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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반란을 꿈꾸는 <요새 젊은 것들> 책 표지
 발칙한 반란을 꿈꾸는 <요새 젊은 것들> 책 표지
ⓒ 도서출판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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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반란을 꿈꾸는 <요새 젊은 것들>'이라는 책이 나왔단다. 20대가 만난 20대를 다뤘는데, 원래는 나이 드신 저명인사가 20대 청년학생들에게 훈화말씀을 주는 인터뷰 책으로 기획이 시작되었단다. 세상에! 안 그래도 없는 살림에 책값 1만2천원을 내고 훈화를 빙자한 꾸지람을 들을 20대가 과연 얼마나 있단 말인가. 망할 게 불을 보듯 빤한 기획에 태클을 거는 것으로부터 일은 시작되었다.

잡지 <민족21>의 기자이기도 한 대학생 전아름씨의 발칙한 태클에서 시작된 소위 '88만원세대 자력갱생 프로젝트'는, 20대 인터뷰어 3명이 평소에 만나고 싶던 9명의 저명한(?) 20대를 만나서 인터뷰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가 <요새 젊은 것들>이라는 책으로 묶여 나오게 된 것이다.

'이거 괜찮은 기획인 걸?'

평소에 호기심이 생기면 참지 못하는 필자, 결국 지난 22일 홍대 근처의 한 카페에서 <요새 젊은 것들>의 저자 세 명과 만남을 가졌다. 만난 사람이 세 명이다보니 우선 각자의 소개가 필요하리라. 아래의 박스를 참고하자.

이 세 명의 친구들과 만나서 장장 세 시간을 함께 수다를 떨었다. 인터뷰 연재기사를 써야 한다는 목적도 잊고. 인과응보라고 했던가. 녹취를 들으며, 방만하게 진행된, 인터뷰를 가장한 수다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한참을 괴로워했다. 다행히 번뜩 머리를 스치는 몇 개의 키워드가 있었다.

[키워드1] 우리는 '중2병' 환자예요

<요새 젊은 것들> 공동저자 3인

공동저자 박종윤
 공동저자 박종윤

박종윤
(필명 단편선)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부 04학번. 졸업을 해야 하는데 학점이 모자라서 아직 못했다.

대중음악전문웹진 <보다>라는 곳에서 비평을 가장한 사담을 기고하고 있다. 음악창작자다. 중산층이 무너진 관계로 곧 생계형빈민포크날품팔이가 될 듯하다.

평생 음악노동자로서 살아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공동저자 전아름
 공동저자 전아름

전아름


2005년 수능 때 언어영역 시간에 까무룩 잠드는 바람에 시험을 제대로 망치고 1년 재수해 서울여대 사학과 06학번으로 입학했다.

입학하자마자 서울여대 학보사에 입성했고, 대학교 3학년 때인 2008년 <민족21>이란 잡지에 등록금투쟁 기사를 기고하게 된 인연으로 휴학 후 <민족21>에 적을 걸게 됐다. 하지만 연이어 저지른 사고로 입사 1년도 채 안 돼서 '모가지 날아가기 일보 직전'이라고. 학교에서도 졸업 필수인 대학영어와 바롬교육 학점을 날려 언제쯤 졸업이 가능할지는 본인도 모른다.

공동저자 박연
 공동저자 박연

박연


서울대 정치학과 08학번. 글과 그림, 음악과 학문을 한 번씩 건드려보면서 자신이 팔방미인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꿈은 만능 엔터테이너. 온갖 일을 벌이는 걸 좋아한다. 단 하나, 정치는 빼고.

밴드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의 보컬이며 골방 뮤지션들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포부로 현재 서울대에서 <관자놀이>(관악자작곡놀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저희가 그런 것이 좀 있어요. 중2병이요."

처음 듣는 단어에 놀란 필자에게 '중2병'의 의미를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20대 저자들.

중2병이란 '나는 다른 사람과 달라'라는 생각을 가지는 중학교 2학년의 정신 상태를 빗댄 말이다. 시쳇말로 '자뻑(스스로 뻑간다)'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사춘기를 지나 나이를 먹고 철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치유되기 마련이다. 이 발칙한 세 명의 20대 저자는, 자신들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인터뷰한 9명의 20대 모두가 '중2병' 환자이고 '자뻑' 상태라고 진단한다.

