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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붕가붕가레코드 소속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장기하를 인터뷰할 생각이었다.

TV를 거의 보지 않는지라 어떤 가수와 노래가 뜨는지 잘 모르고 사는 필자에게도 익숙할 정도로, <장기하와 얼굴들>은 인디밴드로서는 드물게 대중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장기하씨의 나이도 20대니 인터뷰의 취지에도 맞아 떨어지고 말이다. 만나서 얘기를 하려면 <장기하와 얼굴들>에 대해서 뭔가를 알아야 할 텐데, 마침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라는 책이 나와 있어서 인터뷰어의 책임감으로 읽어 내려갔다.

포즈를 취해 달라는 요청에 자연스럽게 주위의 소품을 활용하고 있다.
▲ 붕가붕가레코드 고건혁 대표 포즈를 취해 달라는 요청에 자연스럽게 주위의 소품을 활용하고 있다.
ⓒ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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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인터뷰 대상을 바꿨다.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꾼다고 했는데, 인터뷰 대상까지 바꾸다니. 지난달 12월 27일 마포구 연남동 지하의 붕가붕가레코드 '싸구려' 사무실에서 만난 사람은, 일명 곰사장으로 불리는 붕가붕가레코드사 대표 고건혁씨였다. 그가 권하는 '싸구려' 커피를 정중히 사양하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배후조종자 맞죠?'

책을 통해 만난 고건혁씨는 전형적인 배후조종자였다. 서울대 심리학과 00학번인 고씨는 학생운동을 하면서 서울대 총학생회의 문화사업을 담당했다고 한다. 학회장, 과 학생회장, 편집장 등의 경력(?)을 쌓으며 능숙해진 것은 다름 아닌 꼬드기는 기술이었다고 한다. 이 기술로 뮤지션들을 꼬드기고 있는 것이다.

"하하하하. 장기하씨의 작업을 배후조종했다고 보기는 힘들고요. 제가 도와준 것이죠. 기껏해야 <장기하와 얼굴들> 성공의 5% 정도를 기여한 것 같습니다."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책 표지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책 표지
ⓒ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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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무색케 하는 노련한 답변이 돌아온다.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고건혁씨는 소속된 밴드들, <술탄 오브 더 디스코>, <장기하와 얼굴들>, <치즈 스테레오>, <아마도 이자람 밴드>,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아침> 등 각 밴드들의 얼추 5%씩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가 이렇게 배후조종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지독한 음치였기 때문이다.

"심각한 음치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음악활동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우연히도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음악을 참 잘하더군요. 저를 흥분시키는 음악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 좋은 음악을 팔아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이 일을 하는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러면 붕가붕가레코드는 속된 말로 음악을 빌미로 돈 좀 만져보려고 만든 그런 곳인가? 이렇게 '팔아먹고 싶다'는 말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오해를 풀기 위해서 붕가붕가레코드가 내세우고 있는 모토,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이해해야 한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잘 풀려서 음악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는 조건이 되었지만 그것은 특수한 경우이고요. 붕가붕가레코드에는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도 지속적으로 음악활동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붕가붕가레코드의 목적입니다."

붕가붕가레코드 사람들은 이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위해서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독특한 방식으로 음반을 제작하고 판매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으라 했다.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우면 된다. 이름 하여 '수공업 소형음반' 제작. 이들에게 녹음실은 곧 음반을 찍어내는 공장이기도 했다. 이들은 한데 모여서 공CD에 음악을 녹음하고 케이스에 인쇄된 라벨지를 붙인 후에 비닐 포장기를 빌려와서 직접 포장을 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도 이런 싸구려 환경 속에서 탄생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경우 300만 원을 투자해서 4억 원을 벌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붕가붕가레코드의 취지에 맞게 1/N로 수익을 나눕니다. 제가 대표를 맡고 있지만 그것도 제가 하는 역할을 나타내는 이름일 뿐입니다. 우리는 수평적인 조직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회의 때도 누구에게나 동등한 권한이 있습니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멤버로 활약(?)하고 있는 고건혁 씨의 모습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멤버로 활약(?)하고 있는 고건혁 씨의 모습
ⓒ 고건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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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어서일까? 고건혁씨는 '일보 전진을 위한 반보 후퇴'라는 독특한 용어를 사용해서 자신들이 벌이고 있는 일들을 설명한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뭔가를 한다는 것은 항상 실패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 실패를 감수할 때 보통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요, 우리에게는 이보 전진이나 일보 후퇴는 좀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보 전진을 위한 반보 후퇴'라는 말을 씁니다. 어쨌든 반보씩은 전진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는 이런 자신들의 태도를 특유의 '소심함'으로 정의한다. 수공업 소형음반 형태로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소심함 때문에 가능했고,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붕가붕가레코드가 이만큼 굴러올 수 있었던 것도 눈앞의 작을 일 하나를 차곡차곡 해결하려했던 소심함 때문이었단다. 고건혁씨의 말대로라면 지금은 붕가붕가레코드에게 반보 후퇴의 시기이다.

