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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전소된 숭례문을) 복원하는 문제에 있어 1차 예산이 대충 200억 가까이 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를 정부 예산으로도 할 수 있겠지만 우리 국민 모두가 다 안타까워하는데 십시일반으로 국민 성금으로 복원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마침 해외동포 단체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강력한 의사를 오늘 아침에 보냈주셨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정부 예산보다는 국민이 십시일반 참여하는 성금으로 복원하는 것이 오히려 국민들에게도 위안이 되지 않겠느냐. 또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갖는다." -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이제 숭례문은 정부의 숭례문이 아니고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우리의 보물이었기 때문에 당선인께서 제안하신 국민 한 명 한 명 마음 담긴 정성으로 우리가 복원하면서 우리 마음을 추스르는, 소망을 다시 깨우는 그러한 제안이 상당히 바람직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한다."- 이경숙 인수위원장

 

12일 오전 서울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열린 정부조직개편안 협상결렬 관련 관계자 회의에서 이 당선인과 이 위원장의 대화다.

 

이 대화를 듣고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몸서리가 쳐졌다. 이런 느낌을 받은 이들은 나만이 아니었다.

 

온 몸으로 부딪쳐 숭례문 개방했던 이명박, 복원은 국민 돈으로?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아이디 '괴독스런 땡중'은 "네티즌들이 바보는 아니랍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이 당선인의 자서전인 '온 몸으로 부딪쳐라'의 내용을 인용해 "2006년 3월 이 당선자는 당시 방화나 누전·낙서 등에 의한 국보 1호의 훼손이 우려된다는 문화재청의 반대의견을 무시한 채 개방을 강행했다"며 "국민성금을 하자고 하실 것이 아니라, 당선자님께서 대통령 당선시 국민에게 재산을 헌납하겠다는 약속을 실행할 기회로 삼는 것이 당시 공무원으로서의 도리와 책임 아니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강찬석 문화유산연대회의 대표도 "1차적인 책임은 이명박 당선인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이 당선인이 강력한 개방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당시 숭례문 개방을 맡은 설계회사에서 숭례문 공원 설계도를 나한테 가져와 브리핑을 하겠다고 해 "왜 나한테 하냐"고 물었다. 그러니 서울시에서 브리핑을 하고 충분히 설명을 드리라고 했다고 하더라. 1시간 정도 혼자서 브리핑을 받았다. 난 개방 자체는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단지 대안을 가지고 개방했어야 했다. 오래 전부터 우리는 숭례문 화재를 경고해왔다."

 

실제로 이 당선인은 2002년 서울시장 취임사를 통해 "광화문과 숭례문이 시민과 더욱 친숙하게 될 수 있도록 보행공간을 넓히고 횡단보도를 설치해 세계적인 우리 유산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3년이 채 못되는 기간 동안 숭례문은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전소됐다.

 

모금 여론을 확 뒤집은 이명박 당선인

 

시민들의 가슴도 많이 아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뉴스 화면으로 숭례문이 무너져내릴 때 "아아"하는 시민의 탄식도 함께 들려왔다. 실제로 지난 11일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모금청원으로 올라온  "자랑스런 국보1호 숭례문 복원에 참여합시다"는 청원 목표 500명을 훌쩍 넘어 2000명을 넘겼다.

 

그러나 오늘 이 당선인의 발언 소식이 들려오면서 여론도 확 뒤바뀌었다.

 

관리 소홀 등의 책임을 비판하면서도 서명에 동참했던 네티즌들은 이 소식이 전해진 다음부터 "언제까지 국민을 봉으로 생각할 것이냐"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국민이 치워야 합니까"라며 반대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심지어 "숭례문 복원에 국민성금 반대합니다", "숭례문 복원! 이명박 당선자의 재산으로 복구하라" 등의 반대 내용의 청원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처음 모금청원까지 벌일 정도로 행동에 나섰던 국민들의 숭례문 복원 의지가 이 당선인의 발언이 나온 직후 싸늘하게 식어버린 까닭은 무엇일까?

 

난 '염증'이 생각났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책임마저 회피하는 '윗선'들에게 염증을 느끼고 있다.

 

숭례문이 무너지고 나서 실질적인 관리책임이 있는 문화재청과 관리 업무를 보던 중구청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바빴다. 이 당선인을 비롯해 정치인들의 발길이 이어졌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11일 오후 늦게 방문한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 시민이 물병을 던지는 일까지 일어났다.

 

모금청원에서 모금반대 청원으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일에 국민의 '뜨거운 마음'은 기적을 일으키곤 했다.

 

97~98년 IMF 사태 때 국민들은 나라를 살리겠다고 농 속에 소중히 보관해왔던 돌반지까지도 꺼내와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했다.

 

그러나 당시 경제환란의 주범으로 지목 받았던 한승수 당시 재정경제부총리는 새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내정자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강만수 당시 재경부 차관도 현재 새 정부의 기획재정부의 장관으로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2개월 남짓 전 태안반도 앞바다에서 삼성중공업의 크레인선과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가 충돌해 사상 최악의 원유유출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국민들은 나섰다.

 

100만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태안을 찾아 기름으로 범벅이 된 돌을 닦아냈다.

 

또 다시 세계외신들은 극찬했다. 지난 1월 태안을 방문한 윌럼 오스터빈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사무국장은 "휴가를 내서 태안까지 달려와 기름때 낀 자갈들을 닦아내는 희생적인 자원봉사자들이 있다는 것은 한국의 행운이자 자산"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정작 사고 당사자인 삼성중공업과 유조선 측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 태안 주민 3명이 목숨을 끊었다.

 

IMF 사태, 태안 기름유출... 착한 국민들, 뻔뻔한 책임자들

 

책임져야 할 이들 대신 국민이 몸으로 때웠다. 지금 이 당선인의 '국민성금' 제안에 몸서리가 쳐진 것은 그가 불거지고 있는 자신의 '전시행정' 논란에 대한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이 국민에게 또 나서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상당히 바람직하다"고 맞장구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국토생태본부장은 "이번 일이 태안원유유출 사고에 대한 정치권의 논리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이 발의한 태안특별법의 경우 보험사와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에서 배상하는 한도액 3천억원을 넘는 돈 전부를 국가에서 배상하겠다고 한다. 이는 사고 책임이 있는 삼성중공업의 책임을 밝히려는 노력 없이 어물쩡 국가 예산으로 넘기고자 하는 태도나 다름 없다. 사고가 났으면 사고를 낸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 일도 정부시스템이 부재해 일어난 일이면 그에 대해 사과하고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우선이고 책임 있는 이가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 국민이 성금을 내야 할 일이 아니다."

 


태그:#숭례문,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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