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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해 창간 10주년 기획의 일환으로 국내 11개 진보싱크탱크들과 공동으로 '지방선거 10대 어젠다'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삽보다 사람'이라는 주제가 붙은 이번 기획을 통해 거대 담론보다는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과제를 구체적으로 선정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참여연대와 전국교수노조, 학교급식네트워크, 참교육학부모회 등 전국 2천여 시민단체가 참여한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친환경 무상급식연대) 출범식에서 참가자들이 친환경 무상급식을 요구하며 대형 현수막을 펼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참여연대와 전국교수노조, 학교급식네트워크, 참교육학부모회 등 전국 2천여 시민단체가 참여한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친환경 무상급식연대) 출범식에서 참가자들이 친환경 무상급식을 요구하며 대형 현수막을 펼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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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아예 없으면 며칠 동안 밥을 거의 못 먹어요. 나중엔 어지럽고 속 쓰리고 정신도 혼미해져요. 학교 졸업하고 대학 진학하고 싶은데, 배고파서 공부가 안 돼요."

노원구의 한 고등학교 3학년인 A군은 3월마다 밥을 굶는다. 공휴일엔 집에서 밥을 먹지만, 오히려 학교에 가는 날엔 종일 굶거나 빵으로 끼니를 때운다. 3년째 같은 일을 겪은 그는 "3월이니까 그러려니 한다"고 말했다.

A군뿐만 아니라 무료급식을 지원받는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새학기 3월은 매점 빵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빵고개'다. 학교에서 급식대상자 선정 절차가 이뤄지는 한 달간 급식비 지원이 끊기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 학교체육과는 공문 등을 통해 일선 학교에 '선지원 후처리'를 지시하고 있다. 학교 차원에서 먼저 지원하고 이후 소급해 처리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선 학교에서는 "교육청 지침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단 담임  교사들이 반을 새로 맡으면 학생들이 처한 경제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급식을 '선지원'할 학생들을 찾아내는 게 쉽지 않다. 또한 '선지원'했던 학생이 나중에 무료급식 지원 절차를 거친 뒤에도 급식대상에 100% 포함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노원구가 속한 전교조 북부사립지회의 황철훈 지회장은 "(A군 사례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당장 학교에 예산이 없고 대상자 확인도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A군을 지원하고 있는 노원급식네트워크 측도 "지역 내 다른 학교들도 3월에는 (지원대상자) 본인 돈으로 급식비를 지출하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렇게 붕 떠버린 3월 동안 A군이 제대로 먹는 밥은 저녁 식사뿐이다. 갓난아기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마저 몇 년 전 알코올중독으로 입원해 혼자 사는 A군은 아침을 챙겨먹지 못한다.

"일단 저소득층 본인 돈으로..." 3월 결식 실태파악도 안 돼

A군에 따르면, 담임교사는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도 일단 돈을 내고 먹어라, 정부에서 돈이 나오면 돌려주겠다"고 공지했다. 그러나 당장 기초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급식비 5만4000원~5만6000원(식사당 2700원)을 만드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노원급식네트워크는 '3월 결식' 사례를 3건 접수했는데, 저소득층 부모와 함께 사는 학생들은 집에 급식비 내달라는 말을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고 한다. 얘기해봤자 사정이 뻔하다는 생각에서다. 네트워크 활동가들은 "나중에 부모님들이 상황을 알고 너무 가슴 아파했다"고 전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학교수업 8시간 동안, A군은 빵으로 버텨야 한다. 한창 많이 먹을 나이에 빵으로 허기를 달랠 순 없지만, 이 한 끼를 위해 A군은 버스 등교를 포기해야 한다. 아침마다 45분 정도 걸어서 등교하면 버스비 720원을 아낄 수 있다.

한나라당의 '안방' 경남 합천군은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있다. 합천군 합천초교의 11일 급식실 주방 모습. 그날 아침 배송된 친환경 농산물을 직접 조리해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1등급 한우로 햄버거스테이크를 조리하는 모습(자료 사진).
 한나라당의 '안방' 경남 합천군은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있다. 합천군 합천초교의 11일 급식실 주방 모습. 그날 아침 배송된 친환경 농산물을 직접 조리해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1등급 한우로 햄버거스테이크를 조리하는 모습(자료 사진).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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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점은 급식실과 붙어 있다. 바로 앞에 따뜻한 밥을 먹는 친구들을 두고 A군은 빵을 사야 한다. 그는 "급식 시간에 선생님들이 복장·두발 단속도 하는데 식권 안 내고 (식당에) 들어가려고 하면 때려서 막는다"면서 "(선생님에게) 맞은 다음에라도 (식당에 들어가) 먹게 해준다면 먹을 텐데…"라고 말했다.

