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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13회 방송분에 다시 등장한 칠숙과 소화.
 지난 7일, 13회 방송분에 다시 등장한 칠숙과 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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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노와 더불어 주요 행방불명자 중 하나인 칠숙이 드라마 <선덕여왕> 제13부(7일 방송분) 말미에 '브라운관'에 전격 복귀했다. 미실의 명령에 따라 시녀 소화와 공주 덕만(선덕여왕)을 찾아 오랫동안 타국을 방랑했던 칠숙이 은밀히 소화를 데리고 서라벌로 돌아온 것이다. 주요 행방불명자가 또 다른 행방불명자를 데리고 나타난 셈이다. 

중국 사신단과 상인단의 틈에 끼여 귀국한 그는 미실에게 은밀히 전달한 편지에서 "소화와 덕만은 이미 죽었다"고 허위 보고를 하면서, 그 증거물로 덕만이 읽던 라틴어 역사책과 소화가 차고 있던 목제 신분증을 첨부했다. 그리고는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다"며 주군 미실에게 하직 인사를 올렸다. '생뚱맞은' 하직 인사에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미실은 화랑들에게 칠숙을 찾아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저승사자 같은 검은 복장을 하고선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 소화와 덕만을 잡아 미실 앞에 대령할 것만 같았던 칠숙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심경의 변화를 보였고, 이에 따라 이제 칠숙은 '쫓는 자'가 아니라 '쫓기는 자'로 처지가 뒤바뀌고 말았다.  

드라마 <선덕여왕> 초반부에서 덕만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추격자 역할을 맡은 칠숙. 실제 역사 속에서 그는 어떤 행적을 남겼을까? 그는 정말로 실제 역사에서도 덕만공주를 그렇게 위협하는 존재였을까?

실제 역사에서 '역모' 꾀하다 처형당한 칠숙

칠숙은 역사 기록에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삼국사기>에 딱 한 번 등장한다. 위작 논란이 있는 필사본 <화랑세기>에도 그는 단 1차례 밖에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딱 한 번밖에 나오지 않지만, 그는 '짧고 굵게' 역사에 등장한 편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역모사건의 주모자로 역사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권4 '진평왕 본기' 진평왕 53년(631) 기사에서는 이렇게 증언한다. 

"여름 5월(음력)에 이찬 칠숙이 아찬 석품과 함께 반역을 꾀했지만, 진평왕이 이를 알아차리고(王覺之) 칠숙을 잡아 동시(東市)에서 목을 베고 아울러 구족을 평정했다. 아찬 석품은 도망하여 백제 국경까지 갔다가 처자가 보고 싶어져서… 몰래 집에 왔다가 붙잡혀 사형에 처해졌다."

이 기사에서는, 선덕여왕 즉위 1년 전인 진평왕 53년에 칠숙이 석품과 함께 반역을 꾀했다가 체포되어 둘 다 사형을 당했다고 알려주고 있다. 이른바 '칠숙의 난'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이다. 칠숙에 관한 한 그리고 칠숙의 난에 관한 한, 위의 내용이 가장 상세하면서도 유일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화랑세기>에서는 칠숙의 난이 있었다고만 간략하게 알려줄 뿐이다.   

여기서 사건 발생시점인 진평왕 53년은 덕만공주의 후계체제가 사실상 거의 굳어진 뒤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화랑세기> 제17세 풍월주 염장공 기사에서는 칠숙의 난 당시에 염장공이란 인물이 덕만공주에게 은밀히 가담했고 이를 계기로 권력의 실세가 될 수 있었다고 알려주고 있다. 이는 칠숙의 난 당시에 이미 덕만공주가 사건의 한 축이 될 만큼 실권을 장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진평왕 53년'이란 표현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 시점에 진평왕은 이미 연로한 상태였기 때문에 차기 국왕인 덕만공주가 칠숙의 난을 진압하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칠숙이 반란 도모했다고 단정지을 수 없는 이유

