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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의 진화론과 개신교 지적설계론 대립

지적설계론의 토대를 닦은 미국 리하이 대학 생화학 교수 마이클 베히의 <다윈의 블랙박스> 영문판(The Free Press, 1996) 표지
▲ 다윈의 블랙박스 지적설계론의 토대를 닦은 미국 리하이 대학 생화학 교수 마이클 베히의 <다윈의 블랙박스> 영문판(The Free Press, 1996) 표지
ⓒ Free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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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다윈 '탄생 200주년이면서 그의 대표작 <종의기원> 출간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진화론과 관련한 역사적인 해를 맞이하면서 신문·방송은 특집을 마련하고 관련 책도 수십종이 쏟아져 나왔다.

다윈의 진화론은 중·고등과정을 통해 일반인들의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으나 종교계 일부에서는 신의 섭리를 부정한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대표적으로 진화론을 반대하는 측은 개신교의 근본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신앙아래 각각 '젊은 지구 창조론', '오랜 지구 창조론'과 지적 설계론 등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젊은 지구 창조론'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쓰인 대로 신이 '6일만에 세계를 창조했다는 이론(?)이다.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은 아담·노아·아브라함·모세·다윗·예수 등으로 이어지는 인물 연대기를 토대로 지구연령은 6천년~1만년이라고 주장한다.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은 고생대부터 신생대 제4기까지의 모든 지층이 노아의 홍수 기간 동안 이루어졌다는 홍수지질학을 신봉하고 있으며,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지질역사 측정법인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개신교 신자들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입장인 셈이다. 오랜지구 창조론은 창세기 1장의 6일을 매우 길게 해석해 지구의 나이를 과학적 증거에 의거해 지구의 나이가 30~50억년, 우주의 나이는 100~200억년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나름 합리적인 것 같지만 여전히 창조론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창조론이 정통과학계의 조롱거리가 되자 새롭게 등장한 것이 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 Theory)이다. 이 이론은 미국 버클리 대학 법학교수인 필립 존슨과 리하이 대학의 생화학 교수인 마이클 베히, 수학자이자 신학자인 윌리암 뎀스키를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졌다. 특히 베히 교수가 1996년 발간한 ,<다윈의 블랙박스(Darwin's Black Box)>는 미국 내에서만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수십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이들은 지적 설계론이야말로 다윈의 진화론을 대체할 수 있는 과학적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지적설계론의 핵심은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이다.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란 어떤 구조(형태)를 이루는 각(모든) 부분들이 처음부터 정해진 위치에서 완전하게 작용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야 그 구조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자주 예로 드는 것이 쥐덫이다. 쥐덫의 구조는 ▲나무로 된 받침판 ▲쥐를 잡는  금속 해머 ▲판자와 해머를 눌러주는 스프링 ▲작은 압력이라도 풀리는 걸쇠 ▲걸쇠에 연결되어 해머를 뒤로 젖힌 상태로 지탱해주는 금속 막대로 구성되어 있다.

지적설계론자들은 쥐덫의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쥐덫으로서 기능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생물이 애초에 어떤 존재에 의해 자연조건에 맞게 설계되어 창조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생화학자였던 베히는 또 박테리아의 편모의 예를 들어 진화론을 공격한다.

편모는 박테리아가 헤엄을 치기 위해 달려 있는 기관으로 프로펠러와 구동축, 그리고 갈고리 등 서로 다른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다. 베히는 쥐덫과 마찬가지로 만약 이 중에서 작은 부분이라도 제거되면 편모는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것처럼 편모가 다윈이 주장하는 자연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의도적인 지적 설계과정이 작동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적 설계론자들은 결론적으로 박테리아의 편모도 이 정도인데 그보다 수십 배나 복잡한 높은 구조를 가진 인간은 어떠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생물학적 복잡성은 도저히 이전 단계로 환원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다호 대학의 생화학자 스콧 미닉은 박테리아 편모 내에서 50개의 단백질 유전자 중 40개를 떼어놓았을 때 나머지 10개가 완벽하게 자기 기능을 가졌다면서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 이론을 비판했다. 스콧은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 이론대로라면 떼어진 10개는 어떤 기능도 갖지 않아야 함에도 자기기능을 온전히 수행했을 뿐 아니라 나머지 40개도 모두 고유기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많은 생물학자들은 세포 수준의 복잡성과 그것의 진화에 대해 그동안 많은 연구를 해 왔으며 그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들을 계속 발전시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지적설계론자들이 과학발달의 전체적 국면은 무시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학논쟁의 일부를 마치 진화론 전체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미국 재판부, 지적설계론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라고 판결

