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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시티에서는 조그만 재단에  해골 모양의 사신 상을 올려놓고 이를 숭배한다.
▲ 멕시코 사신 숭배상 멕시코 시티에서는 조그만 재단에 해골 모양의 사신 상을 올려놓고 이를 숭배한다.
ⓒ 박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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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멕시코는 사실상 범죄와의 전쟁 중이다. 현 칼데론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에 맞대응하여 멕시코 마약 카르텔은 아예 공개적으로 멕시코 경찰과 시민들을 살해하고 있다.

이런 살풍경한 상황과 달리 일요일 아침 멕시코 시티에서 지하철을 타면 가족단위로 삼삼오오 가톨릭 성모상을  들고 가는 듯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행색은 다소 남루하나 성상을 소중히 껴안고 가는 모습이 깊은 종교심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막상 그 성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그 성모상의 얼굴이 막달라 마리아의 얼굴이 아니라 해골이며 한손에 낫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요새 멕시코에서 유행하는  멕시코 미국 전통 사도 가톨릭 성 교회의 죽음의 여천사를 숭배하는 교도들인 것이다.

이른바 산타 무에르테(성스러운 죽음) 교파가 멕시코 일반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멕시코의 유명한 인질 납치범, 특히 인질 가족에게 귀를 잘라 보냈던  아리스멘디의 집을 급습 했을 때 그의 집에서 죽음의 여천사상이 발견되면서부터이다.

죽음의 여천사 숭배는 이미 1960년대 또는 그 이전부터 마약 밀매 조직 및 기타 범죄자, 창녀, 빈민층 등에서 알게 모르게 존재해왔다. 그러나 최근에 그 세가 늘어 멕시코시티 근교에 높이 20m짜리 성상을 세우고 시내에 자신들의 대교구 성당을 세울 정도로 규모가 늘었다.

신문마다 통계에 차이가 있지만, 전국적으로 최소 300곳 이상의 성소와 이백오십만 이상의 신도가 있으며, 주목할 만 것은 마약밀매조직의 은밀스런 종교로만 알려진 이 신앙이 공개적으로 일반시민들, 주로 도시서민들 사이에 급속히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멕시코 학자 엘사 말비도 교수는 죽음의 신 숭배 신앙의 증가를 미국의 콜롬비아 마약카르텔 압박에 따른 멕시코 마약조직의 급성장 및 세계화에 따른 멕시코 빈부 차의 급격화 등으로 이유를 꼽는다.

또, 말비도 교수는 중세에 유럽에 페스트가 성행했을 때도 사신 숭배가 있었고 우리 6·25 사변을 언급하면서 당시 우리나라에도 사신 숭배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사신을 숭배했다는 주장은 다소 황당하지만 - 아마 우리 백골부대 자료사진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 인류학자로서 인간이 죽음에 직면하는 급박한 상황에서는 역으로 죽음을 숭배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멕시코는 우리와 달리 아직까지도 사회주의자들이 건재한 사회다. 과거의 치아파스 주 반군사태나 비교적 최근의 오아하까 주 교사들의 대대적인 시위들은 사회주의 운동과 연관이 있다.

저울은 거대한 낫외에도 사신의 중요한 성물중의 하나이다.
▲ 멕시코 거리의 사신 숭배상 저울은 거대한 낫외에도 사신의 중요한 성물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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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95년 NAFTA협정 이후 2000년대의 비센떼 폭스 정권, 현재의 깔데론 정권에 이르기까지 멕시코는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견지하고 있고 이의 결과로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누적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우리나라에서 미국과 FTA협정을 맺는 문제에 대해 갑론을박하면서 일부 언론에서 멕시코를 미국과의 자유무역 협정의 실패사례로써 보도하자 당시 한국 주재 멕시코 대사님이 멕시코의 빈부격차는 자유무역 협정으로 인해 파생한 것이 아니라 스페인인들이 멕시코를 정복했던 식민 시절부터 존재했던 것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반론은 수사학적인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자유무역 협정이 멕시코 빈부격차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지라도 식민지시대부터 존재해 왔던 빈부 격차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가장 시급한 당면 문제는 살인과 유괴로 대변되는 강력 범죄이고 그 다음이 빈부격차의 문제이다. 그러나 사실 멕시코에서 이 두 문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멕시코에서 사신 숭배가 급격히 퍼지자 2003년에 한 소설가가 동명소설을 펴냈다.