역사에선 칠숙과 역모를 도모한 것으로 나오는 석품(오른쪽).
 역사에선 칠숙과 역모를 도모한 것으로 나오는 석품(오른쪽).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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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의 즉위 직전에 터진 이 역모사건은, 누가 보더라도 덕만공주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음모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칠숙의 난을 다루는 역사학자들의 상당수는 '칠숙이 실제로 반란을 도모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이 사건의 발생원인을 규명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위의 <삼국사기> 표현을 좀 더 곰곰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 기록만 갖고는 칠숙이 정말로 반란을 도모했을 것이라고 명확하게 단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칠숙이 반란을 꾀했다", "왕이 이를 알아차렸다"(王覺之), "왕이 칠숙을 잡아 목을 베었다"라고 한 <삼국사기>의 표현을 찬찬히 살펴보면, 칠숙의 반란이 실제로 가시화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저 음모나 예비 단계에서 그친 것이다. 칠숙이 실제로 군대를 일으켜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면, 왕이 그의 역모를 '알아차리고'(覺) 사전에 칠숙의 목을 베었다고 기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행 형법에 비유하자면, 내란의 4단계인 음모-예비-미수-기수 중에서 칠숙의 반란은 음모·예비 수준에 그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형법상 미수란 범죄행위에 착수하는 것을 말하고, 기수란 범죄행위를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칠숙의 경우에는, 반란의 착수 이전 단계에서 수사당국에게 붙들리고 만 것이다.       

'반란행위에 착수하지는 않았더라도 칠숙이 정말로 그런 반란을 도모했을 수도 있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도 칠숙이 정말로 역모를 꾀했다가 사전에 발각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최종적인 판단을 유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조선시대의 역모사건이나 군부독재시절의 시국사건에서 잘 나타난 것처럼, 예비·음모 단계에서 발각된 정치범죄인 경우에는 집권층이 의도적으로 사건을 조작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역모사건 혹은 시국사건의 조작이 정적 제거의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되어왔음을 잘 알고 있다.

'칠숙의 난', 집권층의 의도적인 조작?

위의 <삼국사기> 기사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역모사건의 두 주범인 칠숙과 석품이 너무나도 허망하게 죽임을 당한 것에서 느낄 수 있듯이, 집권을 준비하는 덕만공주 측이 의도적으로 사건을 조작했을 가능성을 유보해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국경까지 도망간 석품이 갑자기 처자가 그리워서 몰래 서라벌로 돌아왔다가 붙잡혀 처형을 당했다는 기록을 보면, 이들이 정말로 반역을 시도할 의사가 있는 인물들이었는지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한국 고대사 연구자도 한 논문에서 이 사건이 덕만공주 측의 조작사건이었을 가능성을 유보해두는 태도를 보였다.

'칠숙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기록이 명확하게 남아 있지 않고 다만 '칠숙이 반란을 꾀했고 그것이 사전에 발각되었다'는 기록만 명확하게 남아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칠숙이란 인물이 덕만공주의 즉위 직전에 실제로 반란을 도모했을 것이라고 성급하게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칠숙이 실제로 반란을 도모했을 가능성(A 경우)과 덕만공주 측이 사건을 조작했을 가능성(B 경우)을 모두 다 유보해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두 가지 가능성 중에서 A 경우가 맞는다면, 평소에 칠숙의 동태에 주목하던 덕만공주 측이 칠숙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자 사전에 전격적으로 칠숙을 잡아들였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와 달리 B 경우가 맞는다면, 진평왕이 매우 연로하여 덕만공주의 즉위가 임박한 시점에서 덕만공주 측이 화근을 미리 제거하기 위해 칠숙의 난을 조작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다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어느 쪽이 진실이든 간에 우리가 확실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그것은 덕만공주 측의 입장에서 볼 때 칠숙이란 인물이 평소 상당히 부담스러운 존재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덕만공주의 왕위계승에 불만을 품는 인물, '포스트 진평왕 시대'에 덕만공주의 왕권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칠숙이 '선정'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덕만공주 측의 입장에서 볼 때에 칠숙이 평소에 상당히 '까칠한 인물'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칠숙이 덕만공주 출생 직후부터 공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 존재로 묘사되었지만, 역사기록을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실제의 칠숙은 덕만공주의 즉위 직전에 발생한 대형 시국사건과 관련하여 역사에 딱 한 번 등장했다.

그가 정말로 반란을 꾀했든지 아니면 덕만공주 측이 역모사건을 조작했든지 간에, 우리는 칠숙이 평소에 덕만공주의 왕위계승에 불만을 피력하여 덕만공주 측의 경계대상이 되었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앞으로 칠숙의 그런 실제 모습이 어떻게 묘사될 것인지에 관심을 두고 드라마 <선덕여왕>의 이후 방영분을 시청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태그:#선덕여왕, #칠숙, #덕만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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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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