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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해 창간 10주년 기획의 일환으로 국내 11개 진보싱크탱크들과 공동으로 '지방선거 10대 어젠다'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삽보다 사람'이라는 주제가 붙은 이번 기획을 통해 거대 담론보다는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과제를 구체적으로 선정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주소록에서도 검색되지 않는 북한산 기슭. 등산객들을 따라 산을 올라가다 '지장암'이란 팻말이 달린 곳에서 돌다리를 건넌 뒤 다시 철제다리를 건너면 윤병숙(89) 할머니의 집이 보인다. 할머니의 설명대로 "개울을 따라 오르고, 다리를 건너"야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윤 할머니는 홀로 살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윤 할머니는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강북구 보건소 삼각산분소 방문간호팀의 서비스를 받고 있다. 방문간호팀이 윤 할머니를 찾는 횟수는 평균 3개월에 한 번 정도. 윤 할머니는 "무릎이 아파 설설 기다시피 한다"고 말하지만, 대상자 중에서는 건강상태가 심각하지 않은 편이라서 더 잦은 방문간호는 받기 힘든 상황이다.

 

간호팀이 방문한 8일 오전, 윤 할머니는 물리치료사가 저주파 치료를 하며 "시원하시냐"고 묻자 "그럼 이렇게 와서 수고들 하는데 시원하지"라고 웃으며 답했다.

 

"병원에 가 보셨냐"는 곽윤숙 간호사(55)의 물음에 윤 할머니는 "사람이 가도 사람같이 안 보는데 어떻게 가"냐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 안에 쌓인 먼지 때문인지 물리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할머니는 끊임없이 마른 기침을 했다.

 

"할머니 몸 아프실 땐 전화 몇 번 누르시라고 했죠?"

"1이 둘이고 9가 한 번이라 그랬나?"

"그건 6이고요, 이게 9에요."

 

곽 간호사는 전화기를 가지고 윤 할머니에게 긴급 전화 거는 방법을 설명했다. 귀가 잘 안 들리는 할머니를 위해 곽 간호사는 평소보다 목소리를 높여 숫자를 불렀다.

 

대장암 수술 받은 고혈압·당뇨 주민, 방문 간호 횟수 월 1회

 

방문간호팀이 윤 할머니 집으로 가기 전 들른 수유2동 최혜자(75) 할머니는 윤 할머니 보다 서비스를 자주 받는 편이다. 최 할머니는 시각장애인 남동생과 함께 반지하 방에서 사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평균 한 달에 한 번 방문간호를 받는다.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는 데다 대장암 수술을 받은 이후론 대소변을 제대로 볼 수 없어 기계의 힘을 이용해 노폐물을 몸 밖으로 꺼내야만 한다.

 

"아침 언제 드셨어요?"

"9시에 먹었어요."

 

아침 식사를 마친 지 1시간 반 가량이나 지났지만 할머니의 혈당은 300을 훌쩍 넘겼다. 옆에 앉아 있던 할머니의 남동생은 혈당 수치가 458이나 됐다. 정상적인 당수치는 보통 150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자주 오시면 좋죠. 그런데 우리 집을 담당하시는 분이 3개 동을 맡고 있더라고요. 차 갖고 다녀도 (한 달에) 한 번도 못 가는 집도 있는데 어떻게 더 요구해요?"

 

"보건소에서 더 자주 오면 좋지 않겠냐"고 묻자, 최 할머니는 자신보다 방문간호사들의 사정을 더 걱정했다.

 

방문간호사 1인이 400가구 도맡아... 건강관리 인력 턱없이 부족

 

방문간호는 보건소 간호사들이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가구를 주기적으로 방문해 고혈압·당뇨 등을 검사하면서 건강을 관리해 주는 사업이다. 문제는 이를 담당하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 중 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을 우선 대상으로 하여 혈당·혈압 체크, 물리치료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강북구의 경우 방문간호를 받아야할 대상은 3만가구 정도지만 인력이 안돼 17%인 5200가구만 지원하고 있다. 임갑분 강북구 보건소 지역보건과 간호 7급 담당자는 "지난해는 관리 대상 가구가 5900가구였는데 너무 많아서 질적 관리가 안 됐다, 올해는 방문했을 때 잘 만날 수 있고 건강 관리 지도가 잘 되는 분들 중심으로 규모를 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5200가구 관리도 간단한 일은 아니다. 강북구보건소 방문간호팀은 15명(간호사 12명, 운동처방사 1명, 사회복지사 1명, 물리치료사 1명) 뿐이다.