그와 함께 빵을 사먹는 학생들이 한 반에 6~7명은 있다고 한다. 급식을 먹기 싫어서 자발적으로 빵을 선택한 학생도 있지만, 4~5명은 자신과 같은 처지일 것이라고 A군은 말했다. 이미 3월 결식에 익숙한 학생들은 불만을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반 친구들은 이렇게 급식비를 지원받는 A군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허물없이 친해서가 아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급식쿠폰을 나눠주는 과정에서 공개되기 때문이다.

그는 "선생님이 중식 지원자 나오라고 해서 따로 준다, 그동안 계속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나눠줘서 애들도 다 안다"고 말했다. 무료급식을 해도 당사자가 상처받지 않게 배려해서 지원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일각의 주장은 학교 현실과 이렇게 차이가 있었다.

황철훈 지회장은 "다른 학교에서도 교사의 성향과 방식에 따라서 아이들이 노출되는 상황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일반적으로 급식업체 직원들이 (식권 없이 밥을 먹지 못하도록) 지키는 경우가 많은데, 교사가 생활지도를 위해 현장에 나와 있다면 당연히 몰래 먹으려는 학생들에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원대상자 신분 노출이나 식당 출입 금지 역시 A군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학교 "담임이 확인서 써주면 밥 먹을 수 있다"

A군이 다니는 학교 측은 "이런 일이 있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 상황을 파악해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학교 행정실 측은 "자부담을 할 수 없는 경우 담임교사가 확인서를 써주면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 올해도 지침을 내려서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이를 공지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행정적으로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일단 아이들 밥은 먹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학생 본인이 교사에게 상황을 말하지 않아서 누락되는 경우가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학교 홍보부장 교사 역시 3월 결식 사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또한 급식지원 대상자 노출 문제에 대해서 "(교사들이) 알아서 잘 나눠주면 좋겠는데, 애들 배려해서 자존심 상하지 않게 하라고 얘기는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식당에 들어가려다가 교사에게 맞는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A군은 지난 3년 동안 이런 확인서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기자가 이 학교를 취재한 16일, 그는 처음으로 '금일 동안 급식을 양해해 달라'는 내용의 서류를 받아서 식당 밥을 먹었다. 그러나 이것이 확인서인 것은 알지 못하고 '급식종이'라고 표현했다. 이 학급에서는 이날 5명의 학생들이 이 서류를 받았지만, 다른 반에는 급식종이를 못 받은 친구가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이 과정에서도 지원대상자가 또 노출됐다. A군은 같은 반 친구로부터 담임교사의 확인서를 전달받았다. 직접 만나서 받은 게 아니기 때문에, 왜 주는지 다른 것은 뭐가 필요한지 등의 설명이나 상담은 전혀 없었다. 그는 "오늘만 주는 건지 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황철훈 지회장은 "'요즘에도 밥 굶는 아이들이 있냐'고 하는데 실제로는 상당히 많다"면서 "이 아이들에게 중식 지원은 가뭄의 단비인데 3월에는 결국 공백이 생기게 된다, 굉장히 마음 아픈 일이다"고 말했다.

현행 급식 체계에선 피할 수 없는 3월 빵고개

이 같은 '3월 결식'에 대해 김선희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사무처장은 "아무리 많이 지원한다고 해도 대상자를 선별해야 하는 급식 체계에서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교육청이나 개별 학교·교사의 문제가 아닌 제도상의 허점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김 사무처장은 "희망차게 새 출발을 하는 새 학기에 급식 지원대상 학생들은 자신의 가난을 증명해야 하고, 심지어 굶어야 한다"면서 "교육청에서 선지원 후처리하라고 해도 학교나 교사들이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변은희 노원네트워크 활동가는 "궁극적으로 무상급식에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면서 "일단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학생증을 찍게 하거나 급식쿠폰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초중등학교처럼 일괄 급식하는 방식으로 체계를 바꾸고, 2월에 급식선정 절차만 미리 진행해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재정 지원이 되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결국 지원제도가 개선되고 더 나아가 무상급식이 실현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노원네트워크 측은 단체 예산으로 A군 등의 급식비를 대신 내기로 했다.

무상급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해 A군은 "좋은 일이라고 본다, 그런데 저는 (내년엔) 이미 졸업해서 해당사항이 없다"면서 아쉬움을 나타냈다.

A군은 이날 학교에서 먹은 닭볶음탕에 대해 "맛은 별로였다, 우리 학교 급식이 진짜 맛없다"면서도 "밥 먹으니까 배고프지 않고 다른 친구들과 식당에서 같이 먹으니까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점심은 지난 2일 개학 이후 그가 보름 만에 처음으로 학교에서 먹은 밥이었다.

경기도교육청이 3월부터 도서벽지와 농어촌 읍면지역 전체 초등학생에 대한 무상급식을 시행한 가운데 10일 오전 경기도 평택 갈곶초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무상으로 제공된 급식을 먹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이 3월부터 도서벽지와 농어촌 읍면지역 전체 초등학생에 대한 무상급식을 시행한 가운데 10일 오전 경기도 평택 갈곶초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무상으로 제공된 급식을 먹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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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무상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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