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놓고 우리사회 곳곳에서 '성찰'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무엇이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이 과정에서 정당과 시민사회, 언론들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왜 국민들은 노 전 대통령 서거에 이토록 슬퍼하는지, 우리에게 던져진 민주주의의 과제는 무엇인지 등등 '성찰'의 과제는 크고도 무겁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에도 '우리는 잘못한 게 없다', '빨리 잊고 화합하자'며 두꺼운 얼굴을 드러낸 집단들이 있다. 이명박 정권과 검찰, 그리고 조중동이다.
MB정권․검찰․조중동, '후안무치 동맹'
1일 이명박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첫 라디오연설을 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 'MB정권 책임론'이 거세게 일고, 국정운영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대통령 연설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다.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서는 "이제 우리 모두 슬픔을 딛고 떠나간 분의 뜻을 잘 받들어 나갔으면 한다", "슬픈 마음을 추스르고 밝은 미래를 향해 새롭게 출발하는 한 주가 되었으면 한다"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국민들의 분노나 비판 여론 따위는 안중에도 없음을 거듭 드러낸 것이다.
그러자 약속이나 한 듯 검찰은 "우리의 수사는 정당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날 대검은 임채진 검찰총장 주재로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노 전 대통령 서거는 안타깝고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수사의 당위성과 정당성이 손상돼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또 "이번 수사 배경과 경과, 신병처리에 대해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아 검찰 내외에서 사실관계를 오인하고 검찰을 비판하는 경우가 많아 적절한 방법으로 진상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마디로 검찰이 '홍보부족'으로 '오해'를 받고 있다는 얘기다.
조중동도 빠지지 않았다. 조중동은 이명박 정부를 향해서는 '엉뚱한 쇄신책', '무의미한 쇄신책'을 내놓는 한편, 야당을 향해서는 '정치적 악용말라', '국회로 돌아가 일을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민주당에게는 '노무현과 거리두기를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 곁불을 쬐겠다는 것이냐'고 비아냥거렸다. 또 "검찰 수사는 정당했다"며 검찰에 힘을 실어주고 나섰으며, 틈틈이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의미를 깎아내리려고 시도했다. 이번에도 동아일보는 막무가내였고, 조선일보는 교활했다.
'부관참시' 떠올리게 만든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는 2일 사설에서 검찰이 "노 전 대통령 수사 내용을 발표해야 한다"는 기막힌 주장을 폈다. <노 전 대통령 수사 결과, 국민과 역사 앞에 발표해야>라는 사설에서 동아일보는 "형사처벌 대상자가 없어졌으므로 사건을 종결 처리하는 것은 법적으로 당연한 수순"이지만, "그동안의 수사에서 드러난 진상을 묻어버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으나 "검찰이 수집한 인적 물적 증거를 공개하면 국민이 진실 여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변했다.
우리는 동아일보의 사설에 '부관참시'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에도 검찰은 피의혐의를 조중동에 흘리고 조중동은 확인되지도 않은 주장을 대서특필해 노 전 대통령을 여론재판 하고 모욕했다. 그랬던 동아일보가 일말의 반성은커녕 노 전 대통령이 반박조차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검찰의 일방적 주장을 발표하라고 부추기고 있다. 말없는 고인에게 여론재판으로 '부패'의 딱지를 붙이고 이를 통해 검찰과 이 정권의 위기를 돌파하라는 것 아닌가? 참으로 후안무치하고 끔찍한 신문이다.
한편, 앞서 1일에도 동아일보는 <추모 결불 쬐는 민주당, 바짝 엎드린 정부 여당>이라는 사설을 통해 '검찰 책임론', 'MB정권 책임론'을 무력화하려고 안간힘 썼다. 동아일보는 민주당이 '노무현 거리두기'를 하다 이제와 대통령 사과, 검찰총장 파면 운운하는 것이 '노무현 곁불쬐기'라며 비아냥댔다. 또 정부와 한나라당에게는 '정권책임론'에 "바짝 엎드려 여론의 눈치만 살핀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궁지에 몰린 이명박 정권을 향해 또 한번 '밀어붙이라'고 주문한 것이다.
조선일보, "민주당 이제와서 왜 이러냐" 비아냥
조선일보는 정권과 검찰의 책임을 묻는 민주당과 진보진영 공격에 초점을 맞췄다.
2일 5면에서 조선일보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민주당 당원 게시판에는 얼마 전까지 노 전 대통령 및 친노(親盧) 세력과의 결별을 주장하다 절대적 칭송 모드로 표변(豹變)한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친노와 비노(非盧) 양쪽 모두로부터 올라오고 있다"고 전했다.
25면 칼럼(박정훈 사회정책부장)에서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전과 이후 민주당이 달라졌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또 진보진영과 진보적인 매체들도 '박연차 게이트'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며 "그랬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정치적 타살' 운운하니 어색하기만 하다"고 비꼬았다.
사설에서도 조선일보는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표출된 국민의 대(對)정부 불만을 정략적 디딤돌로 삼으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는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몇 백만 달러를 받았다'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기정사실로 몰면서 노 전 대통령과 민주당을 싸잡아 공격하기도 했다. 사설은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몇백만달러를 받은 사실을 과거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몇천억원씩 받았던 것과 비교하여 생계형(生計型) 부패라고 옹호한다면 민주당이 무슨 가치관을 들고 이 나라를 책임지겠다고 나설 수 있겠는가"라고 비난했다.
