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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가 고3 수험생이던 2001년. 당시는 전년과는 크게 달라진 '입시안'으로 인해 전국 고등학교 학생들이 큰 혼란에 빠졌던 시기다. 주요 대학들 중 상당수가 수,우,미,양,가로 점수를 반영하는 평어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즉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석차 뿐만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과목에서 '수'를 맞느냐가 중요했다.

 

그렇기에 각 학교들은 재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받게 하기 위해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주섬주섬 다른 학교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각 학교의 노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하나하나 문제를 알려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외우기만 하면 답을 쓸 수 있는 문제를 수두룩하게 냈다고 한다. 덕분에 100점, 99점 점수를 맞는 학생들이 양산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야말로 내신 퍼주기였다.

 

이상한 학교의 이상한 시험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홀로 지조를 지키는 학교가 있었으니, 바로 우리 학교였다. 대전 변두리에 위치해 있던 우리 학교는 여느 학교와 달랐다. 아니 달랐다기보다는 조금 이상한 학교였다. 남들이 뭐라든 우리 학교는 꿋꿋하게 경시 대회 뺨치는 난이도의 중간, 기말고사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한 학교의 이상한 시험은 나 같이 순진한 재학생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다른 학교는 산타가 되어 재학생들에게 쉬운 문제, 높은 점수를 팍팍 선물할 때, 우리 학교는 산타는커녕 심술보 스크루지 영감처럼 온갖 짜고, 매운 문제를 양념해 최악의 점수를 맛보게 한 것이다. 그러니 학생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난 그것이 우리학교가 입시 정보에 어두웠기 때문이 아니라, 차라리 내신 퍼주기를 행하던 많은 학교들의 행태를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용기있게 한 일이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 학교가 그저 입시 정보에 어두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상황에서 결국 일은 더욱 크게 터지고 말았다.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때였다. 무진장 어려운 시험으로 인해 우리 착한 학생들이 제대로 피(?)를 보고 만 것이다. 수학시험을 본 우리학교 학생의 평균이 40점대 후반, 평어는 말하자면 60점을 넘지 못했기에, 많은 학생들이 평어 최하점인 '가'를 맞고 말이다. 비단 수학만이랴, 전체 평균도 끔찍할 정도로 낮았다.

 

대학 수학 능력시험보기에도 벅찬 날들, 하지만 우리는 수능이 아닌 중간 고사 점수를 보고 경악해야만 했다. '학교가 미쳤어'라는 볼멘 소리가 절로 터져나왔다. 내신을 잘받아야 대학도 가고 어찌 좀 잘 될텐데, JM(절망)이 되어 버렸다.

 

'으악, 우리 대학 못가는 거 아니야?'

'수능 망하면 억울하지나 않지, 내신 때문에 대학 못 가겠네.'

 

끔찍한 점수(?)를 받은 친구들의 원망과 절규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나도 마찬가지, 3학년 1학기 중간 고사를 끝낸 나는 좌절했다. 수학 점수가 39.5점. 평어로 치면 '가'였기 때문이다. 비단 수학 점수 뿐만 아니라 대부분 과목에서 낙제생이 봐도 쯧쯧 혀를 찰, 점수를 받고 말았다. 석차만 보면 반에서 5-6등 정도니 나름 우등생인데, 평어는 -가가우미가양등등 이만한 낙제생도 없어 보였다.

 

더욱 걱정됐던 사실 하나는 내가 간절히 원했던 대학이 석차가 아닌 평어로 내신을 반영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평어로 내신 점수를 채워 넣어야 하는 내 처지에서 이런 낮은 점수는 치명적이었다. 대학은 다 간 것 같았다. 오마이 갓! 뭔가 해결책이 필요했다. 이상한 학교, 이상한 시험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고자 한 것이다.

