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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평공원 내 세워진 '이돈직 휘호비(왼쪽)와 생애비(오른쪽)'. 건립을 주도한 대전애국지사숭모회는 당초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의 휘호비와 생애비를 세운다며 국고를 지원받아 뒷면에 새기고 앞면에는 이돈직 관련 비를 세웠다. 사진은 2년 전인 2003년 12월 모습.
ⓒ 오마이뉴스 심규상

염홍철 대전시장은 지난달 28일 3.1절을 맞아 생존 애국지사 8명을 포함해 독립운동가 유족들을 위문·격려했다.

이날 염 시장이 애국지사 송석형(86. 서구 도마동. 광복군 활동)씨와 유족 오신복(80. 여. 대덕구 비래동. 애국지사 고 이덕산씨 부인)씨를 찾아 격려하는 자리에는 시 간부공무원 등도 함께 참여했다. 시·구 과장급 이상 간부공무원도 3.1절을 맞아 수일 전부터 생존 애국지사 및 유족을 직접 방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염 시장과 대전시는 행정잘못으로 공원 내에 세워진,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람의 독립운동 행적을 기리는 비문 수정요구에는 애써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대전광역시의 침묵과 방관은 올해로 5년째에 접어든다. 특히 <오마이뉴스>를 비롯 각 언론들은 2003년 말부터 수 차례에 걸쳐 이같은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를 한 바 있다.

미확인 독립운동가 비문 5년째 그대로

김옥경(69. 대전시 중구 문화동)씨는 지난 2000년부터 대전광역시에 대전시 은평공원(서구 월평동)에 세워진 조부인 애국지사 고 김용원 선생의 비문이 사실과 다르다며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 지난해 초 대전시와 서구청이 잘못을 시인하고 철거한 생애비(오른쪽). 그러나 수정된 생애비는 아직까지 세워지지 않고 있으며 휘호비(인쪽)는 여전히 그대로 서있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2000년 대전광역시는 대전애국지사숭모회(회장 이규희)의 요청에 따라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의 휘호비 및 생애비 건립사업으로 국고 950만원을 보조했다.

그러나 대전애국지사숭모회는 비문 앞면에 당초 계획에 없던 계룡건설 명예회장의 조부인 고 이돈직의 생애비문을 '독립운동가'라며 새겨 넣었다. 정작 진짜 독립운동가인 김용원 선생의 생애비문과 휘호비문은 뒷면에 새겨졌다.

게다가 생애비문에는 김용원 선생이 '이돈직'과 함께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기재했다. 또 휘호비문에는 이돈직의 호와 함께 휘호를 새겨넣었다.

문제는 이돈직의 독립운동은 물론 김용원 선생과 이돈직이 함께 독립운동을 벌였는지 여부가 객관적으로 인정되거나 확인된 사실이 없다는 것. 이에 따라 김씨는 대전시에 잘못 기재된 비문 철거와 수정 후 재건립해줄 것을 요구해 왔다.

대전시는 거듭된 민원제기와 언론 보도로 논란이 일자 지난해 초에서야 "관련공무원의 업무소홀로 당초 계획에 없던 '이돈직'이라는 인물의 기록이 각인된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생애비 문안내용을 수정해 건립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건립을 주도했던 이규희 대전애국지사숭모회 회장도 지난해 2월 대전시에 "철거조치하고 재설치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확인각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생애비는 철거된 후 일년이 넘게 다시 세워지지 않고 있다. 또 휘호비는 비 앞면에 이돈직의 호와 휘호가 새겨진 그대로 5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잘못 인정하지만 책임은 민원인에게 있다?

대전시가 이처럼 거듭된 요구에도 문제해결에 나서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대전시 자치행정과 관계자는 "사업을 벌인 대전애국지사숭모회에 수차례에 걸쳐 수정 및 삭제 등 시정을 촉구해 왔으나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응하지 않고 있다"며 "조만간 시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애국지사 강산 김용원 선생은?
대전지역 대표적 항일 독립운동가

김용원 선생(사진. 1892-1934. 호 강산剛山)은 대전 서구 원정동에서 태어나 휘문의숙을 마치고 43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독립운동에 몸바쳤다.

보은 공주에서 독립자금을 모으다가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의 경무국원이 됐다. 귀국 후에는 대동단(大同團)을 조직해 의친왕(義親王)을 상해로 탈출시키려다 실패하기도 했다. 이후 상해와 한국을 드나들며 끊임없이 항일운동을 벌이다 1924년 군자금 모금을 위한 독립 공채를 가지고 귀국하다 체포돼 2년형을 받았다. 그 후 영주 부석사를 거점으로 활동중 충남 논산에서 일본경찰을 죽이고 그 이듬해 체포돼 복역 중 1934년 43세를 일기로 병사했다.
그러나 비영리단체 국고지원법에는 사업계획서와 다른 용도로 보조금을 사용했을 경우 환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허위사실을 기재한 경우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대전시가 역사왜곡을 불러올 위험이 있는 비문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행정처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에 앞서 시는 지난달 <오마이뉴스>를 통해 "비문 수정 및 삭제는 김용원 선생 후손과 사업을 벌인 대전애국지사숭모회가 협의해 할 일"이라는 입장을 밝혀 빈축을 사기도 했다.

애국지사 김용원 선생의 후손인 김씨는 최근 감사원에 낸 2차 진정서를 통해 "국가의 녹을 받는 공무원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을 약속하고도 오히려 민원인에게 책임을 미루고 원망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이어 "대전시가 잘못 세워진 비문의 인물이 전직 국회의원을 지낸 건설회사 명예회장의 조부이기 때문에 문제해결을 꺼리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유족 위문 앞서 제발 비문 수정부터"

김씨는 <오마이뉴스>를 통해서도 "조부인 김용원 선생과 '이돈직'과는 하등 관련이 없다"며 "대전시가 지원한 국고를 사용해 독립운동 사실이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엉뚱한 사람의 비문을 새겨넣었음에도 이를 방치하는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대전시장은 애국지사 유족들을 위문하기 앞서 기록된 비문부터 바로잡아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광복회대전충남연합지부 이규복 사무처장도 "시청에서 독립운동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의 공적비를 세우게 한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잘못이 드러났음에도 시정조치를 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전KBS의 대전충남지역 사회환경 감시프로그램인 <충청패트롤>은 지난 10일 '독립투사의 공적비가 변조된 사연'을 통해 대전애국지사숭모회가 대전시에 제출한 회원명부 200명 중 무작위로 50여명에게 전화확인 결과 대부분 결번이거나 대전애국지사숭모회와 이규희 회장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답변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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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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