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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과곡분교지만 9명 학생들의 보금자리로는 손색이 없다.
▲ 과곡분교의 전경 아담한 과곡분교지만 9명 학생들의 보금자리로는 손색이 없다.
ⓒ 이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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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 구성면 송죽리에 자리잡은 구성초등학교 교각분교는 여느 분교처럼 작고 아담하지만 실은 1922년에 개교해 87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뼈대 있는' 학교다. 심지어 본교인 구성초등학교보다 30년이나 개교가 빨라서 사람으로 치면 과곡분교는 본교의 아버지뻘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과곡분교의 '나홀로 입학생'은 바로 한혜진(8)양이다. 무려 90여년을 쌓여온 전통을 계속 이어가는 무거운 책무가 바로 혜진이 어깨에 지워진 것이다. 경북지방의 최고기온이 35도를 넘어선 8월 13일. 바로 그 막중한 역할을 맡은 혜진이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어렵게 찾은 혜진이네 집에는 놀랍게도 모두 3명의 과곡분교 학생이 있었다. 1학년인 혜진이와 4학년인 오빠 한정운(11), 큰 언니인 한혜정(13)이 바로 그 학생들이다. 2008년 현재 과곡분교의 학생은 모두 9명. 그 중에 무려 삼분의 일이 바로 혜진이 삼남매였다.

실질적으로 혜진이 남매가 교각분교을 지탱하는 '기둥'인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혜진이 어머니인 김선자씨(39)는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막내인 혜진이가 초등학교에 취학할 나이가 되었을 때 본교인 구성초등학교로 보내려 했어요. 근데 혜진이가 오빠와 언니랑 다니는 과곡분교에 가고 싶다고 해서 3명이나 한 학교에 보내게 됐네요."

옆에서 어머니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던 혜진이는 작은 목소리로 "오빠와 같은 반"이라는 한마디를 살짝 보탠다. 모두 2학급이 있는 과곡분교에는 1학년과 4학년이 한 한급, 그리고 5학년과 6학년이 다른 한 학급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다같이 마루에 둘러 앉은 혜진이네 가족
▲ 오랜만에 찍는 가족사진 다같이 마루에 둘러 앉은 혜진이네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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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향하는 길에서 혜진이 삼남매가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둘째 한정운, 막내 한혜진, 첫째 한혜정
▲ 우리가 과곡분교에서 제일 잘나가는 자전거 삼총사! 학교로 향하는 길에서 혜진이 삼남매가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둘째 한정운, 막내 한혜진, 첫째 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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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보다 좋은 점은 오랜 역사 뿐만이 아니다

학교 구경 한번 시켜달라는 말에 삼남매는 어디론가 말없이 사라지더니 각자 자전거를 한 대씩 끌고 나온다. 처음 만났을 때 수줍어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논두렁 길을 따라 신나게 '밟는' 모습이 다들 숨겨둔 끼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들의 '질주하는 열정'을 바쁜 걸음걸이로 간신히 쫓아 도착한 과곡분교에는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3명의 교사가 모두 학교에 출근해 있었다.

"방학인데 어떤 일로 학교에 출근하셨는지"를 묻는 질문에 과곡분교 분교장 손정용(56) 선생님은 "이렇게 학교에 나와 있는게 낙입니다, 그렇다고 매일 다 나오는 건 아니고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미니학교에서 과연 학생들이 부족함 없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질 수 있을까. 선생님들의 열정과 애교심이 대단하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분명히 모자란 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런 걱정을 조심스럽게 분교장 선생님에게 전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부족한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본교에서 매일 추진해 오는 급식이 그렇죠. 하지만 교각분교에는 학생들을 위해 생각보다 다양한 여건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실은 언제든 개방되어 있으며 학생 수에 비해 다양하고 많은 책들이 구비되어 있다고 한다. 거기에다 학생 수가 많지 않은 만큼 학생들에 대한 선생님들의 세심한 지도도 가능하다.

흥미로운 점은 세 남매의 '애교심' 뒤에는 바로 '컴퓨터'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교에는 많은 학생 수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가 적은 반면에 교각분교에서는 학생들이 원하는 만큼 마음껏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 혜진이가 교각분교를 선택한 이유에는 그러한 점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교장 선생님의 재미난 '분석'이다.

독서실 한쪽 면에 걸려 있는 칠판에는 '금년 목표량'이라는 제목 아래 한자며 워드 자격증 관련 계획이 적혀있다. 자격증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냐는 질문에 선생님은 학교 차원에서 적극 권장하고 있다면서 "경쟁이 없어 자칫 나태해 지기 쉬운 소규모 학교 환경에서 자격증은 학생들의 도전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과곡분교에서는 학생들의 자격증 취득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 '금년 자격증 목표량' 과곡분교에서는 학생들의 자격증 취득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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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명의 학생만 있어도 학교는 존재해야"

현재 정부가 밝힌 초등학교의 폐교 기본원칙은 "학생수 15명 이하 학교와 10명 이하 분교장은 문을 닫고, 학생수 30명 이하 학교는 분교장으로 개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각분교의 학생수는 9명, 그리고 작년에도 같은 9명으로 2년 연속 폐교 기준을 '달성하고 있다. 그런데도 과곡분교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혜진이 어머니 김선자씨는 강력하게 단합한 마을의 '학부모 회의'를 그 이유로 든다. 김천시 교육청에서 매년 폐교 절차를 밟기 위해 나올 때마다 단결된 의지를 전달함으로써 폐교 시도를 저지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분교장인 손정용 선생님의 입장은 한층 더 간결하고 단호하다. "학교는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단 한명의 학생만 있어도 학교는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손 선생님의 지론이다.

"교육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닙니다. 단순 경제 논리로 인해 학생들의 교육권이 침해받는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교육자로서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쉽지 않은 발언이기도 하다. 낡은 교무실 한켠에 어울리지 않게 혼자 번듯하게 걸려있는 '5대 국정지표' 액자의 문구들이 계속 신경 쓰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년에 과곡분교를 졸업하는 6학년생은 4명. 그에 반해 입학예정인 학생은 1명 정도다. 그렇다면 전교생은 더 줄어든 6명이 된다. 거기다 폐교절차는 서류상 여전히 '진행형'이다.

교무실 창밖너머에는 혜진이 삼남매가 자전거를 한켠에 세워놓은 채 학교 운동장에서 즐겁게 뛰어놀고 있었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결국 넘어진다. 혜진이 삼남매가 힘차게 밟는 자전거의 페달처럼 이 아이들이 과곡분교라는 자전거가 계속 나아가게 만드는 추진력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자전거를 달려 학교를 찾은 혜진이 삼남매
▲ 우리가 전교생의 삼분의 일이에요! 자전거를 달려 학교를 찾은 혜진이 삼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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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진이 삼남매가 학교 운동장에서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가위, 바위, 보! 혜진이 삼남매가 학교 운동장에서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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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나홀로입학생, #과곡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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