진화론적 관점에서 지적설계론을 비판하고 있는 동덕여대 장대익 교수(과학철학)의 <다윈의 식탁>(김영사 2008)
▲ 다윈의 식탁 진화론적 관점에서 지적설계론을 비판하고 있는 동덕여대 장대익 교수(과학철학)의 <다윈의 식탁>(김영사 2008)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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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덕여대 장대익 교수(과학철학)는 <다윈의 식탁>이라는 책을 통해 지적설계론자들이 창조론자들과 유사하게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에 마치 진짜 논쟁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장 교수는 지적설계론자들은 공개적으로 진화론을 오해하거나 오용해 놓고는 생물학자들이 마지못해 몇 마디 대꾸하면 마치 논쟁이 있는 것처럼 대답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진화론 내부의 진짜 논쟁들을 부풀려 마치 진화론이 좌초 직전에 있는 것처럼 꾸며대고 마치 지적설계론만이 올바른 이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또 지적설계 운동에는 과학이 없으며 논문 심사 시스템도 없고 혹시라도 학회와 학술지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들 내부에서만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연구 프로그램과 성과물이 있을 리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리고 지적설계론의 고객들은 과학 자체를 부정하는 종교인이거나 과학의 내용과 논리에 익숙하지 않는 대중들이라는 것이다.

지적설계론과 진화론은 지난 200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작은 도시인 도버에서 한판 대결을 벌였다. 이 재판은 1920년대 진화론이 창조론과 대결을 벌인 이른바 '원숭이 재판'에 비견될 만큼 미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 재판의 주재한 사람은 존 존스 판사로 창조론을 옹호하는 부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인물이었다. 재판은 진화론을 지지하는 7명의 과학자들과 지적설계론을 옹호하는 8명의 지적설계론 학자들 간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부시가 임명한 존스 판사는 2005년 12월 지적설계론자들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지적설계론은 과학이 아니다. ▲지적설계론은 종교적 의도로 만들어졌다. ▲지적설계론을 수업시간에 가르치는 것은 위헌이다 ▲진화론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과학적 가설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종교에 바탕을 둔 검증 불가능한 가설을 과학시간에 가르치거나 검증된 가설을 왜곡해서도 안 된다. ▲지적설계론은 창조론의 재탕이지 과학적 가설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천주교는 수용, 불교는 무신론적 입장으로 특별한 의견없어

이처럼 진화론 문제를 두고 개신교가 시끌벅적하게 대응하는 것에 비하면 천주교나 불교는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천주교는 이미 우주창조와 생물의 진화에 신적 섭리가 개입했다는 것을 전제로 진화론(유신론적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천주교도 처음에는 진화론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교황 비오 12세는 <인간탄생>이라는 교서에서 진화론은 '몰염치하고 분별력이 없으며 자연과학계에서도 증명이 되지 않은데다 공산주의자들이 즐겁게 이를 수용하는 이론'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교황청 과학원의 설득에 따라 진화론과 인간이 유인원에서 진화했는지 여부를 신중히 조사하도록 명령했다.

마침내 1996년 요한 바오로2세는 '계시와 진화'라는 메시지를 통해 "종교교육과 진화론 사이에는 아무런 대립도 없고 진화론은 가설 이상의 중요한 학설"이며 "이미 있던 존재(유인원)에 하느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아담이 탄생했으며, 진화론은 지동설처럼 언젠가는 정설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이 같은 천주교의 유신론적 진화론은 테이야르 디 샤르뎅(1881~1955)의 이론에 힘입은 바가 크다. 샤르뎅은 예수회 신부로 북경원인 발굴에도 참여하고 고고학 자료를 얻기 위해 몽골, 자바, 북인도 등을 여행했다. 그는 태초에 원물질에서 단세포에서 식물, 동물, 인간이 되었다는 정방향 진화를 통해 종국적으로 온 세계가 하나로 통일되는 마지막 지점(오메가포인트)에 도달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샤르뎅은 물질적 진화의 마지막 단계인 오메가포인트에 도달하면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와 만나면서 신의 구원사역이 완성을 이루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사상은 <인간현상(1955)>이라는 책을 통해 잘 나타나있다. <인간현상>은 한때 로마 교황청의 금서목록에 오르고 샤르뎅 자신도 교회에서 축출되었으나 그가 속한 예수회의 적극적인 변호로 유신론적 진화론은 천주교(가톨릭)의 정식교리로 채택되었다.

불교는 진화론에 대해 특별한 언급이 없다. 단지 창조론이 없다는 점에서는 진화론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명쾌한 것은 아니다. 붓다시대 인도사회는 브라만이라는 절대적 존재(신)가 모든 만물의 근원일 뿐 아니라 각 개별존재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는 브라만교가 유행하고 있었다.

