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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해 창간 10주년 기획의 일환으로 국내 11개 진보싱크탱크들과 공동으로 '지방선거 10대 어젠다'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삽보다 사람'이라는 주제가 붙은 이번 기획을 통해 거대 담론보다는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과제를 구체적으로 선정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급증하는 국민의료비를 적절한 수준으로 통제하고 선진국 수준으로 국민의료를 향상할 방법은 의료제도의 공공성 강화다.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급증하는 국민의료비를 적절한 수준으로 통제하고 선진국 수준으로 국민의료를 향상할 방법은 의료제도의 공공성 강화다.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건강증진을 포함한 우리나라 의료정책의 대부분은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의 손에 달려 있다. 현재의 구조 하에서는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시 정책적 측면에서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건강과 의료는 우리 국민들의 가장 중요한 일상사, 즉 민생의 중요 의제 중의 하나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3년 전 출범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줄곧 민생의 '5대 불안'을 제기해왔는데, 일자리 불안, 보육·교육 불안, 주거 불안, 노후 불안과 함께 건강·의료 불안이 그것이다.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우리나라 의료정책을 개괄적으로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 규모는 2008년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6.8%인데, 이는 2007년의 6.4%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이다. 가파른 고령화 추세와 국민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욕구의 증대가 국민의료비를 늘리고, 이에 더해 이윤추구 성향이 강한 민간병원이 전체 병원의 93%를 차지하는 기형적 의료공급체계가 국민의료비의 급속한 증가를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도록 의료 규제가 완화된 덕분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인구 대비 치료병상의 수와 고가의료장비의 수가 제일 많은 나라에 속한다.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수준, 유럽 선진국보다 25~30%포인트 낮아

이렇게 국민의료비가 치솟는 데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선진국의 그것에 크게 못 미치는 것도 한몫을 하고 있다. 우리 국민이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때 실제 발생하는 전체 의료비 중에서 국민건강보험이 지불(급여)해주는 의료비의 크기를 보장성 수준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은 이 보장성 수준이 62%에 그치고 있다.

유럽 선진국들이 대개 85~90% 이상인 점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선진국들에 비해 보장성 수준이 25~30% 포인트 정도 낮은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참여정부 말기에 64.6%까지 올라갔던 보장성 수준이 이명박 정부 들어 62.2%로 줄어든 것이다.

이렇게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낮은 것은 건강보험 재정규모가 작아서인데, 당연히 건강보험이 보장해주지 못하는 의료서비스가 많아지게 된다. 상급병실차액, 선택진료비, 초음파 등 일부 고가장비, 고가의 신약, 간병비용 등이 급여되지 않는 의료서비스 항목들인데, 이 비용은 고스란히 환자의 몫이다.

그리고 이렇게 국민건강보험이 개입하지 않는 비급여 영역의 비용은 정부 규제의 외부에 존재하므로, 의료기관들은 이 부분의 가격과 서비스 양을 늘리게 되고, 이것이 국민의료비의 급속한 증가를 낳는 중요한 한 원인이 되고 있다. 또 우리나라의 의료보수 지불 방식은 의료기관이 수행하는 행위별로 비용을 지불하는 '행위별수가제'이므로 의료행위를 늘리는 이른바 '과잉진료'가 일상화되어 있다.

급증하는 국민의료비를 적절한 수준으로 통제하고 선진국 수준으로 국민의료를 향상할 방법은 의료제도의 공공성 강화다. 먼저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지금보다 30% 정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비급여 서비스의 대부분과 입원에 대한 사실상의 무상의료를 보장하고, 연간 진료비를 총액 기준으로 100만원까지만 환자가 내고 나머지를 전부 국민건강보험이 부담하는 '진료비 총액상한제'를 시행할 수 있게 된다.

유럽 선진국에 근접하는 것이다. 이렇게 국민의료비의 더 많은 부분이 국민건강보험으로 관리되고, 그만큼 환자 본인부담 의료비의 규모가 작아짐에 따라 국민의료비에 대한 사회적 통제 범위가 넓어져 국민의료비의 급증을 제어할 수 있게 된다.

공공병원 비중, 30%까지 확충해야

이에 더해, 이윤추구 동기가 강한 민간병원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 대신에 공공의료의 비중을 늘리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현재의 7%인 공공병원의 비중을 단계적으로 30% 정도로까지 확충할 필요가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것이 옳다는 것을 대체로 인정하고 있으나 기획재정부가 반대한다.

의료보장과 공공의료의 확충을 위한 공공재정의 대대적 확충을 도모하기는커녕, 정반대로 기존의 공공재정마저 그 비중을 줄이고, 이를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시장에 맡기려 한다. 자본은 크게 돈을 벌겠으나 민생 불안은 심화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익히 알려진 의료공공성이라는 좋은 정책방향을 무시하고 굳이 미국식의 <식코>형 의료제도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이러한 정책 기조 하에서 의료정책과 관련하여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겠으나, 건강정책과 관련해서는 할 일이 꽤 많다. 그런데 잘 하고 있지 않은 것이 문제다. 사람들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데, 우리는 이것을 좁은 의미의 '의료'라 부른다.

