종이 창덕궁으로 이어하는 것과 때를 맞추어 일본은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창경궁 경내에 동물원을 개설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식물원도 들어섰고, 1909년 개원식과 함께 일반의 관람도 허락했다. 왕조의 정치와 행정의 본산이자 밀도 있는 역사의 현장이었던 궁궐이 유원지로 변해버린 것이다.

 

 

한편 지금의 자경전(慈慶殿) 터에는 박물관도 들어섰다. 이왕가박물관(李王家博物館)이라 불리던 그것이다. 자경전이 어떤 곳인가? 바로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그 전각이 아니던가? 궁궐 그림을 보면 자경전 뒤쪽으로 난 문을 통해 바로 동궐의 후원의 초입인 주합루와 부용정 일대로 갈 수 있었다. 자경전은 고종 때 불에 타 빈 터로 남게 되었다. 그런데 왜 일본은 하필 이곳에 박물관을 세웠을까? 그들이 고종과 명성황후의 흔적을 의도적으로 지워버리고 왜곡시켰던 것처럼 고종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정조의 흔적을 지워버리려 했음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현재 동물원은 과천의 대공원으로 이전했고, 박물관 건물 또한 해방 이후에 장서각으로 쓰이다가 최근에 헐리고 터만 남았다. 그러나 식물원은 아직도 대온실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어 창경궁이 겪은 쓰라린 아픔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해방 이후의 우리의 오해, 무지, 편견

 

유네스코에서 창덕궁과 후원을 세계문화유산에 지정할 때 그 주된 이유로 "동아시아 궁궐 건축 및 정원 디자인의 뛰어난 원형으로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룬 형식의 탁월함"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궁 안에 있는 수많은 잔디밭과 시멘트길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의문이다. 우리야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지만, 외국인들은 그것을 우리 궁궐의 원형이라고 알게 될 것이 아닐까? 생각만 해도 답답한 일이다.

 

경복궁 안에는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진 국립민속박물관이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자체는 우리에게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문제는 그 건물이다. 그 모양새가 참으로 가관이다. 우선 건물은 크고 화려하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르는 계단과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기단은 불국사(佛國寺)의 석조기단과 다리를 본뜬 것이라 한다. 위의 세 건물은 각각 법주사 팔상전(法住寺 捌相殿), 화엄사 각황전(華嚴寺 覺皇殿), 금산사 미륵전(金山寺 彌勒殿)을 본뜬 것이라 한다. 물론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다. 궁궐 안에 불교 건축의 양식을 도입하여 건물을 세울 생각을 도대체 누가 했을까? 더구나 합쳐놓고 보니 전혀 우리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위의 시멘트길, 국립민속박물관, 그리고 지금 복원되고 있는 광화문 이전의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광화문. 이 모두는 군사정권 시절, 철근 콘크리트가 만능이던 시절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우리 자신의 오해, 무지, 편견으로 인해 궁궐은 여전히 상처입은 모습으로 이제까지 왔었다. 조선총독부 청사가 중앙청, 정부청사, 심지어 국립중앙박물관으로까지 쓰인 것이 그리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이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남은 말

 

이밖에도 궁궐은 지난 한 세기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상처를 입을지언정 궁궐이 지닌 그 아름다움, 정신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언젠가 상처는 아물게 마련이다. 그 상처를 잘 보듬으면서, 그 쓰라린 기억을 잊지 않으면서, 그것을 앞으로의 아름다운 미래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다면, 궁궐은 우리에게 그 참 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내줄 것이다.

 

♧ 참 고 문 헌 ♧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개관기념 도록>, 솔, 2005.

김원룡 감수, <한국미술문화의 이해>, 예경, 1994.

문영빈, <창경궁>, 대원사, 1991.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엮음, <서울>, 돌베개, 2004.

허   균, <고궁산책>, 교보문고, 1997.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홍순민, '창덕궁과 후원', <한국사시민강좌> 제23집, 일조각, 1998.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2009년 11월 5일~6일 다시 궁궐을 답사하면서 여기에 여러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제 생각을 담아 새로 쓴 글입니다. 사진은 2008년 10월에 촬영한 것입니다. 


태그:#창경궁,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동물원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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