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장군(冬將軍)이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밖에 조금만 있어도 손과 발, 몸이 꽁꽁 언다.

밖이 아닌 농구 코드 안에서 그 추위를 느끼는 팀이 있다. 18.5%라는 안타까운 승률을 올리며, 여자농구팀 6개 중 6위를 달리고 있는 우리은행 한새가 그 팀이다. 지난 시즌 신세계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김은혜의 극적인 역전골로 겨우 꼴찌를 면하고 이번 시즌 전 "플레이오프 진출"을 외쳤지만, 정규리그가 종반부를 향해 달려가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은행은 꼴찌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시즌 중반부터 주전 선수들의 부상으로 삐걱거렸다. 김은혜, 고아라, 홍현희, 김선혜의 부상으로 인한 결장은 한 때 명문이었던 우리은행을 10연패에 빠트렸다.

주전 선수들이 복귀한 후, 12월 15일 '거함' 신한은행을 62 대 52로 누르는 대위업을 달성하고, 12월 29일 삼성생명과의 2008년 마지막 경기에서도 60 대 58로 삼성생명을 긴장시키는 등 상승세를 탔지만, 올해들어 금호생명과 삼성생명에 2연패하며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

현재 우리은행의 플레이오프 진출 전망은 어둡다. 4위 신세계와의 승차는 5경기, 앞으로 신세계의 승패에 신경쓰며 6~7할의 승률을 거두어야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이 보인다. 어쩌면 '2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라는 수모를 겪을 가능성이 더 높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은행의 중심으로 꿋꿋히 자신이 맡은 역할을 해내며 코트위에서 땀과 몸을 아끼지 않는 선수들이 있다. 김계령(31·190Cm), 김은혜(28·182Cm), 김은경(26·175Cm)이 그녀들이다.

김계령, 우리은행의 진정한 수호자

김계령은 2004년 11월 우리은행으로 트레이드 되기 전 삼성생명의 화려했던 '국가대표 4인방' 중 한 명이었다. 이미 데뷔 때부터 여자농구를 짊어질 대들보로 각광받았던 김계령은 삼성생명에서 국가대표 3명(박정은, 이미선, 변연하)과 함께 삼성생명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우리은행으로 이적해서도 2005년 겨울리그와 2006 겨울리그를 우승으로 이끄는 기둥 역할을 하면서 한 팀의 전성기를 이끄는데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김계령은 추락하는 우리은행의 '캡틴'으로써 팀을 힘겹게 이끌어가야 했다. 이번 시즌에도 리그에서 가장 많은 출전시간(37분 19초)을 소화하며 게임에 임하고 있다.

힘들 법도 한데, 김계령은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상대 팀의 끔찍한 집중 견제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고 꾸준하게 득점을 한다(평균득점 18.67점, 2위). 후배들이 기가 죽으면 웃는 얼굴로 다가가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격려해준다. 그리고 파이팅을 외친다. 수비에도 온 몸을 내던져 때로는 코트 바닥에 '쿵'소리가 날 정도로 크게 넘어지기도 한다.

김계령은 '우리은행의 진정한 수호자'다. 팀이 잘나갈 때나, 어려울 때나 그녀는 2004년 겨울부터 마을 앞의 천하대장군처럼 꿋꿋하게 우리은행을 지켜 왔기 때문이다. 김계령의 존재는 앞으로도 우리은행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것이 될 것이다.

김은혜, 여자의 파격적 변신은 '결실'

김은혜는 우리은행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2001년 숭의여고를 졸업하고 우리은행에 입단해서 8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동안 트레이드 없이 우리은행을 지켜왔다. 8년이라는 세월동안 김은혜는 미모와 3점슛으로 팀 팬들 뿐 아니라 여자농구 팬 전체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미녀슈터', '여자농구계의 이효리'는 그녀에게 늘 따라다니던 애칭이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 김은혜는 이러한 '영예로운' 애칭들에게서 과감하게 탈피했다. '허슬은혜'로의 파격적 변신을 끊임없이 시도했던 것이다. 이는 단적인 기록에서도 나타난다. 골밑에서의 리바운드를 따내기 위한 허슬플레이로 인해 리바운드 갯수는 지난 시즌에 비해 3개나 늘었다.(작년시즌 4.11개, 이번시즌 7.00개)

단적인 기록으로 김은혜의 파격적 변신을 전부 말할 수는 없다. 김은혜의 경기를 보노라면 그녀의 작년까지의 플레이에 익숙한 팬들은 혀를 내두른다. '과연 저 선수가 우리가 알던 김은혜 맞아?'라고 말이다. 팀의 주전 센터인 홍현희(29·191Cm)의 잦은 부상으로 인한 골밑의 공백을 김은혜는 기대 이상만큼 채워주고 있다.

물론 부상에서 복귀한 이후 자신의 주임무인 득점에도 충실하고 있다. 기복이 있다는 게 흠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평균득점은 지난 시즌보다 오른 12.45득점으로 팀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파울 작전을 펴는 상대 선수를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95%에 육박하는 자유투는 그녀만의 전매특허 무기다.

김은혜의 파격적 변신은 우리은행으로서는 무죄 정도가 아니라 알찬 '결실'이다. '허슬은혜'의 일기를 써가고 있는 김은혜는 팀의 어려움 속에서도 가끔 팬들에게 '살인미소'를 날리며 좋은 플레이를 선보이고 있다.

김은경, 갈수록 영글어가는 '파이터'

김은경은 프로 초년 시절부터 상대 주득점원을 묶는 수비수로 활약해왔다. 2005년 10월 우리은행으로 트레이드 된 후에도 김은경의 주역할은 수비였다. 하지만 김은경은 2007년 리그 때 수비 뿐 아니라 알토란 같은 공격력을 자랑하며 1라운드 기량발전상(MIP)을 수상하며 떠올랐고, 작년 시즌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그전까지 팀의 수비수와 주공격수를 번갈아 플레이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올 시즌 중반 주전들의 부상으로 인한 대거 공백에도 불구하고 김은경은 김계령과 꾸준한 득점을 올리며 10연패의 수모에도 굴하지 않고 팀을 묵묵히 이끌었다. 주전 선수들이 복귀한 후에도 코트에서 긴 시간을 뛰며(평균 28.58분) 자신의 역량을 발휘했다.

비록 지난 12일 삼성생명 전에서 전담으로 수비했던 박정은에게 트리플더블을 내주긴 했어도 김은경은 자타가 공인하는 리그 최고급의 수비수다. 다부진 몸을 바탕으로 하는 김은경의 '질식 수비'는 상대 선수에게는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공격력도 이번 시즌 들어 최고 감각을 자랑하며(평균 9.92득점) 김은혜에 이어 팀의 주득점원이 되고 있다.

"잘못은 했지만 올 시즌 내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지 않겠다"라고 퓨처스리그 전 당당히 말했던 김은경, 그녀의 플레이 스타일은 일명 '파이터'이다. 이미 코트 위에 들어서기 직전부터 살기등등함을 자랑하는 '파이터' 말이다. 이 '파이터'는 이제 시간이 갈수록 영글어가는 이삭처럼 성숙해지며 우리은행의 큰 주역으로서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팀의 추락세에도 여자농구 팬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주는 우리은행의 '3김'을 플레이오프는 모르겠지만 남은 정규리그 기간동안 코트 위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올 시즌 여자농구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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