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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날 밤 기차역 대합실. 폭우로 발이 묶인 승객들 사이, 한 청년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자 오싹한 이야기를 건네기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이번엔 선글라스를 낀 사나이가 나서 이야기를 마무리 짓더니 또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어느덧 하나둘 모여든 사람들은 이어지는 ‘기묘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스튜디오판 <기묘한 이야기>

 

영화 <기묘한 이야기>의 얼개다. <기묘한 이야기>는 이처럼 폭우라는 상황과 기차역 대합실이라는 장소를 설정해 생면부지인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은 뒤, 그중 몇몇을 스토리텔러로 세워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는 1990년 일본 후지TV에서 시작해 10년 간 인기리에 방영한 TV프로그램 <세상의 기묘한 이야기>의 극장판이다.

 

철 지난 영화 이야기를 꺼낸 건 한 TV프로그램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현재 KBS 1TV에서 방영중인 <이야기발전소>는 마치 스튜디오판 <기묘한 이야기> 같다. 차이가 있다면, 스토리텔러를 비롯해 일차적 청중이 스튜디오에 있고, 아마추어 스토리텔러가 직접 창작한 이야기라는 점 정도다.

 

그럼에도 <이야기발전소>는 분명히 <기묘한 이야기>의 분위기를 풍긴다. 먼저 스토리텔러의 이야기와 재연 화면이 어우러지는 스토리텔링 방식이 그렇다. 물론 이야기 중간에 내레이션이 스토리텔러를 대신하기도 하지만, 그 비중과 타이밍은 몰입을 헤치지 않는다.

 

또 역설적으로 <기묘한 이야기>와는 달리 아마추어 스토리텔러가 창작한 이야기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기묘한 이야기들은 한 편의 영화나 소설에 비해 거창하지 않다. 짜임새는 부족하되, 설정이 참신할 뿐. 그러니 ‘기묘’한 것이다. <이야기발전소>의 이야기가 이런 기묘함 닮은 이유는 이야기꾼들의 아마추어리즘 덕분이라는 말이다.

 

제2의 <해리포터>를 발굴하는 '스토리텔링 클럽'

 

그렇다고 <이야기발전소>가 스튜디오판 <기묘한 이야기>에 그치는 건 아니다. 외려 그보다 야심 찬 포부를 지니고 있다. ‘스토리텔링 클럽’으로서 가능성 있는 이야기를 발굴해 <해리포터> 시리즈같이 세계를 매혹시킬 만한 문화콘텐츠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실제 <이야기발전소>는 프로그램이 내건 기치처럼 문화산업 시대를 맞아 스토리텔링의 폭을 넓힌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많은 스토리텔링 관련 공모전이 있지만, 아마추어 스토리텔러에겐 여전히 문턱이 높기만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PC통신에서 탄생한 소설·영화 <엽기적인 그녀>나 인터넷에서 뜬 인기 작가 ‘귀여니(이윤세)’의 사례도 일반인에겐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다.

 

결국 완성도가 부족하거나 재수가 좋지 않다면, 보통 사람들의 좋은 아이디어는 사장될 수밖에 없을 터. 그 중에는 다듬고 보탠다면 '제2의 <해리포터>'가 될 보물이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를 위해 프로그램은 매주 3팀의 스토리텔러들이 출연해 자신이 써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전문 심사위원들과 방청객의 평가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중 1위를 한 스토리텔러에겐 3연승까지 매번 소정의 창작 지원금이 주어진다.

 

가까이 영화 <장화, 홍련>과 <디워>, 멀리 소설·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그랬듯, 이야기는 사전에 제시되는 전설을 모티브로 한다. 이를테면 ‘문바위 전설’은 ‘인형의 집’이라는 으스스한 이야기로, ‘청의동자 전설’은 ‘과부들’이라는 엽기적인 이야기로 변모한다.

 

참신한 이야기가 주는 매력, 검증 시스템은 강화해야

 

 

물론 원대한 목표는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재미를 전제로 할 때 성립한다. 더불어 그래야만 TV프로그램으로서의 당위성 또한 존재한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지대>의 한 코너에서 독립해 지난 28일 방송으로 7회를 넘긴 <이야기발전소>는 비교적 순항을 하고 있다.

 

이유는 단연 특유의 '참신함' 덕분이다. 물론 일부는 전형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식상하기도 하지만, 이따금 돋보이는 아이디어의 이야기가 색다른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는 뻔한 드라마·영화에 신물이 난 사람들에게 10분에서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맛볼 수 있는 신선한 자극이다.     

 

이를테면, 지난 28일 방송 중 ‘자린고비 전설’을 이야기 주제로 삼은 ‘밧줄, 소금, 매달린 사람’만 해도 ‘발상의 전환’이 돋보였다. 이야기는 한 사이코 개그맨이 웃음에 인색한 관객을 상대로 연쇄 살인을 저지른다는 내용이다. “쳐다보기만 하고 먹지는 않는 자린고비에 대한 굴비의 복수”라는 관점과 그럴 듯한 반전은 부족한 짜임새를 채우고도 남았다.

 

반면, <이야기발전소>에 제기된 문제도 있다. 전형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야기의 질적인 부분이야 보다 많은 스토리텔러의 참여를 이끌어내면 나아질 일. 문제는 기본적으로 담보돼야 할 '독창성'부터 흔들렸다는 점이다.

 

<이야기발전소>는 11월 8일 첫 방송에서부터, 표절 의혹에 휘말렸다. 이날 방송한 이야기 중 ‘우렁각시 전설’을 이야기 주제로 한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의 기묘한 이야기> 2005 봄 특별편'인 ‘미녀캔’과 너무 흡사하다는 시청자들의 지적이 이어진 것이다.

 

이에 제작진은 “출연자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의견 청취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조만간 “진위 여부 확인과 함께 제작진의 의견을 게시”할 예정이다.

 

<이야기발전소>에 주목하는 이유

 

<이야기발전소>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처럼 대단한 이야기는 아닐지언정 독창성이란 내피를 입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명작’ 역시 이런 어설픈 이야기에서 시작됐을 터이다.

 

언젠가 <이야기발전소>에서 많은 스토리텔러의 이야기가 완성도란 외피를 덧입고 세계로 나아가는 문화콘텐츠가 되길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덕원 기자는 ‘티뷰기자단’입니다.


태그:#이야기발전소, #스토리텔링, #기묘한 이야기, #표절 의혹,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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