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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산동면 인덕리, 문수사 가는 길이에요. 저 아래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올라왔는데, 발판 굴리기도 힘들 만큼 가파른 곳이더군요. 절집 위까지 시멘트로 덮인 새 길이 나 있는데...
▲ 문수사 가는 길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 문수사 가는 길이에요. 저 아래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올라왔는데, 발판 굴리기도 힘들 만큼 가파른 곳이더군요. 절집 위까지 시멘트로 덮인 새 길이 나 있는데...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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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한 해 앞서만 해도 백현리 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려면 어김없이 넘어가던 산길이에요. 경운대 앞으로 큰 못을 지나면 바로 산길이 시작되는데,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와 백현리를 이어주는 임도랍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보니, 찻길로도 갈 수 있지만 일부러 산길을 따라가곤 했지요. 몇 주 앞서 '장고미기'라는 산골마을 가는 길에 딱 한 해 만에 다시 이곳을 찾았는데, 그새 참 많이도 바뀌었더군요.

경운대 옆 큰 못 둘레에 생태공원이 생겼어요. 갖가지 습지식물과 못을 따라 나무로 다리를 놓았는데 산책하기에 매우 좋은 곳이었어요. 이쪽에 사는 이들한테는 아름다운 풍경도 보고 아주 좋은 쉼터가 될 듯했지요.

생태공원을 지나 산길에 막 들어서려는데, 지난해엔 보지 못했던 시멘트로 덮인 새 길이 나 있었어요. 새로 길을 냈지만 산 중턱까지 낸 길이라서 꽤 가팔랐지요. 자전거를 굴리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길가 전봇대에다가 작은 천 조각에 '신라고찰 문수사' 라고 쓴 글귀가 눈에 띄었어요.

경운대를 지나 큰 못 둘레로 생태공원이 새로 생겼어요. 나무로 만든 다리가 무척 아름답고, 따듯한 봄날, 여름날에는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겠더군요.
▲ 산동 생태공원 경운대를 지나 큰 못 둘레로 생태공원이 새로 생겼어요. 나무로 만든 다리가 무척 아름답고, 따듯한 봄날, 여름날에는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겠더군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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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신라고찰이라고?"
"그러게 저기 문수사가 그렇게 오래 된 곳이란 말이야?"

지난해에도 '문수사'라는 팻말을 보고 여기에도 절집이 있다는 것만 알고 그냥 지나쳤는데, '신라고찰'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답니다.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와 숨 고를 겨를도 없이 '컹컹컹!' 짖어대는 개 소리에 놀라 움찔했어요.

"애고, 여기도 개가 있네?"
"설마 풀어놓고 키우진 않겠지?"

다행스럽게도 하얀 진돗개는 목줄에 묶여있었고, 마침 어르신 한 분이 내다보시기에 덮어놓고 들어갔어요.

"어르신, 여기가 신라 때부터 있던 절이 맞나요?"
"네 맞습니다."

'신라고찰'이라고 해서 꽤나 멋진 절집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뜻밖에도 단층으로 지은 매우 소박한 곳이었지요. 이런 곳이 크고 화려한 곳보다 훨씬 더 정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 소박한 절집 문수사 '신라고찰'이라고 해서 꽤나 멋진 절집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뜻밖에도 단층으로 지은 매우 소박한 곳이었지요. 이런 곳이 크고 화려한 곳보다 훨씬 더 정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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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동안 누군가가 차곡차곡 쌓았을 돌탑이 무척 정겹습니다. 소박해서 더 좋은 느낌이에요.
▲ 돌탑 오랜 세월 동안 누군가가 차곡차곡 쌓았을 돌탑이 무척 정겹습니다. 소박해서 더 좋은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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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엔 딱히 절집이라고 보기에도 어려울 만큼 단층으로 된 낮은 건물이었고, 보통 절집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어요. 군데군데 매달아 놓은 연등과 마당 한 가운데 작은 범종만이 절집이란 걸 알 수 있겠더군요.

"아니, 그럼 이 건물도 신라 때부터 있던 건가요?"
"언지예, 벌써 여러 번 고쳤지요. 지금 요 건물은 새로 고친 지 한 백육칠십 년 됐지예."
"아, 네."

산속 절집은 무척 조용했고, 스님마저도 어딘가에 가시고 없는데, 어르신께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고 밝히고 사진 좀 찍겠다고 하니 그러라시며 이곳저곳 안내도 해주십니다. 그러고 보니 법당 한 곁에 작은 '산신각'도 따로 있고, 오랜 세월 동안 오가는 이들이 하나둘 쌓았을 돌탑도 있었어요.

문수사 왕맷돌? 무척 크구나!

'신라고찰' 문수사에 커다란 맷돌이 있어요. 밑동은 땅에 박힌 채로 오랜 세월을 견디었을 이야기가 묻어나오는 듯했답니다.
▲ 왕맷돌 '신라고찰' 문수사에 커다란 맷돌이 있어요. 밑동은 땅에 박힌 채로 오랜 세월을 견디었을 이야기가 묻어나오는 듯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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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바로 곁에 있는 장독대도 매우 가지런하게 놓여있어요. 산신각을 가려다가 발밑을 보니, 이게 웬일이래요? 땅바닥에 커다란 맷돌이 밑동은 땅에 박힌 채로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있는 게 아니겠어요?