정부 여당에 대해서는 "누가 뭘 잘못했기에 사과하고 처벌하라는 것이냐는 반문만 곱씹을 것이 아니라, 집권 후 1년여 만에 왜 민심이 이토록 돌아섰는지 스스로 살펴보는 데서 정국 해법의 단초를 찾아야 한다"는 정도의 주문을 내놓았을 뿐이다.
중앙일보, "검찰수사는 정당했다" 강변
'서거를 정치적으로 악용말라'며 이른바 '화합론'을 외쳐온 중앙일보는 '검찰 수사는 정당했다'며 검찰에 힘을 실어줬다. '국회 개회를 막아서는 안된다'며 언론악법 처리에 안달 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일 사설 <국회는 북한 도발이 안중에도 없는가>에서 중앙일보는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현 정권의 정치보복이었다고 규정하면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주장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과 가족에 대한 수사는 박연차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불법 혐의에 대한 사법권의 정당한 발동"이었다면서 "지금의 사과 요구는 사태의 본질과는 달리 충격 받은 민심을 이용해 정권을 압박하려는 정치적 공세로 비춰진다"고 민주당을 몰아세웠다.
중앙일보는 앞서 1일 사설에서도 민주당을 향해 '혼란을 부추기지 말라'며 "노 전 대통령과 거리두기를 하던 민주당이 이제와 다른 소리를 한다고 비꼬았다.
조선일보도 인정한 '박연차 리스트' 수사의 "정치적 성격"
수많은 국민들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슬퍼하며 '미안하다'고 말한다. 사람에 따라 각자의 함의가 있겠지만,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면 이 '미안하다'는 말에는 수구기득권 세력으로부터 '비주류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회한,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하는 상황 앞에 주권자로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자각이 읽힌다. 아울러 '비주류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세력이 누구인지,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세력이 누구인지 똑똑히 알고 있다는 메시지로 들린다.
조중동은 '검찰 책임론', 'MB정권 책임론'을 부정하고 다시 한 번 여론을 호도해보겠다고 안간힘이지만 국민들은 더 이상 속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은 '검찰 책임론', 'MB정권 책임론'과 더불어 '조중동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서거하기까지 조중동은 엄청난 양의 보도로 검찰의 '흘리기 수사'에 협조했고, 입에 담기 어려운 거칠고 선정적인 언어로 고인을 모욕했다. 국민들이 그토록 충격적인 기사들을 어찌 쉽게 잊겠는가?
게다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정치보복', '표적수사'였음은 수구족벌신문도 숨기지 않았던 사실이다. 일례로 지난 3월 25일 조선일보는 '박연차 게이트' 수사의 시발점이 된 '국세청 보고서'에 대해 보도하면서, 정치적 배경을 다뤘다. 조선일보는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이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 세무조사 결과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보(直報)했고, 이를 보고받은 이 대통령은 "국세청이 역시 대단하다"며 만족해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또 "일각에선 국세청이 박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 자체가 정치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당시는 퇴임한 지 얼마되지 않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여전히 새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정치 재개까지 모색한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었고, 현 정권 핵심부는 노 전 대통령측의 이런 움직임에 우려와 불쾌함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은 2008년 초부터 전 정권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소재를 추적하면서 세무조사 대상을 선정했고, 그 가운데 박연차 회장의 기업에 가장 주력했다는 것이 국세청 내의 정설"이라고 썼다.
3월 31일에도 조선일보는 "'박연차 리스트'의 수사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검찰 간에 '핫 라인'이 가동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다"면서 "중요한 고비에서는 검찰 자체 판단 외에 청와대의 뜻도 반영됐을 것", "정권 핵심부에서 나오는 '사인'이 검찰에 전달되는 사적(私的) 경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여권 핵심인사의 발언을 전했다.
조선일보가 이런 기사를 쓴 의도는 알 수 없다. '정보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일수도 있고, '죽은 권력'에 대한 '표적수사' 논란 따위는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박연차 리스트' 수사에 이명박 정권의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었고, 수사 과정에서도 개입되고 있었음을 사실상 드러냈다는 점이다.
이래놓고 국민들에게 '화합'을 말할 수 있겠는가? 검찰의 '흘리기 수사', '표적수사'를 진상규명해야 한다는 주장을 정치공세라고 몰아붙일 수 있겠는가?
민주당을 향한 이른바 '노무현 곁불쬐기' 비아냥도 무의미하다. 민주당에도 여러 계파가 있다. '노무현 거리두기'를 했던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조중동이 민주당을 싸잡아 '노무현과 거리둘 때는 언제고 지금와서 딴 소리냐'고 운운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조중동의 비난은 '과거에 잘못이 있으니 앞으로도 숨죽이고 살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국민들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이명박 정권과 검찰, 조중동의 책임을 묻고 있다. 민주당이 국민의 열망을 외면하고 조중동이 무서워 진상규명 요구를 접는다면 민주당 또한 심판 받게 될 것이다.
조중동은 '노무현 죽이기'에 혈안이 되었고,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서거했다. 그러나 조중동이 열망했던 '노무현 죽이기'는 실패했다. 국민들은 '노무현의 정신'을 기억하겠다며 나섰고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세력들을 심판하겠다고 한다.
사죄할 사람이 사죄하고 책임질 사람이 책임지지 않으면 용서도, 화합도 있을 수 없다. 조중동이 후안무치한 검찰을 감싸고 이명박 정권을 엄호하려들면 들수록 국민의 분노는 커지고 정권과 검찰, 조중동에 대한 심판은 가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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