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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세리머니, 불교와 개신교 간 갈등으로 비화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일부 국가대표 선수들이 골을 넣은 후 벌이는 기도 세리머니가 종교 간의 갈등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산하 종교평화위원회(종평위, 위원장 혜경스님)는 지난 3일 대한축구협회에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제갈성렬 SBS 해설위원이 스피드스케이팅 10,000m에서 이승훈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는 순간 "주님의 뜻이다. 주님의 허락이 있었다"고 발언해 물의를 일으킨 것을 상기시키며 월드컵에 나서는 선수들의 '기도 세리머니' 같은 종교 행위를 자제토록 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종평위는 "선수 개인의 종교 생활도 존중해야 하지만 시청하는 사람의 종교도 존중해야 한다"며 "사전교육을 통해 기도 세리머니 등 종교적 행위가 나타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축구협회는 10일 이 같은 내용의 공문을 국가대표팀 지원팀에 전달하고 조만간 조계종 측에 공식방침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개신교 보수 언론인들의 모임인 한국교회언론회(대표 김승동 목사)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스포츠 선수까지 관리하려는 불교계'라는 논평을 통해 "축구 선수의 '기도 세리머니'를 막는 것은 개인의 신앙과 용기까지 통제하려는 것"이라며 "축구 선수는 불교에서 종교편향의 타깃으로 삼는 공직자도 아닐 뿐 아니라 선수들이 세리머니를 하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의사"라고 주장했다.

교회언론회는 또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연아 선수가 경기장 안에서 천주교식 성호를 긋는 행위가 방영되었음에도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불교계가 국가와 국민 모두를 '종교편향'의 잣대로 통제하려는 자세를 버릴 것을 촉구했다.

현재 국제축구연맹(FIFA)은 국가대표 간 경기에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 외에 선수 개개인의 종교에 따른 기도 세리머니에 대한 규정은 따로 두지 않고 있다. 현재 경기 중에 개신교식 세리머니를 펼치는 유명 선수는 축구의 박주영 선수 외에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세계 역도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장미란 선수가 있다.

이번 불교계의 문제제기는 교회언론회 논평처럼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극심한 훈련과 결과에 대한 심한 압박감, 수많은 관중들의 환호와 야유 속에 경기를 해야 하는 선수들이 분명한 목표의식과 마음의 안정을 주는 종교에 의지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 때 믿음의 대상에게 감사 표시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당연할 수 있다. 그리고 선수가 속한 팀의 팬들이 문제삼지 않는다면 그것은 해당 선수의 개성으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교계의 지적에 대해서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은 국가를 대표하는 일부 선수들이 벌이는 기도 세리머니가 때에 따라서는 너무 요란하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곳에서 축구를 비롯해 수많은 국제경기가 열리고 있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처럼 득점을 올리거나 경기가 끝난 후 조금은 요란하다 싶을 정도로 기도를 올리는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행위들은 국제적으로 종교간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타깃이 될 수 있다.

물론 김연아 선수의 경우도 꼬투리를 잡을 수도 있지만 많은 국민들이 김연아 선수가 느끼는 엄청난 압박감과 긴장을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에 링크로 나가면서 성호를 긋는 모습은 오히려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나 일부 개신교를 믿는 선수들이 벌이는 과도한 기도 세리머니는 신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기 위한 것보다는 자신들이 믿는 종교를 과시하거나 포교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는 점에 눈에 거슬린다. 일부 개신교 목사들 중에는 기도 세리머니가 신의 은총을 전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기도 세리머니는 또한 기도가 가진 본래 의미를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한다. 기도는 가급적 조용한 곳에서 절대자나 자신이 믿는 어떤 존재에게 마음을 바치고 대화하기 위한 것이지 자신의 믿음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예수는 바리새인이라는 당대 종교인들이 벌이는 외피적 종교행위를 비판하면서 기도할 때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피해 산과 같은 한적한 곳을 택했다.

하지만 한국의 개신교는 샤머니즘과 미국 오순절 교회 같은 열광주의의 영향을 받아 교회 안은 물론이고 일반 대중들이 모이는 공적 공간에서도 대놓고 소리높혀 기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역이나 터미널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면서 기도하는 모습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이번에 기도 세리머니를 놓고 벌이는 불교와 개신교의 갈등은 오랫동안 개신교로부터 부당한 공격을 받아온 불교계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해 개인의 종교적 행위까지 간섭한다는 인상을 주는 면이 없지 않으면서도 일부 선수들이 벌이는 과시적 종교행위의 문제점을 뒤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축구협회는 불교와 개신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종교 간의 갈등이 아니라 성숙한 스포츠 문화를 만드는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태그:#기도, #세리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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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함석헌 선생을 기리는 씨알재단에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씨알정신을 선양하고 시민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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