그 소설에는 멕시코에서 전국적인 규모로 정치가, 경찰, 기업가, 마약 조직들이 사신숭배를 구심점으로 연계되어 있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에 대해 사신 숭배 교단이나 학자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지만, 실제로 일부 마약조직, 경찰, 정치가, 기업가들이   서로 연계를 맺고 있고, 경찰들 중에는 사신 숭배를 하는 경찰들이 있기 때문에 소설가로서 그런 상상을 펴는 것은 부당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멕시코 역대  정권이 치안 확립을 제일 과제로 내세웠음에도 번번이 실패한 것은 이러한 부패의 연결 고리 때문이 아니다. 당장 하루 천 원을 벌지 못해 자신이 굶거나 가족을 굶겨야 하는 절대 빈곤과 그 가난한 거리에서 차로 1시간을 채 못가면 나타나는 대저택, 번화한 거리와의 극과극의 대조가 보여주는 상대적 박탈감이 가톨릭에 근간을 둔 빈민들의 도덕성을 무너뜨리고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과거 멕시코의 좌파 지식인들은 이런 빈민들에게 사회주의라는 해결책을 제시했고 이에 대항해 기존의 가톨릭은 영적인 가치를 내세워 빈민들의 마음을 붙잡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등장 후 멕시코 좌파 지식인들이 제시하는 사회주의는 일반 대중에게 호소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사신상은 숭배 교단의 교회외에도 가정집이나 길거리 요소 요소에 다양한 모습으로 모셔져 있다.
▲ 버스 정류장 근처의 사신 숭배상 사신상은 숭배 교단의 교회외에도 가정집이나 길거리 요소 요소에 다양한 모습으로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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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 러시아도 가 보았다는 멕시코시티 최대 빈민가의 한 영세 세탁업자는 필자에게 "러시아도 틀렸고 중국도 틀렸어. 너희가(한국) 옳아" 라고 푸념한다. 이제 도시 빈민들에게 이념논쟁은 무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에 실시되었던 멕시코 석유공사(PEMEX)를 민영화하느냐 마느냐를 묻는 여론조사에서도 이들의 반응은 냉담 했다.

단돈 몇 천 원 때문에 밤길에 자신들의 이웃을 털어야 하고 재래시장에서 불안한 치안 때문에 목숨을 걸고 장사를 해야 하는 도시 빈민들에게 사회주의나 성모 마리아는 너무나 거리가 먼 구원의 손길이다. 오히려 담배 한 개비만 물려주면 거기에 합당한 대가를 바로 내려주신다는 죽음의신, 팔에 그 문신만 새겨도 적에게 위압감을 주는 죽음의 신이 더 용해 보이는 듯하다. 죽음의 신은 그의 주된 상징인 거대한 낫 외에 저울을 성물로 삼고 있다. 즉, 시장의 원리, 주는 만큼 반드시 답을 해주는 공평무사하고 틀림없는 신인 것이다. 일부 시중에 나도는 기도서에서는 그 답 중에 적에 대한 틀림없는 응징도 포함된다.

  물론, 이 교파의 멕시코 대교구 신부인 다비드 로모씨는 죽음의 여천사가 피의 대가를 요구한다든지 복수를 한다는 설은 오해라고 얘기한다. 죽음의 여천사는 성경의 계시록에 바탕을 둔 정통가톨릭 신앙이라는 것이다. 물론 로마교황청이나 멕시코 가톨릭계가 이 섬뜩한 신앙을 가톨릭의 일부로 인정해줄리 없다.

기존 가톨릭계와 멕시코 정부의 간접적인 억압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의 악화로 올해도 사신숭배는 비약적인 성장이 예상되며 과테말라를 포함한 중남미 국가들과 미국에 거주하는 라틴계 이주민에게도 이 신앙이 빠르게 전파되고 있어 이 신앙이 세계화와 전 세계적인 경제적 불황의 물결을 타고 국제화될지 주목된다. 


태그:#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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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국립대 중남미 지역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상기 대학 스페인어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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