천부적인 '싸움꾼'  - 키보드워리어 한윤형
장기하 띄운 딴따라질 - 붕가붕가레코드 곰사장
당당한 좌파는 이쁘다 - '고대녀' 김지윤
'붉은 서재'에서 노닐다 - 헤비블로거 박가분
'영이'와 '미나'의 두 얼굴  - 소설가 김사과
개성 만빵 독립패션잡지 - 크래커 편집장 장석종
세계를 향한 부산발 '작은 혁명' - 인디고서원 팀장 박용준
그들의 무대는 '거리' - 청춘 뮤지션 좋아서 하는 밴드
세상에 反한 開청춘 - 여성영상집단 반이다

세 명중 상대적으로 인생경험이 가장 풍부한(?) 박종윤(필명 단편선)씨는 다음과 같이 '20대 자뻑론'을 펼친다.

"자뻑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잘난 척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 잘났으니까. 내가 돈을 지금 얼마나 갖고 있냐,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 20대가 가진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다만 여러 가지 상황들 때문에 못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겉모습만 보고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느니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네요. 우리가 뭔가 재미있는 것을 해보려고 할 때 자기가 뭐 도와준 것이라도 있냐고 말입니다."

셋 중 막내둥이 박연은 '책에는 안 나왔지만 인터뷰이들이 나한테 많이 배웠다'며 직접 20대 자뻑의 산 증인이 된다. 순화시켜 말하자면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맥락에서 한 얘기일 테다.

왼쪽부터 박연, 박종윤(필명 단편선), 전아름
▲ <요새 젊은 것들> 공동저자들 왼쪽부터 박연, 박종윤(필명 단편선), 전아름
ⓒ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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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웬 걸? 이런 분위기 싫지 않다. 하긴,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불편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기분이 썩 나쁘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한편 이들의 '중2병'이 심한만큼, 이들은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서 매우 당당했다. 그래서 자신들의 모습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왜곡되어 보여 지는 것에 매우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저는 뭔가를 낭만적으로 그리는 것이 싫습니다. 위악 떨기도 싫고 위선 떨기도 싫어요."

박종윤씨는 이렇게 자신들을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말한다. 지난 20일에 있었던 <요새 젊은 것들> 출판기념회에서 공연을 했던 박종윤씨는 여자가 많이 올 것이라는 정보를 듣고 가슴이 많이 파인 상의를 준비했다고 한다. 쇄골을 자랑하기 위해서란다. 어쨌든 쇄골 작전은 성공한 듯 보였다. 솔로인 그에게 관심을 표명한 여성들이 있다는 후문이 들리니 말이다. 작년 10월 EBS 방송의 <리얼실험프로젝트X>에서 아프리카에서의 활동으로 전파를 탔던 박연씨는 자신의 아프리카 방문이 '기부천사'라는 식으로 너무 착하게만 포장된 것에 불편함을 얘기했다. 전아름씨는 잡지 <민족21>에서 일하면서 자신이 저지른 큰 실수에 대해 담담하게 얘기한다.

'중2병'이란 것,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키워드2] 우리는 문화로 소통해요

셋 중에서 인터뷰 책을 내자고 먼저 제안한 전아름씨의 꿈은 소설을 쓰는 것이다. 박종윤씨는 음악을 생산하는 노동자로서 세상을 바꾸는 데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막내둥이 박연씨는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 걸'이라는 밴드의 보컬을 맡고 있으며 직접 곡을 쓰는데, 앞으로 문화 운동을 하고 싶단다.

"저는 요새 시를 쓰고 있어요. 시어의 직접적인 표현이 좋아요. 사람들은 시어가 말을 꼬아 놓는다고 얘기하는데, 오히려 시어의 비유적 표현이야말로 저에게는 직접적인 표현으로 다가와요. 문화운동 차원으로 학교에서 <관자놀이>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고요. 소설도 쓰고 싶고, 그림도 좋아해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블로그도 제대로 해 볼 계획이고요. 사진을 담고 글을 쓰는 블로그인데요. 서울에서 만나는 아이러니한 장면들을 담아내고 싶어요. 예를 들면 엄청 으리으리한 타임스퀘어에서 <좋아서 하는 밴드>가 노래를 하는데, 에스컬레이터는 올라가고 불이 막 반짝거리는 가운데 노래를 하는 장면을 담는 거죠."