붓다는 이에 대해 변화하는 세계 뒤에 무언가를 창조하고 불변하는 영원한 실재는 없다고 보았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만 연기에 의해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거짓 실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존재의 근원이나 원인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현재 주어진 조건에서 어떻게 인간의 해방과 행복이 가능한가라는 실천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불교가 창조론을 부정한다고 해서 확실한 진화론적 교설이나 이론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불교 자체가 육도윤회(천인, 인간, 축생, 아수라, 아귀, 지옥)의 고(苦)로부터 해탈이라는 순환론적 생명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계통 발생적 발달과 유전에 근거한 진화론과는 차이가 있다.

일부에서는 인간의 의지행위가 업(業)으로 전이된다는 관점에서 유전자적 특성을 갖는다고 설명하지만 이 역시 종교적 교리이지 과학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런 점에서 불교는 창조론이나 진화론 모두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진화론에 대한 각 종교의 차이는 신자들의 진화론 수용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 지난 10일 EBS가 진화론 특집을 방영하면서 코리아리서치(전국 성인남녀 500명)에 의뢰한 결과에 따르면 천주교신자들이 83%로 진화론을 믿는 정도가 높았다. 불교신자의 경우는 68%로 평균인 62.2%를 상회했고 개신교는 39.6%에 불과했다. 이외에 종교가 없는 사람은 69.7%였다.

또 EBS는 인구의 99%가 무슬림인 터키의 경우는 2006년 조사결과 인구의 75%가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고 밝혔다. (2006년 자료). 터키가 이슬람국가 중에서 가장 세속적이고 근대적인 교육체계를 도입한 것을 감안하면 이슬람근본주의가 강한 국가들은 더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함석헌 선생, 유신론과 진화론, 사회정치사상을 통합한 역사철학 수립
 
종교인이지만 진화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과학과 종교을 통합해 새로운 역사철학을 전개했던 함석헌 선생
▲ 함석헌 선생 종교인이지만 진화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과학과 종교을 통합해 새로운 역사철학을 전개했던 함석헌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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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지금도 진화론과 종교에 관한 대화와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전혀 접점이 찾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개신교 보수주의와 진화론간의 간극은 너무 크다. 근본주의자들은 창조론 이외에 어떤 이론도 거부하고 있고 리차드 도킨스같은 이는 진화론을 무신론의 근거로 삼고 종교를 공격하고 있다. 그렇지만 진화론이 종교 인구를 감소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진화론은 종교를 풍성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함석헌 선생은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와 테이야르 샤르뎅의 '유신론적 진화사상'을 발전시켰다. 그는 진화라는 것은 생명의 질적 발전이며, 의식의 상승, 정신적 진보 과정으로 이해하고 창조란 사랑의 욕구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독특한 입장을 전개했다.

함석헌은 진화라는 사실보다는 변화의 의미에 주목하고 진화의 동력은 '자유'와 '사랑'이며 인류역사는 고난의 과정으로 그 고난에는 '뜻'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생명은 고난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며 그 고난 속에서 자유가 꽃피고 그 중심에는 사회진화론이 말하는 영웅이나 지도자들이 아닌 씨알(민중)이 있다고 강조한다.

함석헌의 사상은 유신론과 진화론을 수용하면서 정치사상적 내용을 포괄했다는 점에서 독특한 위상을 가지고 있으며 과학과 종교가 자기방어 수준을 넘어 능동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근본주의가 함석헌의 사상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성경은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신의 말씀이기 때문에 창세기 내용은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근본주의자들 중에는 지구평면협회(Flat Earth Society, theflatearthsociety.org)를 조직해 지구가 구체가 아니라 평면체라고 하고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기독교인이면서 천문학자인 연세대 이영욱 교수는 한 교회강좌에서 신의 창조방법은 현대과학이 발견한 것과 같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고상하고 다른 차원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자신의 세계관을 통해 성경을 인간의 상상 안에서 제한해 해석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성서는 과학적 과정과 과학적 언어로 기술할 목적으로 씌여진 책이 아니기 때문에 신이 우주를 어떻게 창조했는지 아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히려 신이 왜 세상을 창조했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진화론은 개신교 보수주의자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신의 자리를 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섭리를 더 높은 차원에서 이해하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 우주와 생명의 기원이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앞으로도 진화론과 종교는 상호보완적 관계로 공존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가치를 한층 높여줄 수 있을 것이다.


태그:#다윈, #진화론, #창조론, #지적설계론,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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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함석헌 선생을 기리는 씨알재단에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씨알정신을 선양하고 시민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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