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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해 창간 10주년 기획의 일환으로 국내 11개 진보싱크탱크들과 공동으로 '지방선거 10대 어젠다'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삽보다 사람'이라는 주제가 붙은 이번 기획을 통해 거대 담론보다는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과제를 구체적으로 선정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최근 무상급식을 두고 말들이 많다.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성향 교육감 후보들은 무상급식 주장을 '얼치기 포퓰리즘'이라고 하고, 더 나아가 '사회주의 정책'이라며 색을 칠하려 한다. 지방선거 공약에 대통령까지 나서서 한 마디 보태고,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 관료들이 한나라당 관계자들과 무상급식 공약에 대한 분석까지 내놓는 판이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겪었던 내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지난 2월,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이 모두 졸업해 조금은 홀가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것 같다.

 

학기가 시작되면 담임교사들은 이것저것 조사하고 정리해야 될 것이 무척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고민되는 것 중 하나가 급식지원 대상자와 학비지원 대상자를 누구로 할 것이냐다. 이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2008년 닥친 경제위기 탓인지 정부의 급식비 지원액은 줄어들고 지원 신청 학생은 늘어가는 추세라 고민이었다.

 

학기초, 급식비 지원 신청을 안내하는 가정통신문을 "부모님께 꼭 갖다 드리고 대상자들은 거기 제시되어 있는 서류 챙겨서 가져와야 한다"는 말과 함께 아이들 손에 들려 보낸다. 그 증빙 서류라는 것이 ▲ 건강보험료 영수증 ▲ 기초수급대상자 확인서 ▲ 월세 계약서 ▲ 한부모 가정 확인서 등이다. 문제는 이때부터 생긴다. 아이들은 대체로 이런 것들이 무엇인지 모르고, 챙기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는 자신이 대상자인 줄 알면서도 창피해서 부모에게 가정통신문을 갖다 주지 않는다. 어떤 아이는 자신이 대상자인 줄도 모른다. 이전 담임선생님이 알려주어서, 또는 상담 과정에서 알게 되어서 신청해 주고자 하는 경우에도 문제가 생긴다. 가장 황당한 경우가 학생이 어렵게 서류 다 챙겨서 신청했는데 최종 대상자 선정에서 탈락할 때다.

 

급식비 독촉하는 교사 마음, 안 해본 사람은 몰라

 

지웅이(가명)는 늘 조용하다. 전 담임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보면 착하단다. 그리고 집안이 엄청 어렵단다. 급식비를 지원해 주려고 건강보험료 영수증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런데 갖고 오지 않는다고 했다. 왜 안 가져왔냐고 물으니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해 의료보험이 말소"됐단다. 의료보험공단에 확인해 보니 정말 그렇다고 했다. 그럼 "의료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해 의료보험이 말소되었다는 확인 서류를 발급해 달라"고 했더니 담당자는 "그런 증명서는 서식이 없다"고 했다.

 

공식 서류로 증명이 힘들면 '담임교사 확인서'라는 것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고 해 담임 확인서를 썼다. 이 학생이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착하고, 얼마나 지원이 절실한지 구구절절 써서 제출하고, 급식 지원 담당 교사를 찾아가서 '꼭 대상자가 되게 해 주세요'라는 개인적인 청탁(?)까지 했다. 그는 "잘 알았다, 이런 아이들은 꼭 해 주어야 하는데… 요즘 이런 아이들이 워낙 많아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위원회에서 잘 이야기해 보겠다"고 했다.

 

나중에 지웅이가 급식지원 대상자로 확정되었다는 연락을 들었다. 그러면서 그 교사가 "우리 학교에는 어려운 아이들이 참 많다, 담임이 쓴 확인서만 가지고 우리 위원회에서 일일이 확인을 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어쨌든 참 고맙다.

 

여러 서류 제출하는 아이 마음, 생각이나 해봤나

 

대웅이(가명)는 전학을 왔다. 성격은 굉장히 쾌활해 보였지만, 친한 친구도 별로 없고 1학년 때 담임을 한 교사도 없어 사정을 알 수가 없었다. 대웅이가 어머니하고만 산다고 했기에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신 걸로 생각했다.