 

윤 할머니와 최 할머니네를 방문한 곽윤숙 간호사는 수유2·4동, 우이동 등을 담당하고 있다. 혼자서 400가구를 맡아 1년에 1400번 이상 방문간호를 한다. 하루에 6~7집을 방문해야 하는 셈이다.

 

한 가구를 방문하는데 드는 시간은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 이상. 곽 간호사는 "솔직히 (사람이 너무 많아) 다 관리를 잘하진 못한다, 더 상황이 안 좋은 사람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

 

다른 지역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반적으로 재정의 여유가 있다고 여겨지는 강남구 역시 14명의 담당자가 4500가구를 맡고 있다. 1인당 대략 321가구 꼴이다.

 

2010년 4월부터 방문간호 지침이 변경돼 신규관리군의 경우 1개월의 2~3회, 집중관리군은 2~3개월에 8~12회, 정기관리군은 3개월에 1회, 자기영양지원군은 6개월에 1회 이상 방문하게 됐지만, 현재의 인력으론 벅차다.

 

구민 대상 예방접종하기에도 버거운 보건소

 

보건소의 인력부족은 비단 방문간호사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구마다 1개씩 있는 보건소로는 구민들의 건강을 관리하기엔 버거운 상황이다.

 

지난 4일 오전 10시 20분,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관악구 보건소 2층 예방접종실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기 예방접종을 하러 온 엄마들과 신종플루 예방 접종을 위해 보건소를 찾은 노인들로 앉을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다.

 

"할머니, 접수 번호 뜨면 안에 오셔서 접수하고 기다리세요."

"아니 또 기다려야 돼?"

"일찍 오셔야지 안 그러면 1시간 정도 기다리셔야 해요."

 

오옥규(79, 봉천6동) 할머니가 더 기다려야 한다는 직원의 안내를 듣고는 접수번호가 적힌 신종플루 예방접종 서류를 만지작거렸다. 서류에 적힌 접수번호는 57번. 하지만 전광판 숫자는 40번 대를 맴돌고 있었다.

 

"9시 조금 넘어서 도착했는데 오래 기다렸어. 빨리 오려고 택시까지 타고 왔는데…. 집에 환자가 있어서 빨리 가봐야 하거든."

 

보건소 벽에는 '오전 접종은 대기인 수가 많은 관계로 11시까지 오셔야 가능합니다'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오전 10시 43분, 대기인수는 20명을 가리켰다.

 

관악구 주민수는 2009년 12월 31일 기준으로 54만 7311명. 하지만 보건소는 1곳뿐이다. 의사 6명과 간호사 25명 등을 포함한 107명의 직원들이 50만 명이 넘는 주민에게 공공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오 할머니가 찾은 예방접종실의 경우 보통 의사 1명이 혼자 근무하고 있다.

 

각 구는 일반적으로 보건소 1개에 10명이 채 되지 않는 의사를 두고 있다. 보건소 1개 외에 보건분소가 1개 더 있는 강남구(주민수 56만 9499명)나 강동구(주민수 48만 9655명) 등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에 속한다.

 

"한국의 인구당 보건직원 수 미국의 1/3 수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상이 제주대 교수는 "한국 인구당 보건직원 수가 미국의 1/3 수준"이라면서 "보건소에 사람을 더 고용하고 인구 5만명당 보건지소 1곳은 만들어야 접근성이 보장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아주 취약한 상황의 극소수 기초생활수급자들을 몇 달에 한 번꼴로 찾아가는 걸로는 (방문 보건 사업의) 실효성이 없다"며 "노인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 지속적으로 계속 관리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보건 쪽의 인력 고용을 통해 일자리 창출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역시 "동네마다 하나씩 '우리동네 보건지소'를 만든다면 고혈압 환자가 제대로 약을 먹고 있는지, 치매 환자의 상태는 어떤지 다 확인할 수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간호사가 가고 이틀에 한 번은 물리치료사가 가고 하는 식으로 노인 방문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금요일 저녁 이후 아프면 참거나 응급실에 가야하지만 스웨덴에서는 의료 공백에 해당하는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보건소 의사들이 전화상담을 해주고 필요한 경우에는 의사가 왕진을 가기도 한다"며 "그런 게 보건지소가 해야 될 역할"이라고 말했다.


태그:#보건소, #보건지소, #방문간호, #예방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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