 

이상한 시험에서 살아 남는 법

 

그런 슬픈(?) 상황에서 뭔가 해결책을 찾던 찰나. 그나마 내 기분을 풀어줬던 것이 하나 있었다. 다른 과목의 참담한 점수와 달리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국사는 89점이란 점수를 받았단 사실이다. 천만 다행이었다. 우리 학교의 끔찍했던 중간고사 문제 난이도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런 내 마음을 더 들뜨게 하는 말. 친구들의 너 대단하다. 어떻게 이렇게 잘 맞았냐 하는 칭찬들이었다. 다른 친구들의 국사 점수가 나보다 무려 20~30점 정도 낮았다. '넘사벽'이었던 우리반 1등 엘리트랑 엇비슷한 점수에 나는 속으로 '나 국사 천재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친구들의 그런 극찬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있었다. 점수가 89점, 단 1점이 모자라 '수'가 아닌 '우'를 받은 것 말이다. 국사는 적어도 수를 받았으면 했는데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몇몇 과목도 끝자리가 9나8로 끝나서 1~2점만 올리면 평어가 더 올라갈 수 있었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그때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 시험 문제의 문제점을 지적해, 점수를 올리면 되지라는 황당 계획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마디로 정면돌파. 1~2점을 올려 평어 점수를 팍팍 올리자는 계획이었다. 이상한 학교, 이상한 시험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부터 이상한 학생이 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뭔가 선생님들이 꼼짝 못할 문제점을 지적해야 해!'

 

그래서 시험 문제를 보고 또 보며 오류를 찾기 시작했다. 영어, 국어, 미술, 체육 등등, 점수 끝자리가 8~9로 끝나는 과목은 모두 목표가 되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문제지를 보고 또 봤을까? 치밀하게 문제지를 보고, 자료를 검색한 끝에 결국 각 과목의 적당한 문제점들을 골라 낼 수 있었다.

 

사실 문제점이라고 하긴 뭣한 거였지만 나름 '말빨'에는 자신 있었기에 든든한 마음으로 수업 시간을 기다렸다. 아하면 아되고, 어하면 어되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라고 단순하게 생각한 것이다. 다행히 몇몇 친구들도 내 계획에 동조하기로 해 더 든든했다. 

 

그렇게 시험 문제 확인 시간이 다가왔다. 하지만 내 꿍꿍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님들은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교실에 들어와 시험 점수를 확인해 보라고 했다. 분명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표정이었다.

 

"시험 점수 확인하고 문제 있으면 손들어!"

 

하지만 자신만만하던 선생님의 얼굴이 멈칫거렸다. 내가 손을 들어 시험 문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선생님 문제가 이상해요. 잘못 내신 것 아닌가요? 답이 두 개 같아요. 왜냐하면…"

 

난 나름의 이유를 들어 출제된 문제의 잘못된 점을 파고 들었다. 나의 황당 공격에 당황했던 선생님들, 하지만 역시 교사 생활 다년간의 축적된 역량은, 내 '지적질'에 무너질 것이 아니었다. 영어·체육·국어 선생님들은 반격을 개시했다. 괜한 지적질이라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말고, 다른 질문 또 없니?"

"너 자꾸, 이렇게 물고 늘어질거니? 자꾸 허무맹랑한 소리하면 맞는다."

"진성아, 너 평소답지 않게 왜 그러니? 문제가 잘못된 게 아니라 너가 이상하다."

 

맞는다, 너가 이상하다,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마라 등등 선생님들의 따끔한 충고에 나의 희망은 눈녹듯 사라져 갔고 결국 남은 것은 마지막 국사뿐이었다. 그렇기에 마음이 절박해 졌다. 적어도 국사는 내 자존심이니까 이대로 끝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상한 학생, 국사 선생님께 무릎꿇다

 

다행히 국사 선생님은 학교에서 유명한 '순딩이' 선생님이었다. 게다가 국사 문제 지적에 가장 오랜 공을 들인 만큼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선생님은 평소 나와 국사관련 대화를 많이 해서 내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국사 선생님이 들어오자마자 맹공을 퍼부었다.

 

"선생님, ()번 문제가 이상합니다."

"어, 문제의 어떤 부분이?"