 

어느 날 수업 중에 "가족이 아파서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조퇴를 허락해 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수업 시간에 가겠다는 것을 보니 굉장히 급한가 보다 하고 그냥 보냈다. 며칠 뒤에 물어보니 아버지가 편찮으시다고 했다. '가만… 이 친구는 어머니하고만 산다고 했는데 아버지가 아프다고?'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처음엔 이 친구가 전학 와서 적응도 안 되고, 수업하기 싫어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머니랑 둘이 산다며… 그런데 아버지가 어떻게 아프시냐… 어머니랑 둘이서 살면 한부모 가정으로 학비나 급식비 지원 신청하라고 했는데 왜 안 했냐?"고 따지듯 물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반은 화를 내면서 반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했다.

 

"제가 만난 지 얼마 안 된 선생님에게 우리 부모님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해야 했나요? 아니면 아버지 편찮으시다는데 이혼해서 같이 안 산다고 병원에도 가지 말란 말이에요? 한부모 가정이라 급식비 지원 신청하려면, 증명서가 필요한데 부모님 이혼증명서라도 떼어서 오기를 바라는 건가요?"

 

할 말이 없었다. 한부모 가정이라고 하면 부모의 한쪽이 돌아가신 경우도 있지만 이처럼 이혼을 해서 따로 사는 경우도 많다. 이런 아이들에게 급식비를 지원받기 위해서 증명서를 가지고 오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받아들이기도 힘든 상황을 다른 사람에게 증명을 하듯이 보여주라고 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임이 분명하다.

 

그래도 지금은 이런 아이들과 부모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렸는지 한부모 가정이란 사실만 알려주면, 담임교사가 동사무소에 연락해 증명서 발급을 요구하고 동사무소에서 학교로 곧바로 증명서를 보내준다.

 

어떤 아이들은 가정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반지하 월세집의 계약서를 가지고 오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부모님이 파산하여 수입이 없다는 부모님의 편지를 들고 오기도 한다. 사회주의 어쩌고 하는 사람들이 자식들 급식을 먹이기 위하여 아이 손에 한부모 가정확인서·월세 계약서·의료보험 미납 증명서·파산 확인 서류 같은 것들을 들려서 학교에 보내는 부모 심정을 한 번 생각해 봤을까? '부자급식' 어쩌고 하는 한나라당이 이런 서류를 들고 학교에 제출해야 하는 아이의 마음을 한번 상상이라도 해 봤을까?

 

몰래 급식 먹었다고, '도식(盜食)'으로 몰아야 할까

 

어느 날 복도에서 일군의 학생들이 '도식을 하지 말자'라는 푯말을 들고 벌을 서고 있었다. 그 학생에게 뭘 잘못한 거냐하고 물으니 돈 안 내고 급식 먹다가 걸렸단다. 사회에서는 들어본 적 없지만 학교에는 어느 날부터 도식(盜食)이라는 말이 이렇게 쓰이고 있다. 절도(竊盜)·도적(盜賊)·도청(盜聽)·도난(盜難)·도벽(盜癖) 같은 말에 쓰이는 무시무시한 의미의 한자인 '훔칠 도(盜)'와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한자인 '먹을 식(食)'이 결합된 단어이다. 참고로 '하는 일 없이 헛되이 먹기만 함을 의미하는' 무위도식(無爲徒食)이란 한자와는 완전히 다르다.