맷돌 크기로 미루어 보니, 지난날엔 이 절집에 꽤나 많은 식구들이 살았을 거라 여겨졌어요. 어쩌면 그 곁에 커다란 물통(돌로 만든 물통, 수조)도 함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고 하니, 문득 이대로 아무렇게나 두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경북 군위군 소보면에 있는 법주사에 가면 '왕맷돌'이 있어요. '시도민속자료 제112호'로 문화재 지정이 된 것이고 보호각까지 둘러 잘 모셔(?) 놓았지요. 크기로 봐선 법주사 그것보다는 작지만 이곳 문수사 맷돌도 역사로나 값어치로나 견줄만하겠구나 싶었답니다.

아무튼 '신라고찰'이라고 하더니, 절집 모양은 꽤 소박하고 작았지만 오랜 세월이 군데군데에서 느껴졌답니다. 어르신 얘기로는 언젠가 어떤 기자가 와서 '맷돌이 가치가 있겠다'라면서 사진을 찍어가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셨어요.

경북 군위군 소보면 법주사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왕맷돌이 있지요. 지난 2007년 4월에 찍은 사진인데, 크기가 매우 놀랍지요? 산동면 문수사에 있던 맷돌도 크기는 이보다 작지만 오랜 옛날, 많은 식구들이 절집에 있었을 거라 여겨져요.
▲ 법주사 왕맷돌 (시도민속자료 제112호) 경북 군위군 소보면 법주사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왕맷돌이 있지요. 지난 2007년 4월에 찍은 사진인데, 크기가 매우 놀랍지요? 산동면 문수사에 있던 맷돌도 크기는 이보다 작지만 오랜 옛날, 많은 식구들이 절집에 있었을 거라 여겨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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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지난날엔 법당 앞에 매우 큰 살구나무와 추자(호두)나무가 있었는데, 옛날 사하라 태풍(1957년) 때에 그만 나무가 뽑혀서 넘어갔다고 했어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두 그루 모두 법당 반대쪽으로 쓰러졌다면서, 만일 거꾸로 넘어졌다면 아마도 법당이 다 부서지고 남지 않았을 거라면서 '부처님 은덕'이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답니다.

대구에서 살다가 열 해 앞서 이곳 산동면 문수사에 들어오셔서 지내신대요. 정겨운 말투로 이곳저곳 절집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셨지요.
▲ 문수사 지킴이 문달수(75) 어르신 대구에서 살다가 열 해 앞서 이곳 산동면 문수사에 들어오셔서 지내신대요. 정겨운 말투로 이곳저곳 절집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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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 지킴이 문달수(75) 어르신

우리한테 이것저것 문수사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신 어르신은 본디 대구 사람인데, 한 열 해 앞서서 이곳 문수사에 오셔서 지내신다고 했어요. 옛날에는 아픈 곳도 많았는데, 여기 산속에서 살면서부터는 몸도 더욱 튼튼해졌다고 하시네요. 조심스럽게 나이를 여쭈었더니, 올해 일흔다섯이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겉보기엔 무척 정정하시고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거든요.

이야기를 나누는데, 마침 부엌 쪽에서 물소리가 나서 다가 가니, 할머니가 손빨래를 하고 있습니다. 어르신의 부인이라고 하시네요. 할머니는 대구 집에 사시고 할아버지와 떨어져 지내시는데, 한 주에 한 번씩 오셔서 할아버지 옷가지를 빨고 음식을 장만해주고 가신댔어요.

할머니는 우리를 보시더니, 대뜸 "내 금방 밥 차릴 테니까 점심 잡숫고 가이소!"하고 말씀하셨어요. 우린 이런 얘기를 들으면 얼른 자리를 떠납니다. 그러면서도 속으론 꽤 흐뭇해요. 어디서든지 시골마을에 가면 이런 말을 꼭 들으니까요. 그저 인사치레가 아닌 속 깊은 정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떨어져서 대구에 사신대요. 한 주에 한 번씩 오셔서 할아버지 옷가지를 빨아드리고, 음식도 마련해주고 가신댔어요. 할머니는 대뜸 밥먹고 가라고 우리를 붙잡으십니다. 살가운 정이 뚝뚝 흐릅니다.
▲ 할머니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떨어져서 대구에 사신대요. 한 주에 한 번씩 오셔서 할아버지 옷가지를 빨아드리고, 음식도 마련해주고 가신댔어요. 할머니는 대뜸 밥먹고 가라고 우리를 붙잡으십니다. 살가운 정이 뚝뚝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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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고찰 문수사',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또 이곳에 어떤 역사가 이루어졌는지 자세하게 알 수는 없었어도 오랜 세월을 견디며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절집이 퍽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하네요. 무엇보다 낯선 이들을 따듯하게 맞아주신 두 분의 '정'을 뒤로 하고 길을 떠나는데, 살가운 이들을 만나고 돌아갈 때면 늘 그렇듯이 마음이 넉넉해지고 따스하네요.

산신각에서 내려다본 문수사
▲ 문수사 풍경 산신각에서 내려다본 문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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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본 문수사, 신라고찰이라지만 매우 작고 소박한 절집이에요.
▲ 문수사 풍경 멀리서 본 문수사, 신라고찰이라지만 매우 작고 소박한 절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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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자주 지나가던 산길이에요. 가랑잎이 소복하게 쌓여 바퀴를 굴릴 때마다 서걱서걱 즐거운 소리가 납니다.
▲ 산동면 인덕리 임도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자주 지나가던 산길이에요. 가랑잎이 소복하게 쌓여 바퀴를 굴릴 때마다 서걱서걱 즐거운 소리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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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문수사, #구미 문수사, #왕맷돌, #법주사왕맷돌,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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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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