'의료'의 개념적 범위를 좀 더 넓히면 '건강증진'과 '질병예방'(이 둘을 합하여 이하에서는 건강정책이라 함)도 여기에 포함된다. 건강증진이란 건강할 때 더욱 건강하도록 건강을 증진하는 것이고, 질병예방은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거나 질병에 걸렸을 경우에라도 조기에 발견하여 재빨리 치료함으로써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건강정책은 중앙정부나 대형병원보다는 지방정부나 일차보건의료기관이 담당하는 것이 타당하므로 선진외국에서도 예외 없이 그렇게 하고 있다.

'조용한 살인자'로 불리는 고혈압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나라 성인의 약 20% 정도가 고혈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혈압은 진단하기도 쉽고 치료법도 간단하지만 아무런 증상이 없어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이후 치명적인 합병증을 일으키는 선진국 형 질병으로 우리나라의 중요한 보건문제 중의 하나다.

그런데 이 고혈압에는 '50%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전체 고혈압 환자의 50%만 진단되고 있으며, 진단된 고혈압 환자 중의 50%만 치료를 받고 있고, 치료받는 환자의 50%만 혈압을 정상으로 잘 유지하고 있는 현상을 지칭하는 것이다. 살기 바빠서 자신이 고혈압인지도 모르고 지내는 사람들과 고혈압인데도 별 증상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무시하고 관리하지 않는 사람들이 지방정부가 실시하는 건강정책의 주요 대상이 된다. 이것뿐만 아니라 비만관리, 영양, 금연, 절주, 운동 등도 지방정부가 수행해야할 주요 건강정책 사업들이다.

동네마다 도시형 보건지소 '건강센터' 설치하자

이러한 일은 지방정부가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철저하게 기획하고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지방정부들은 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인구 30~50만 명인 시·구에 보건소는 달랑 1개만 있고, 경우에 따라 하나 더 있는 지역도 있다. 보건소는 관할 지역보건행정 전반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환자진료와 예방접종 등을 수행하느라 늘 분주하다.

건강정책을 기획·집행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직접 건강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인력과 재정이 없고, 지리적 접근성도 문제다. 하여, 동네마다 도시형 보건지소인 '건강센터'를 설치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하기로는 인구 1만~2만 명당 1개소씩 있으면 좋겠으나, 중기목표로 인구 5만 명당 1개소로 설정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그러면 인구 40만 명인 자치구에는 8개의 보건지소가 필요하다.

우리는 지난해 신종인플루엔자의 초기 대응 과정에서 보건소의 용량과 역량 부족으로 지방정부를 불신하게 된 지역주민들이 대학병원으로 몰려들고, 당황한 대학병원들이 급기야 컨테이너를 설치하는 등의 세계적인 코미디를 연출한 적이 있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지방정부의 보건소가 중심에 서고, 동네마다 도시형 보건지소가 있었다면, 그래서 조기에 주민의 신뢰를 얻고, 전염병 관리의 주도권을 확보한 상황이었다면, 이러한 코미디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건강센터는 앞서 언급한 고혈압도 조기에 발견해내고, 지역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지속적 고혈압 관리를 설득하고 보장할 메커니즘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동네 어귀나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의료요원들이 모든 지역주민의 혈압을 정기적으로 체크하는 일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또, 건강센터는 해당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당뇨병 등 주요 만성질환의 등록관리를 수행함으로써 국가의 정책으로 전국민 주치의 제도가 시행되기 이전에 지방정부 수준에서 원하는 사람, 특히 노인과 저소득계층의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등록관리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방문보건사업도 체계적으로 시행할 수 있게 된다. 노인정을 노인생활의 거점으로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내실화하고, 여기에 건강센터의 방문보건의료팀이 수행하는 건강증진 및 관리 프로그램을 탑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확보된 건강한 노후의 보장은 주요 질병의 발생을 지연시킴으로써 국민의료비의 급증 추세를 일부 완화하는 역할도 담당하게 된다.

건강센터의 설치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건축물 등의 시설이 아니라 인력과 프로그램이다. 건강센터 당 의사, 간호사, 영양사 등의 보건의료 인력 10여 명이면 족할 것이고, 시설은 기존의 공공시설을 활용하거나 임대하면 된다. 건물신축 공사 등이 아니라, 인력의 고용과 프로그램의 운영 등에 돈을 쓰자는 것이다. 이는 지방정부의 실효성 높은 선제적 사회투자이자 사회서비스 분야의 고용정책이기도 하다.