 

최근에는 급식 체크를 학생증이나 급식카드를 이용해서 하는 학교들이 많은데, 급식비를 미납하면 이 카드를 찍을 때 '삐'하는 소리가 나거나 메시지가 뜬다. 그래서 급식비를 미납한 학생 중 일부는 들키지 않으려고 친구의 급식 카드를 이용하거나 또는 다른 친구가 들어갈 때 '묻어서' 들어가 급식을 먹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이르는 말이 도식(盜食)이다. 학생들은 밥값을 못 내서 졸지에 '밥을 훔쳐 먹는 도둑'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학교에서 밥값을 내지 않고 밥을 먹다가 걸려서 '밥도둑'으로 몰리는 아이들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있다. 급식비를 못 냈는지 안 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수업료·학교운영지원비·급식비... 내야할 게 너무 많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등은 초중등 무상급식 주장을 '사회주의' 또는 '부자급식'이라고 색깔론을 덮어씌우려 한다.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는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서 무상 급식을 주장하는 것이 사회주의라는 주장은 무책임한 선동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교사가 되어 학생들에게 돈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해 본 교사들은 학생에게 가장 하기 싫은 말이 "언제까지 돈 내라!"는 말이라는 것을 안다.

 

수업료·학교운영지원비·급식비·보충수업비·방과후학교비·특별활동비·체험학습비·수업준비물비·환경미화비… 학교에 내야 하는 돈은 또 왜 이렇게 많은 걸까? 달마다, 분기마다 행정실에서 미납자 명단이 인쇄되어 담임에게 전해진다. 그 녀석이 그 녀석이다.

 

급식비를 못 낸 친구가 수업료를 못 내고, 보충수업비를 못 낸 친구가 또 수학여행비를 못낸다. 담임은 또 고민이다. 이전 같으면 명단을 교실 뒤 게시판에 붙이고 언제까지 가져오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한 명씩 다른 친구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불러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해야 한다. 혹시 이 말도 저 녀석의 가슴에 상처가 되지 않을까, 조마조마 하면서.

 

이렇게 해도 잘 해결되지 않는 친구들에게는 학교장 이름으로 다시 별도의 서신을 보낸다. 학생 손에 들려서가 아니라 등기우편으로 배달된 이 학교장 통신을 본 부모의 마음은 찢어질 것이다.

 

필자가 경험한 것은 고등학교이지만 더 어린 초등학교·중학교 학생들의 상처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 초중등 급식을 놓고 나오는 '무상교육이라고 하면서 학교에 돈은 왜 내라는 거야?'라는 물음에 우리 사회는 답해야 한다. '안 지킬 거면 정하지를 말지 왜 헌법으로 규정해 놓고 안 지키냐?'고 따지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답해야 한다.

 

밥 가지고 사회주의 어쩌고 하지 맙시다

 

핀란드에서는 학생들의 급식비가 무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통학거리가 4km가 넘으면 학생들의 차비까지 정부에서 지급한다. 프랑스에서는 학생들에게 학용품비를 지원하는데 모두 똑같이 줄 것인가, 아니면 가난한 학생들에게 더 많이 줄 것인가를 놓고 논쟁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런 나라 학생들에 비하면, 급식비 지원을 받기 위해 부모의 이혼 사실을 증명해야 하고, 반지하방의 월세 계약서를 제출해야 하고, 소득이 없어 소득세를 납부한 적이 없다는 확인서를 제출해야 하는 우리 아이들이 너무 안됐다. 아이들 손에 이런 서류들을 쥐어서 학교에 보내야 하는 우리 부모들도 너무 안쓰럽다. 학생과 부모가 자존심 접고 어렵게 급식비 지원 신청을 했는데 지원 대상에서 탈락했다는 얘기를 학생과 부모에게 해야 하는 교사 또한 너무 불쌍하다.

 

학교가 정말 학생을 위하고 생각한다면, 무상급식에서 학교운영지원비 폐지, 수익자부담경비 폐지 등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무상급식은 완전한 무상교육을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우리네 아버지들이 늘 하시던 말씀 중에 "개도 밥 먹을 때는 안 건드린다"는 것이 있다. 밥 먹는 것만큼은 말 못하는 짐승들도 차별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먹게 해 주어야 한다는 의미다. 개에게도 이러했거늘 우리 학생들에게 밥 가지고 이렇게 차별을 해서야 되겠는가?

 

"이 정도 했으면, 우리 인간적으로 아이들 밥 먹는 거 가지고 사회주의 어쩌고 하지 맙시다."


태그:#무상급식, #한나라당, #김상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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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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