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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된 지 9년 만에 철거된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 조부의 휘호비 터.
 건립된 지 9년 만에 철거된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 조부의 휘호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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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이 서 있던 대전 월평동 이마트 앞 은평공원
 비문이 서 있던 대전 월평동 이마트 앞 은평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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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가 공원에 세운, 독립운동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사람을 기리는 기념비를 철거했다. 기념비가 세워진 지 9년 만이고, <오마이뉴스> 등 언론이 철거 문제를 다룬 지 7년만의 일이다.

대전시는 지난 10일 오전 은평공원(대전시 서구 월평동)에 있던 계룡건설 이인구 명예회장 조부의 휘호비를 전격 철거했다. 2000년 건립돼 10년째 서 있던 이 명예회장 조부의 휘호비(높이 4.3m 폭 1.4m)는 이날 중장비에 의해 쪼개져 건축 폐기물로 실려 나갔다.

이날 휘호비 철거는 비문을 철거하라는 대전고등법원 판결에 따른 것이다. 대전고등법원 제1민사부(재판장 김인욱)는 지난달 원고인 대전시와 피고인 대전애국지사숭모회에 보낸 조정결정문을 통해 "대전시가 휘호비를 임의 수거해가고 휘호비를 세운 애국지사숭모회는 이의 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조정안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때 늦은 기념비 철거를 보는 여론은 곱지 않다. 대전시가 수년 동안 말 바꾸기를 하며 시간 끌기로 일관해 왔기 때문이다.

2000년 건립 → 2003년 문제제기 → 2009년 철거

2000년 대전 은평공원에 세워진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 조부의 휘호비(왼쪽)와 생애비(오른쪽). 당초 사업을 시행한 단체는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의 휘호비와 생애비를 세운다며 국고를 지원받아 뒷면에 새기고, 앞면에는 이 명예회장 조부의 확인되지 않은 독립운동 행적을 새겼다. (사진은 2003년 12월)
 2000년 대전 은평공원에 세워진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 조부의 휘호비(왼쪽)와 생애비(오른쪽). 당초 사업을 시행한 단체는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의 휘호비와 생애비를 세운다며 국고를 지원받아 뒷면에 새기고, 앞면에는 이 명예회장 조부의 확인되지 않은 독립운동 행적을 새겼다. (사진은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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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이 세워진 때는 지난 2000년이다. 당시 대전시는 대전애국지사숭모회가 대전지역의 대표적 독립유공자인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의 생애비와 휘호비를 세운다며 국고지원을 요청하자 건립비로 950만 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대전시는 생애비와 휘호비 앞면에 당초 계획에 없던 계룡건설 이인구 명예회장의 조부가 '독립운동가'로 잘못 새겨져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작 주인공인 김용원 선생은 '뒷면'에 새겨졌고 난데없이 이 명예회장 조부와 함께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기재해 놓은 것.

게다가 이인구 명예회장 조부의 경우 항일독립운동을 했다는 증거자료를 찾아볼 수 없어 독립운동 여부가 불분명한 인물이다. 그러나 대전시는 건립 직후 거듭된 민원제기로 이를 확인하고도 수정건립 요구를 묵살했다. 

2003년 초. 민원이 끊이지 않자 대전시 감사관실은 자체 감사를 벌여 "국고보조금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비문 내용에 대한 확인과 정산업무를 소홀히 한 점이 인정된다"며 담당 공무원을 훈계 조치하고 관할 부서에 '시정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대전시는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

2004년 '시정명령' → 2005년 "후손들끼리 알아서 할 일"

공원을 관리하는 서구청에 의해 철거된 미확인독립운동가(이돈직) 생애비 (오른쪽). 하지만 휘호비(왼쪽)는 건재하다.
▲ 2004년 2월 공원을 관리하는 서구청에 의해 철거된 미확인독립운동가(이돈직) 생애비 (오른쪽). 하지만 휘호비(왼쪽)는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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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12월. <오마이뉴스>는 심층보도를 통해 계룡건설 이인구 명예회장 조부의 항일독립운동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비문을 세운 대전애국지사숭모회가 이 명예회장 조부를 독립운동가로 만들기 위해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한 것처럼 행적을 끼워넣기한 의혹이 짙다고 보도했다.

이 밖에 이 명예회장 조부를 독립운동가로 새긴 비문이 대전 은평공원뿐만이 아닌 대전 대덕구 읍내동 무궁화 동산과 대전 동구 효평동,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의 묘비에까지 새겨져 있다고 덧붙였다.

대전시는 <오마이뉴스>가 보도를 통해 이를 지적하자 문제가 있음을 시인하고 "시정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전시는 2004년 2월 대전애국지사숭모회에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거 "조속한 시일 내에 비문 내용을 수정 및 삭제하라"는 '시정촉구 명령'을 내렸다. 또 건립을 주도했던 이규희 대전애국지사숭모회 회장으로부터 "철거조치하고 재설치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확인각서'를 제출받았다.

2005년 "대전시 할 일 아니다" → 2008년 비문 철거 민사소송 제기

2005년 1월, 대전시는 아예 "비를 세운 대전애국지사숭모회와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 후손 간 협의할 일"이라며 그 책임을 애꿎은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 후손에게 떠넘겼다.

대전시는 또 계룡건설 이인구 명예회장이 관련 보도를 문제 삼아 <오마이뉴스>와 <MBC>(PD수첩)를 상대로 형사 및 민사소송(16억 원, 오마이뉴스 6억 원)을 제기하자 '소송결과를 본 후 조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한 법정 공방 끝에 법원이 계룡건설 이 명예회장이 제기한 소송을 기각하자 대전시는 다시 "이  명예회장 조부의 독립운동 여부에 대해서는 행정기관에서 판단할 사항이 아니다"고 답한 데 이어 "기념비 수정 재건립은 대전시가 아닌 시행 단체에서 할 일"(2007년 2월)이라는 공식입장을 내놓았다.

대전시는 대전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단체가 '역사왜곡'이라며 반발하자 지난해 6월, 비를 세운 애국지사숭모회를 상대로 '비문 삭제'를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대전민족문제연구소 이규봉 회장은 "독립운동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을 독립운동가로 둔갑시킨 비문을 공원에 세우고도 대전시가 거듭된 수정건립 요구를 수년째 묵살해 왔다"며 "당연한 일을 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렸고 여러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고 지적했다.

수정 건립까지 소요시간은?

대전 서구 은평공원에 잘못 세워진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 조부의 휘호비. 이 명예회장 조부의 휘호(國忠民爲)와 호(舒卿)가 새겨져 있다.
▲ 2008년 3월, 대전 서구 은평공원에 잘못 세워진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 조부의 휘호비. 이 명예회장 조부의 휘호(國忠民爲)와 호(舒卿)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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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예회장 조부의 비문은 철거됐지만 '비문 재건립'이라는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뒷면에 새겨졌던 대전지역의 대표적 독립유공자인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의 생애비와 휘호비가 여전히 수정 건립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김용원 선생의 휘호비와 생애비 건립 건에 대해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논의와 검토를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의 손자인 김옥경씨는 "대전시가 세운 할아버지 비문에 엉뚱한 사람이 끼워 넣기 돼 있어 이를 시정할 것을 요구했었다"며 "대전지역 굴지의 건설회사 회장이 관여된 일이라는 이유로 대전시가 9년 가까이 허송세월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대전시가 할아버지 비문을 다시 세울 때까지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이는지 지켜보겠다"고 덧붙였다.


태그:#은평공원, #휘호비, #계룡건설, #독립운동가, #김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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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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