지방정부가 어린이 건강·영양 관리 완전 보장

지방정부가 어린이 건강증진 프로젝트로 '어린이 건강·영양 사업단'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이 사업은 선제적 건강투자정책으로서 지방정부가 하기에 아주 적합한 것이다. 보육시설과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의 건강과 영양 관리를 완전하게 보장하기 위한 것인데, 현재 이들 시설에는 전속한 건강 및 영양 전문가가 없으므로 성장과 발달 과정에 있는 아동의 건강관리에 선제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는 것이다.

특히, 영양뿐만 아니라 아토피와 천식 등에 대한 모니터링과 지도 및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일도 지방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이를 위해 시·도에 '어린이 건강·영양 사업단'의 본부를 두고, 시·군·구에 간호사, 영양사, 기타 보건전문가(소아과 의사 포함 또는 연계)로 구성되는 '어린이 건강·영양 사업단'을 설치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동의 부모들은 아이들의 전문적 보육과 교육, 영양, 건강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믿고 맡길 수 있게 되어 큰 불안 하나를 덜게 되는 것이다.

'어린이 건강·영양 사업단'은 어린이 건강 평가의 수행, 기술지원, 보육기관 및 유치원의 건강관리 수준에 대한 평가·감시·지도 등의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또, '어린이 건강·영양 사업단'은 영양, 친환경 급식 등에 대한 모니터링, 평가와 지도, 기술지원, 인력 파견을 통한 관련 업무의 한시적 직접수행 등을 담당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개별 가정의 어린이 건강 및 영양 관리를 위해 부모의 인식과 행태를 교정할 필요가 있는데, 이러한 교육업무도 '어린이 건강·영양 사업단'이 담당하게 될 것이다.

지방정부가 해야 할 또 다른 건강정책으로는 생활체육의 활성화를 통한 시민건강증진 사업이 있다. 지방정부가 공식적으로 지정하는 생활운동 공간의 대대적 확충이 요구된다. 특히 도심의 요소요소를 생활운동이 가능한 공적 공간으로 배치하는 일이 중요한데, 도심의 걷는 길을 확보해주는 일과 이를 공식화하는 시민걷기운동을 지방정부의 건강정책으로 확립해주어야 한다.

운동시설에 대한 투자도 필요한데, 공공시설의 확충뿐만 아니라 민간운동시설 이용에 대해서도 특정계층에 대해 일부 비용지원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의 운영과 이에 필요한 인력의 고용이지 인프라를 건설하는 토목공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보호자에게 떠맡기는 '간병', 지방정부가 해결해 보자

앞서 필자는 지방정부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의료정책은 별로 없다고 했는데, 사실 꼭 해주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지방공사의료원과 각종 시립병원에 대한 지방정부의 투자 확충 및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의 실시가 그것이다. 지방의료원 등의 공공병원은 지난 민주정부 10년 동안 외형은 매우 좋아졌으나, 관리운영의 경직성과 지방정부의 재정투입 부족으로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지 못하고 있어, 여전히 저소득층이 주로 이용하는 병원으로 머물고 있다.

최근에는 지방정부가 재정지원을 줄이면서 이들 공공병원들에게 민간병원의 수익추구 경영을 요구함에 따라 정체성의 위기와 함께 서비스의 질 향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결국, 유능한 의사와 의료 인력이 기피하는 병원으로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시설이 아니라 우수인력과 좋은 프로그램을 유치하는 데 지방정부의 선제적이고도 과감한 재정투자가 요구된다. 그래서 지방공사의료원과 시립병원들이 유능한 의료진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병원의 하나로 인식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의료보장에서는 간병에 대한 급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 가족들의 몫이다. 경제적 부담뿐만이 아니다. 가족 간 갈등과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런 경우는 선진국 중에는 없다. 입원 환자를 치료하고 돌보는 것은 병원의 몫이자 고유한 역할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병원의 인력 고용이 선진국의 1/3 수준에 불과하여, 환자 돌봄의 일부를 보호자들에게 떠맡기고 있는 것이다.

하여,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을 지방공사의료원과 각종 시립병원에서부터 지방정부가 주도적으로 수행해보자. 일부 병상에 국한된 시범사업이 아니라 병원 전체에 걸쳐 전면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언젠가는 국민건강보험이 간병의 보험급여화를 통해 이 일을 재정적으로 책임지게 되겠지만, 가까운 미래에 현실화될 것 같지 않으므로 지방정부가 나서서 관할 공공병원을 대상으로 전면적인 '보호자 없는 병원' 사례를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다.

이는 주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을 것이고, 양질의 병원 돌봄 서비스를 통해 공공병원을 다시 살려내는 계기가 될 것이며, 간호와 돌봄에 투입될 엄청난 사회서비스 일자리의 창출이 일어나는 것이다. 고용도 늘어나고, 병원서비스의 질도 높아지고, 공공병원의 낙후된 이미지도 쇄신하는 대표적인 친 서민정책이므로 정책의 파급력도 매우 클 것이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이자 제주대학교 교수입니다.



태그:#보건의료, #10대 어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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