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가 차기 미국 정부로 넘어가는 분위기이다.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와 북핵 검증을 둘러싸고 날선 공방을 해왔던 북한과 미국은 좀처럼 문제해결의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반면 미국 대선은 불과 40일 앞으로 다가왔다. 만약 수주 내에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미국의 정권이양기와 새로운 외교안보팀 구성 및 정책 검토 시간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내년 봄까지 교착 내지 경색 상태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렇다면 버락 오바마와 존 매케인 가운데 누가 북핵 해결의 적임자일까? 일단 오바마가 협상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고 북한 역시 오바마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어, 오바마가 당선될 경우 북핵 해결의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반면 매케인은 압박을 선호하고 있어, 그의 집권시 북미관계의 악화가 예견된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북한 역시 오바마를 선호하는 분위기이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조총련계 신문 조선신보는 6월 9일 "조선반도와의 관계에서 본다면 부시 정권의 잘못을 엄하게 비판하고 조선의 지도자와 조건 없이 만나겠다고 공언해 온 오바마가 '부시의 아류'이자 네오콘의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매케인보다 낫기는 낫다"고 말한 바 있다.
오바마 "김정일과 협상, 의미 있다"
오바마의 대북정책은 부시 행정부의 2007년 이전과 이후에 대한 상반된 평가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2008년 2월에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직전에 발표한 한반도 정책에서 부시 행정부가 초기에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부르고 직접 대화를 하지 않음으로써 한미간에는 갈등을, 북한에게는 핵무기 개발의 기회를 제공했다고 비판했다.
집권 이후 6년간 부시 행정부의 불안한 대북정책이 "북한이 플루토늄 재처리를 재개하고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 보유를 확대하도록 허용했다. 또 한국 지도자들이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함에 따라 한국에 조성된 불안을 이해할만하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 직후에는 "미국은 북한과의 양자 협상을 거부함으로써 북한에 어떠한 지렛대도 갖지 못했다"며, 양자대화를 거부한 부시 행정부를 비난하는 한편, 직접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핵실험 직후 가진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일과 만나 직접 협상에 나설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적절한 시점에 6자회담과 병행해 북미 양자대화를 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답했다. 다만 최근 오바마 캠프는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서는 '외교적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이고 있다.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을 제외하곤 2007년 이후의 부시의 대북정책과 대단히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작년 2.13 합의 이후부터 오바마의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는 우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포린어페어>지 2007년 7/8월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6자회담을 북한 핵문제를 다루기 위한 특별한 국제연합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은 "지속적이고 직접적이며 적극적인 외교"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오바마의 6자회담 지지 및 외교 중시 노선은 8월 말에 채택된 민주당의 정강정책에서도 거듭 확인된다. 정강정책에서는 "우리는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검증가능한 종식을 추구하고, 지금까지 북한이 생산한 모든 핵분열 물질과 무기를 완전하게 설명하도록 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지지한다"며 '외교적 노력'에 방점을 찍었다. 특히 "6자회담을 통해 검증가능한 한반도 비핵화를 이룩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며 6자회담의 계승 방침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고 오바마의 대북정책을 미국 강경파들이 비난하는 것처럼 '유화정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는 2005년 5월 연설에서 북한을 "미국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핵확산 국가"라고 부르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강화해 북한처럼 이 조약에서 탈퇴해 규칙을 위반한 국가는 "자동적으로 강력한 국제 제재에 직면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북한을 침공할 의사는 없지만, 무력 사용은 최후의 수단으로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피력한 바 있다.
또한 2008년 2월 발표한 한반도 정책에서도 "나는 북한에 대해 어떠한 환상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를 지켜내기 위해 단호해야 할 뿐 아니라 양보해서도 안 된다"며, 단호한 모습을 부각시키려고 했다.
대북정책과 관련해 오바마 못지 않게 중요한 인물은 부통령 후보인 조지프 바이든이다. 오바마는 상대적으로 외교안보정책, 특히 대북정책에 관해 경험과 전문성이 부족한 반면에, 바이든은 1972년 상원 의원으로 선출된 이후 30여년간 외교위원회에서 외교안보 이슈를 다뤄온 '베테랑'이다. 더구나 바이든의 핵심 보좌관인 프랭크 자누치는 미국 내의 대표적인 '북한통'일뿐만 아니라 오바마 캠프의 동북아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오바마 당선시 대북정책에 대한 바이든의 영향력이 상당할 것임을 예고한다.
