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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MB악법의 처리 시기와 방식에 대해 적당히 타협함으로써 국회 본회의장 점거와 몸싸움이 일단락됐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세 교섭단체는 어제(6일) 저녁 기자회견을 통해 이러한 합의문의 내용을 밝혔다.

 

어제 합의문은 모두 10개 항으로 이뤄져 있다. 그 핵심 내용을 살펴보자.

 

한미FTA 비준동의안과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빠른 시일 내에 협의 처리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사실상 통과시켜주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디어 악법 6개와 금산분리 완화법, 사회개혁법안 10개는 2월 임시국회에서 합의 처리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나라당이 밀어붙이려고 했던 85개 법안 중 이들을 제외한 것은 1월 임시국회를 소집해서 모두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다.

 

이 합의문에서 한미FTA비준과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쟁점으로 떠올랐던 큰 알맹이는 이미 쏙 빠져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85개 법안 중 합의문에 언급된 20여 개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슬쩍 빠져나갔다.

 

그 가운데는 유사파시즘적 법안, 우파 이데올로기 공세적 법안, 시민사회단체 약화 법안, 반평화 주권침해 법안, 의료 시장화 법안, 공공재 사유화 법안, 교육 시장화 법안, 복지 시장화 법안, 금융수탈과 착취 강화 법안 등이 있다.

 

한편, 이들 가운데 10여 개의 법안은 '사회개혁법안'이라는 호칭까지 부여받았다. 집시법 개악 등의 대표적인 MB악법에 '사회개혁'이라는 딱지가 붙은 것은 국민 기만이고 사기다.

 

예견됐던 일이긴 하지만 격렬한 몸싸움 뒤의 일이라 허탈감이 좀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어제 한나라당 등과 타협한 결과에 70점이라는 후한 점수를 주었다. 기만적이게도 부족한 30점은 미디어 관련 법안을 분리 처리하기로 한 점을 들었을 뿐이다.

 

한편,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80점을 주었는데 일단 이 점수 대결에서도 한나라당이 승리했다. 직권상정을 통한 강행처리가 이번에 저지된 것을 제외한다면 한나라당이 잃은 것은 별로 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걸러지지 않고 합의문에 언급된 방송법 등 미디어 쟁점 6법과 금산분리 완화 법안 등을 "합의 처리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 문구 또한 큰 독약이다. 한나라당은 이 문구를 두고 '합의 처리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접점을 찾지 못했다'는 등의 구실을 대며 단독으로 강행처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민주당은 합의를 해주지 않고 좀 더 버티며 싸우자는 일부 의원들과 문제조항을 조금 손보는 선에서 타협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원들 사이에 자중지란이 벌어질 수 있다.

 

큰 알맹이 빠지고 시간 좀 벌었을 뿐인데

 

왜 이런 예상을 할 수밖에 없을까. 문제는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모두 어제 합의문의 핵심 키워드인 '합의'와 '협의'의 분명한 뜻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합의문 해석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악법을 조금 손질해서라도 야당과 함께 합의 혹은 협의 처리하겠다는 방침인지 아니면 협상을 하는 척만 하면서 때를 노리다가 그냥 밀어버릴 것인지 솔직히 밝혀야 한다. 민주당은 악법을 조금 손질하면 합의 혹은 협의해주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악법의 완전 폐기를 목표로 끝까지 싸울 것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미 큰 알맹이는 내준 것이지만 '합의' 처리하겠다는 일부 법안들조차 적당한 타협으로 끝낸다면 민주당은 정말 완패다. 한나라당한테 당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국민들로부터도 냉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민주당은 지금 몸싸움 조금 한 것으로 지지율이 소폭 상승하고 당의 단합이 이뤄졌다며 자축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철학과 원칙 없이 몸싸움 한 번으로 야당의 선명성이 세워질 리 만무하다.

 

민주당이 MB악법들을 두고 적당히 밀고 당기면서 타협으로 한 발짝씩 다가선다면 지금까지의 국회 몸싸움이 '쇼'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이번 법안 싸움 이전에 민주당은 이미 감세안 합의로 한나라당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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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최광은 기자는 사회당 대표입니다.


태그:#국회는 지금, #한나라당, #민주당, #MB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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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비교정치, 한국정치 등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복지국가연구센터에 적을 두고 있다. 에식스 대학(University of Essex, UK)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두에게 기본소득을>(박종철출판사, 2011) 저자이고,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평생회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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