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나를 기다려 줄꺼야?"
"그래 기다릴께 천천히 와!"
백혈병에 걸려 좀 있으면 하늘로 가는 언니에게 동생이 말하고 대답했다. 그들에게 죽음은 다시 만나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절대 못 떠나 보낸다는 각오가 투철한 엄마가 시키는대로 어릴 적부터 투병해 온 언니와 그 언니에게 유전자를 제공하기 위해 시험관 맞춤아기로 태어난 동생의 독특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백혈병까지는 아니지만 우여곡절끝에 10여 년 전에 죽음의 골짜기를 건넌 딸이 함께 보자고 요청한 <마이 시스터즈 키퍼>는 오랜만에 가슴을 흠뻑 적시는 좋은 영화였다. 딸이 무척 좋았다는 영화음악을 듣지 못하지만, 영화관 벽에 온 몸을 부딪친 후 다시 반사되어 내게 도달하는 내 팔과 다리와 가슴과 피부에 닿는 소리의 진동은 오감을 기분좋게 자극했다.
2004년에 발간된 소설 <쌍둥이 별>을 영화화 한 <마이 시스터즈 키퍼>의 홍보줄거리는 언니의 병구원용으로 맞춤아기인 동생이 언니에게 골수, 유전자 제공 등 많은 고통을 받으면서 지내다가 11세가 되면서 자신의 몸을 보호해달라고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정투쟁을 벌이는 내용만 소개되었다.
주인공 안나가 끝내 사랑하는 가족들을 두고 죽는 것으로 결말지었지만, 그 죽음 자체가 안나가 선택한 것이었고, 죽음을 선택하여 사랑하는 연인의 영혼을 찾아올라가고 싶은 소망을 이루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안나는 죽음이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만, 안나의 엄마에게는 사랑하는 딸과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라는 두려움을 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처음에는 가족들이 엄마의 뜻을 받들지만, 결국은 죽어가는 안나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엄마와 법정투쟁을 하게 된다.
먼저 하늘자리에서 동생과 가족을 기다리겠다는 소망은 삶과 죽음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가족 개개인의 삶을 변화시키고 성숙하게 한다. 안나가 살아있을 때 기적은 없었지만, 안나의 죽음으로 해서 가족들의 마음에 기적의 씨앗이 심어진 셈이다.
나는 예전에 딸과 떨어져 살 때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엄마! 보고 싶어! 나 좀 구해 줘! "
딸이 애타게 나를 부르고 손짓하는데 나는 딸을 향해 열심히 뛰어가지만 계속 제자리걸음처럼 좀처럼 딸과의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다. 안간힘을 써서 딸의 옷자락을 잡았다 싶었는데 그만 잠이 깨었다.
아직 새벽이 오지 않은 한밤중이었다. 묵주를 들고 한동안 딸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다시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안 오고 뒤숭숭해서 쓰레기를 버리고 마당을 산책하려고 이층의 연구실에서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주인집 개가 짖을까봐 살금살금 내려가다가 밤눈이 어두워 몇 계단을 남기고 굴러 떨어졌다.
어둠속에서 쓰레기를 주섬주섬 주워담아 버리고 올라와서 거울을 보니 가관이었다. 입술이 터지고 앞니 두어 개가 심하게 삐뚤어졌다. 그리고 손목과 무릎도 시큰거린다. 안 그래도 꿈속의 딸 때문에 뭔가 쌓인 것들이 그대로 눌러져있다가 분출하는 것처럼 눈물로 펑펑나왔다.
다음 날 거울속의 내 몰골은 꼭 누구한테 한 방 맞은 것처럼 그렇게 입과 코 등이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이빨은 치과에 가서 대충 손질했지만, 가지런한 치아들이 삐뚤해지고 틈이 크게 벌어져서 졸지에 '신체발부수지부모'라는 효도의 기본사항을 어기는 셈이 되어 버렸다
다음 날 딸 아이 아빠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딸이 사고를 당해서 중태라고 강릉으로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인데 어찌 될지 모르니 대기하고 있으라는 연락이었다. 병원에서 아이는 퇴원하면서 엄마한테 가겠다고 완고하게 고집을 부려 내게로 왔다.
나는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아이에게 집중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 상당수가 딸이 위급할 때는 <마이 시스터즈 키퍼>의 엄마처럼 되는 것 같다. 아이는 장기간의 치료와 안정과 보호가 필요해서 외국어고등학교를 잠시 휴학하고 친정엄마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행운처럼 우여곡절 끝에 6개월 만에 회복되어서 다시 학업을 시작했고 지금 한 지붕아래 살고 있다.
딸에게 노크한 죽음의 문턱은 살아가면서 만나는 높고 낮은 숱한 문턱에의 두려움을 없애주었다. 영화에서 안나의 죽음으로 인해 안나의 가족이 성숙해지는 삶을 사는 것처럼….
세상의 소리는 듣지 못해도 마음이나 꿈길에서는 아이의 소리를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은 단 하나 행복해지기 위해서이다. 그 행복에 대한 가치관이 사람마다 다르기에 숱한 갈등도 생기고, 행운을 부르는 기쁨이 충만한 경우도 생긴다.
안나의 엄마처럼 아마 나도 또 다시 딸이 죽음이 손짓하는 고비가 온다면 쉽게 딸을 내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안나가 그랬던 것처럼 딸이 그만 하늘자리에 돌아가기를 원한다 하더라도 마지막 최후의 순간까지는 가슴에 보듬고 싶을 것 같다. 그냥 어미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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