바이든의 대북정책 역시 위에서 설명한 오바마의 정책과 대단히 흡사하다.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면, 한반도 긴장완화를 이라크, 이란과 함께 "다음 미국 대통령이 다뤄야 할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의제"로 뽑은 것이다. 그는 2007년 6월 민주당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집권 이후 100일 동안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는 바이든이 북핵 해결을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북핵 문제와 함께 미국 정계의 또 하나의 관심사인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민주당의 정강정책에 원론적인 입장이 담겨 있다. "우리는 쿠바에서 북한에 이르기까지, 버마(미얀마)에서 짐바브웨, 수단에 이르기까지 압제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낼 것"라는 것이다.
매케인 "김정일과의 협상은 미국의 망신"
오바마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에 따라 '비판자'에서 '계승자'로 돌아섰다면, 매케인은 부시 정책의 옹호자에서 비판자로 돌아섰다. 매케인은 1993~4년 1차 한반도 핵위기 당시 북폭을 주장했던 전쟁불사론자 가운데 한 사람이고, 제네바 합의에도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매케인은 2002년 10월 2차 핵위기 발발 직후에 제네바 합의에 따른 미국의 의무 이행을 무효로 하는 법안 통과를 주도했다.
그의 대북정책의 윤곽은 <포린어페어>지 2007년 11/12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잘 나타난다. 기고 시점은 2.13 합의와 10.3 합의를 거치면서 북미관계가 급진전되던 때이다. 매케인은 "북한이 검증가능한 비핵화와 핵 물질 및 시설의 완전한 신고를 이행할 것인지는 극히 불확시하다"며, "이 두 가지는 이후 어떠한 외교적 합의가 도달되기 이전에 필요한 단계"라고 강조했다. 또한 "향후 회담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일본인 납치, 테러리즘과 핵확산 문제도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해, 1기 부시 행정부와 흡사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매케인이 북미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2008년 5월 말에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에서는 더욱 구체적인 입장이 드러났다. 그는 북핵 문제 해결에 "유엔 안보리의 결의안을 적극 이용해야 한다"고 말해, 압박과 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6자회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 없이 한-미-일 삼각체제의 강화 필요성을 강조해, 6자회담보다는 미국 주도의 대북 압박 노선을 선호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국제 범죄 기업과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 그리고 대규모 정치범 수용소를 운영하는 독재자와 무조건적인 협상을 개시하는 것은 동맹국의 신의와 미국 최고 지도자에 대한 존경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말해, 김정일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함께 '조건없는 대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오바마를 싸잡아 비난했다.
매케인의 대북강경책은 9월 초에 채택된 공화당의 정강정책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은 북한의 핵확산 활동에 대한 충분한 해명과 아울러 핵 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 요구를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CVID)'라는 표현은 부시 행정부가 2005년 9.19 공동성명 채택 이전까지 사용한 것으로, 북한은 이를 대단히 모욕적이고 주권을 침해하는 표현으로 간주했었다.
또한 공화당 정강정책은 부시 대통령이 북한 핵폐기를 위해 추진한 6자회담에 대해서도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6자회담을 계승해 북미 양자회담과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북핵 해결의 유용한 틀로 삼겠다는 오바마의 입장과도 비교된다.
대북 인식도 극히 적대적이라는 것을 감추지 않고 있다. 정강정책에서는 북한을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광적인(maniacal) 독재국가"라고 일컫고 있는데, 이는 부시의 "악의 축"이나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을 연상시킨다. 또한 "고통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회복되기를 기원하며, 한반도가 통일돼 평화와 자유를 누리기를 바라는 한국민들의 희망이 성취되기를 고대한다"고 명시, 집권할 경우 북한 인권개선을 강력히 제기할 방침을 분명히 했다.
누가 부시의 계승자가 될 것인가?
오바마는 매케인의 당선을 '부시 3기'가 될 것이고 말한다. 그러나 적어도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는 그 반대가 될 공산이 크다. 매케인의 대북정책은 부시 1기 때와 대단히 흡사한 반면에, 오바마의 대북정책은 2007년 이후의 부시 정책과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매케인보다 오바마가 부시의 대북정책 계승자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북미관계가 보여주듯 오바마가 부시의 정책을 계승한다고 해서, 북핵 해결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부시 임기 내에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삭제하는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오바마의 첫 시험대는 바로 이 문제가 될 것이다.
반면 매케인은 테러지원국 해제와 관련해 부시보다 더욱 까다로운 조건을 붙일 가능성이 높다. 검증의정서 채택 이외에도 일본인 납치 문제, 시리아와의 핵거래설,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의혹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매케인 당선시 한반도 정세가 부시 1기때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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