 

50대 초반의 남자이자 우리들에게 순딩이라 불렸던 국사 선생님은 내 질문에 놀라며 진지하게 문제를 흝어보셨다. 나는 시간을 둬선 안된다고 생각해서 계속해서 논리적인 척 지적질을 이어가며 답이 하나가 아니라 다른 것도 된다고 주장했다. 다행히 반의 엘리트 친구와 몇몇 친구들도 동조를 해서 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구색을 갖췄다. 하지만,

 

"음, 아니야 이 문제의 답은 하나야. 너희들이 말한 부분은 ~이 틀리잖아."

 

국사 선생님은 문제를 한참 보더니 원래의 답이 맞다고 결론을 내리시는 것 아닌가? 그리고 믿었던 친구들도 선생님의 말을 하나, 둘 인정 하고 있었다. 결국 나만 계속 그 문제가 잘못되었다고 고집하는 꼴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대로 포기할 수 없어서 계속 고집을 부렸다. 사실 난 단 1점을 더 받고 싶을 뿐이니까 말이다.

 

"선생님, 어느 정도 문제가 있으니 1점이라도 주시면 안돼요?"

"안된다."

 

나는 속으로 '정말 너무 하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래서 조금은 못되게, 선생님께는 참 미안한 말을 던지고 말았다. 선생님의 자존심을 건든 것이다.

 

"아니, 선생님. 왜 자꾸 고집을 부리세요. 그럴거면 제가 국사편찬위원회에 문의해서 이 답변 틀리다고 받아오면 인정해 주실 거에요?"

"…"

 

내 발언에 친구들은 '국사편찬위원회'라고 하면서 킥킥 웃어댔다. 하지만 선생님은 자존심이 상하셨는지 한참을 가만히 계시더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셨다. 그리곤 잠시 후 국사 선생님은 힘없이, 내가 주장했던 답에 1점을 부과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드디어 목표로 했던 90점. 국사 '수'를 맞은 것이다. 그런데 기쁨보다 불편해하시던 선생님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럴 만 하셨다. 제자가 교사인 자신을 믿지 못하고 '국사편찬위원회'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당황스러우셨을까. 화도 많이 나셨을 텐데 순하신 선생님은 그저 마음으로만 화를 삭이고 계신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공연한 말을 꺼낸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씁쓸했다. 쉬는 시간. 국사 선생님은 교무실로 돌아가셨고,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킥킥대며 말을 꺼냈다.

 

"야, 너 순딩이 표정 봤냐? 너가 국사편찬위원회 이야기할 때 완전 놀라서… 하하, 완전 통쾌하더라"

"진성아. 고맙다. 너 덕분에 1점 벌었다." 

 

그런데 왜였을까. 친구들의 통쾌하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국사 선생님께 얼마나 못된 짓을 한 것인지 깨달았다. 내가 지금 얼마나 이상한 학생이었는지도 알았다. 선생님의 자존심을 짓밟은 것이니까 말이다. 그깟 내신이 뭐라고, 그깟 시험이 뭐라고 스승에게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 돌이켜 생각해보니 너무나 미안하고 죄송했다. 

 

그래서 나는 쉬는 시간이 끝나기 전에 친구들 틈을 빠져나와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에는 국사 선생님이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앉아 계셨다. 내가 오자, 흠칫 놀라며 또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다. 나는 용기 내어 선생님께 다가가 무릎을 끓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그깟 1점에 맛이 가서, 너무 못된 말을 했습니다. 본심이 아니니까 화 푸셨으면 합니다."

 

나의 미안한 마음이 국사 선생님께 닿았는지, 굳었던 선생님의 표정이 조금은 환해졌다. 괜찮다며, 얼른 일어나라는 선생님의 말에 그냥 괜히 눈가가 촉촉해졌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며 눈가를 닦았다. 이상한 학교, 이상한 시험 때문에 이상한 학생이 될 뻔한 내가 다행히 다시 정상 학생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나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응모작입니다.


태그:#중간고사, #국사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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