"저희가 앞으로 내딛을 일보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붕가붕가레코드를 넘어서 붕가붕가레코드가 스스로의 두 발로 설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태는 반보 후퇴하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2009년 6월부터 벌였던 사업들이 기대만큼 성과가 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그래도 손해는 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업이 손익분기에서 간당간당하거나 약간이지만 수익을 내거든요. 이것도 소심함 때문이지요. 그래서 일보 후퇴는 하지 않는 겁니다. 반보 후퇴인거죠."

붕가붕가레코드사의 사무실 모습. 인간미와 자연미가 넘친다.
 붕가붕가레코드사의 사무실 모습. 인간미와 자연미가 넘친다.
ⓒ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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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소심함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소심함도 양날을 가진 검이다. 고건혁씨도 그러한 부분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가 소심함을 극복하고 붕가붕가레코드와 같은 일을 벌일 수 있었던 이유는 재미와 흥분 때문이었다. 반복되고 따분한 삶을 거부하고 재미있는 삶을 추구하는 욕구, 그리고 재미있는 일을 접했을 때 느끼는 흥분은 소심함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뜬금없이 책 한 권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편으로는 소심하면서도, 재미를 추구하고, 흥분을 잘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 책은 무엇일까 갑자기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런 필자의 요청에 그는 커트 보네커트가 쓴 <제5도살장>을 추천한다.

붕가붕가레코드 고건혁 대표가 추천한 책
▲ <제5도살장> 책 표지 붕가붕가레코드 고건혁 대표가 추천한 책
ⓒ 아이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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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이 저지른 끔찍한 전쟁 범죄 중 하나인 독일의 드레스덴 폭격을 경험한 한 안경업자가 말년에 비행기 사고로 인한 아내의 죽음을 경험한 후, 자신이 외계인에게 납치된 이후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고 믿게 됩니다. 그러면서 현재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리고 외계 문명에 대한 얘기가 얽히고설키어 진행되는 얘기인데요. 읽는 내내 전쟁하는 인간에 대한 지극한 조소로 일관하는 날카로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종국엔 전쟁이 남기는 상처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서글픈 마음으로 공감하게 되는 그런 작품입니다."

뜬금없는 질문에 뜬금없는 책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눈발이 날리는 거리를 걸으며 누군가 한 말이 생각났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아마도 고건혁씨를 만났기 때문에 떠오른 것 같다. 붕가붕가레코드는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함께 꿈꾸는 사람들이 모였다. 반보만 후퇴할 줄 아는 현실감각과, 그러한 현실감각을 넘어서는 재미와 흥분에 대한 욕망, 이것들이 어떻게 결합되느냐에 따라 붕가붕가레코드의 꿈이 현실이 될지 꿈으로 그칠지는 정해질 것이다. 그들에게 건투를!

덧붙이는 글 | 주변 분들중에 단순히 취업준비와 스펙쌓기를 넘어서 도전적인 삶으로 희망을 일구어나가는 20대 30대의 청년이 있다면 이메일 reltih@nate.com 로 추천해주세요.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태그:#고건혁, #곰사장, #붕가붕가레코드, #장기하와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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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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