박연씨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나는 지금 여기 살아 있소'라는 말을 '문화'라는 코드를 빌려서 하고 있는 듯 했다. 시를 쓰고,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블로그를 하는 모든 문화 활동들이 자기 존재의 증명인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잡지사에 있으면서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사람도 많이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런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은데요. 사회과학 책으로 내 얘기를 풀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내 얘기를 풀어보고 싶어요."

소설가를 꿈꾸는 전아름씨 역시 결국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소설, 즉 문화를 선택한 것이다.

현실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문화의 힘을 잘 보여준 애니메이션이 있다. 걸작 애니메이션 <마크로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린 민메이는 자신의 노래 하나만으로 젠트라디인과 지구인 사이의 전쟁을 끝내버렸다. 민메이의 노래를 통해 젠트라디인과 지구인은 서로 소통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만화와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지만, 20대의 문화가 과연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녀의 노래는 젠트라디인과 지구인 사이의 전쟁을 멈추게 했다. 문화의 힘이란 어떤 것인지를 잘 표현한 명장면이다.
▲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의 여주인공 린 민메이 그녀의 노래는 젠트라디인과 지구인 사이의 전쟁을 멈추게 했다. 문화의 힘이란 어떤 것인지를 잘 표현한 명장면이다.
ⓒ 쇼각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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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3] 우리는 쾌락을 추구해요

"쾌락을 추구하는 욕구가 단순히 성욕, 식욕같은 것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에요. 내가 이것을 했을 때 즐거움을 얻었다면, 이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지거든요. 개인적인 즐거움에서 시작했지만 이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욕구가 중요한 것 같아요."

박연씨는 이렇게 얘기하면서, 자신이 만났던 인터뷰이들도 모두 쾌락주의자였다고 덧붙인다. 그녀가 <요새 젊은 것들>을 준비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돈벌이가 잘 안 되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용기 있게 하고 있었다. 박연씨가 보기에 그들이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은, 그 일을 할 때 얻을 수 있는 쾌락 때문이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그 누가 재미도 없는 일을 꾸준히 오래 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돈벌이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말이다. 그들은 돈이냐 쾌락이냐의 갈림길에서 과감하게 쾌락을 선택한 것이다. 자신이 쓴 글을, 자신이 만들고 연주한 음악을, 자신이 창조한 영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는 쾌락은 그들에게 돈보다도 훨씬 소중한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느끼고 있는 쾌락을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도 그 쾌락의 마술에 빠지게 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중요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바꾸는 '쾌락'이라, 은근히 멋진 걸?

용산 참사 해결을 위해 노래로 연대하고 있는 박종윤씨(우측).
 용산 참사 해결을 위해 노래로 연대하고 있는 박종윤씨(우측).
ⓒ 박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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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세대'라는 단어가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20대를 하나의 단어로 규정하는 것은 분명 무리한 시도일 것이다. 하지만 몇 개의 단어를 섞는다면 지금의 20대를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발칙한 세 명의 인터뷰어를 만나면서 '중2병', '문화', '쾌락'같은 단어들을 하나로 버무린다면 요즘 20대의 모습을 그럴싸하게 묘사할 수 있는 뭔가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점과 스펙 관리의 숨 막히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실천하고 있는 9명의 20대, 그리고 이들을 인터뷰한 발칙한 3명의 20대. 그들에게는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개척해나가는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향기가 난다. 이 12가지 향기를 한 권으로 책으로 음미할 수 있는 것은 분명 흔치 않은 일이다. 지금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 이들 한 명 한 명을 어떻게 직접 만나볼 수 있을까 계속 궁리 중이다.

덧붙이는 글 | 주변 분들중에 단순히 취업준비와 스펙쌓기를 넘어서 도전적인 삶으로 희망을 일구어나가는 20대 30대의 청년이 있다면 이메일 reltih@nate.com 로 추천해주세요.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태그:#요새 젊은 것들, #박종윤, #전아름, #박연,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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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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