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작은 일단 분위기가 다르다. 발상 또한 예사롭지가 않다. ‘눈먼 자들의 도시’의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라는 것만 알았지 전작을 읽어본 게 없어 표지에 적힌 약력을 살폈다. 이 작가, 숱하게 발표한 작품 못잖게 살아온 이력이 매력 있다.

 

용접공으로 일하면서 문학수업을 독학했다는 점, 반정부 공산주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는 점, 기술자 공무원 번역가 평론가 신문기자 자유기고가 등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다는 점, 그리고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 나이가 마흔 여섯 되던 해라는 점이 그렇다.

 

나이 들어가면서 생긴 증상 가운데 하나가 꽤 괜찮은 책을 읽고나면 이 작가는 도대체 나보다 몇살이나 어린가를 확인하고, 나는 이 나이에 얼마만큼 멍청했던가, 남몰래 쪽팔려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나 같은 사람에게 주제 사라마구가 노년에 쓴 이 작품,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인간의 정신이 나이 드는 거에 비례해 육체처럼 무력해지는 건 아니라는 위안으로 안도감을 주었을 듯도 하다.

 

이 책, ‘눈먼 자들의 도시’의 분위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작가가 등장인물을 부르는 방식이다. 의사, 의사의 아내, 검은색 안경을 쓴(썼던) 여자, 첫 번째로 눈먼 남자에다가 심지어 눈물을 핥아주는 개까지.

 

이름이란 한 개인이 사회 속에서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인정되는 기호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름 대신 그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들어 임의적으로 호명하는 것은 개인에 대한,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 나아가 인간 본성에 대한 작가의 입장이 어떤지를 알려주는 코드에 다름없다.

 

의사는 작품속에 등장하는 바로 그 의사 개인이기도 하며 동시에 의사나 교사나 엔지니어와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우리 모두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는 첫 번째로 횡액을 당할 수 있었던 우리 모두일 수 있으며, 검은색 안경을 썼던 여자는 검은색 안경을 쓰고 호텔로 가서 섹스를 하기도 하는 우리 모두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의사의 아내는 자신의 특징과 직업이 아닌,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남편이라는 부차적인 호칭으로 불리는 우리들 모두이기도 하다.

 

그리고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대개 그런 의문을 가졌을 텐데 작품속에서 부차적인 존재로 명명된 이 의사의 아내는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는 존재다. 눈먼 도시의 풍경은 이 의사의 아내의 눈을 통해 재현된다.

 

의사의 아내가 보는 눈먼 자들의 도시를 관통하는 건 폭력과 야만이다. 이 폭력과 야만의 세상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야만성 추악함 비열함 무기력함을 독자들에게 가차없이 드러낸다. 누구라도 그랬겠지만 의사의 아내 역시 홀로 눈을 떠있다는 사실이 때로는 두렵고 끔찍하고 역겹다. 책을 읽어나가노라면, 인간이 이렇게까지 바닥을 칠 수 있는 존재들임을 목격하면서 느끼는 의사의 아내의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인간은 실로 이 정도밖에 안되는, 개보다 고양이보다 나을 게 없는 존재들이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고?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고?

 

주제 사라마구는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세상을 통해 독자들에게 질문하고, 그리고 답한다. 인간은 쓰레기며 살인자며 강도며 비열한 쥐새끼들이다.

 

그러나!

 

의사의 아내라는 유일하게 눈뜬 자가 취하는 태도는 작품전체의 폭력과 야만에 상응하는 무게를 가지고 선악의, 미추의 균형을 이뤄나간다. 그러니까 인간은 타인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가슴을 가진 존재며 죽음 앞에서 타인의 손을 먼저 잡아줄 줄 아는 존재며,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유지하는 고결한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도시 전체의 실명이라는 끔찍한 발상으로 출발해 살상과 폭력과 강간과 협박과 도둑질과 지옥 같은 풍경으로 이어지는 이 작품은 어둡지 않다. 아니, 어둡지만은 않다.

 

눈먼 자들을 통솔하고 다독이고 먹이고 인도하면서 눈뜬 자들의 도시로 인도하는 의사의 아내는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면 지금껏 다른 작품에서 만났던 어느 인물보다 친근하고 양심적인 인간, 영웅의 이미지로 남는다.

 

책을 다 읽고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눈먼 자들의 도시를 떠올려보았다. 폭력과 살상과 쓰레기와 악취가 넘쳐나는 거리를 몰려다니는 굶주린 사람들의 무리가 보였다. 그 무리 속에 서있는 여자, 의사의 아내와 겁에 질린 내가 보였다. 일시에 인간의 시력을 무력하게 하는 태양광선처럼 강렬하고 막강한 하얀빛의 테두리에 갇힌 우리가 보였다.

 

문득 작품중간에 검은색 안경을 썼던 여자가 한 말이 귀에 와얹힌다.

 

"우리 내부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그 뭔가가 아마 우리의 진짜 모습일 거예요."

 

나는 그 ‘무엇’을 인간으로 살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으로 살 수 있게 하는 ‘무엇’으로 해석해 본다. 내 속에 들어있는 ‘무엇’, 나를 규정하는 무엇은 나를 인간이게 하거나 인간인 나를 절망케 하는 야만의 무엇이거나 할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토록 예리하게 자각도록 하는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읽고난 한참 뒤에 고통과 감동이 찾아드는 작품이다.

첨부파일
q0.jpg
q1.jpg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국제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해냄(2002)


태그:#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