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낮, 겨울다움을 잃고 어느덧 봄과 같은 날씨가 되어 버린 따스함을 느끼면서 아기를 안고 골목마실을 합니다. 어디로 가 볼까 하고 생각하면서 슬슬 길을 나서다가 송현동 중앙시장 앞 건널목 앞에서 신호를 기다립니다. 건널목을 건너다가 문득, 이토록 파헤쳐진 저 집자리 안쪽이 궁금해서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한 걸음 두 걸음, 사뿐사뿐 걸음을 떼는데, 그만 기가 질립니다. 보상을 받고 떠난 사람들 집자리야, 보상을 해 준 인천시 건설업체에서 삽차나 밀차를 끌고 와서 밀어버릴 권리가 있을 터이지만, 아직 제 살림집에서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또 보상을 안 받거나 못 받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이곳이 자기 보금자리입니다. 그런데 그런 보금자리야 아랑곳하지 않고 파헤쳐 놓았습니다. 비닐테이프로 길게 줄을 쳐서 파헤친 자리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는 삽차마저 파헤쳐진 자리에 떡하니 세워 놓는데, 아무리 힘있는 이가 임금님이라 한다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집’ 아니냐 하는 생각을 지울 길 없습니다. 사람 사는 집을 이렇게 흐트려 놓아도 되느냐 싶습니다.
개발도 좋고 재개발도 좋고 재생사업도 좋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에는 ‘길(도리)’이 있습니다. 지킬 길이 있고 다스릴 길이 있으며 헤아릴 길이 있습니다. 사람 사는 길을 지키지 않고 밀어붙이는 개발이 우리 사람을 얼마나 따스히 감싸 줄 수 있을는지, 사람 어우러지는 길을 돌아보지 않고 이루어지는 재개발이 우리 사람을 얼마나 푸근히 어루만질 수 있을는지, 사람 느긋히 누울 길을 쓰다듬지 않고 막나가는 재생사업이 우리 사람을 얼마나 알뜰히 껴안을는지 궁금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쇠삽날로 밀어붙여서 깡그리 없애버릴 수 있을는지 모르나, 사진은 이 모든 모습을 또렷하게 아로새겨서 우리 뒷사람한테 우리들이 오늘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남김없이 보여줍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뒷사람한테, 또 이제 막 태어나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않을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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