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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순 역의 김현주
 박인순 역의 김현주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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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그리고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는 종종 오해와 편견 때문에 당연한 진리조차 통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약자에 결코 관대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연약한 '나'를 지탱해주는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신뢰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의지다.

지난 27일 종영한 KBS 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극본 정유경, 연출 표민수)는 ‘인간다움’에 대한 진정한 의미와 희망을 되짚어보게 하는 이야기로 많은 시청자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겼다.

물량공세를 한 대작 <태왕사신기>와 <로비스트>의 틈바구니에서 인기몰이에 한계가 있어 마지막회의 시청률은 8.1%(닐슨미디어리서치), 전체 평균 시청률은 약 7.2%에 그쳤다.

그러나 작품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의식과 극적 완성도에서 <인순이는 예쁘다>는 다른 대작 드라마에 비해 더 높은 평가를 받는 데 성공했다. 지리멸렬한 전개와 파행 편성, 용두사미식 구성 등으로 인기만큼이나 논란이 끊이지 않던 다른 드라마와 달리 <인순이는 예쁘다>는 방영 내내 네티즌들과 미디어의 호평 속에 남부럽지 않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유상우 역의 김민준
 유상우 역의 김민준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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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는 예쁘다>는 차별받는 '사회적 소수자'에 관한 드라마였다. 전과자인 여성, 그것도 살인이라는 중범죄를 지은 인간에게 우리 사회의 시선은 그리 관대하지 않다.

평생 살인 전과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힌 채 살아야 하는 한 여성이 출소 후 겪게 되는 세상의 오해와 편견, 그리고 역경 속에서도 새로운 삶을 찾아가려는 희망의 메시지는 어떤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 주변의 일상처럼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내 눈길을 끌었다. 

인순이의 삶과 정체성을 규정지어온 것은 언제나 그녀 자신이 아닌 세상의 시선이었다. 사람을 죽여서 옥살이를 한 무서운 살인범, 지하철에서 시민을 구한 영웅, 친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딸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녀의 인생 역정에서 그녀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삶은 거의 없었다.

인순이의 삶은 언제나 타인에 대한 직간접적인 종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원치 않은 오해와 기대, 편견의 엇갈림 속에서 의지할 데도 없고, 그리 똑똑하지도 못한 인순이의 인생역정은 어쩔 수 없이 '내가 원하는 나가 아닌, 세상이 원하는 굴레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나'에 대한 고민의 연속이다.

인순이의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아줄 수 있는 정답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었다. 자신이 원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영웅도 아니고, 내가 힘들면 언제든지 나를 도와줄 왕자가 나타나는 신데렐라도 아닌 평범한 소시민이지만, 적어도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는 세상이 아닌 자신에게 있다는 자각을 통해 인순이는 마음의 평안을 되찾는다.

변덕스러운 세상은 인순이를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하며 상처를 줬지만 자신이 진정 원하는 '자아'를 깨달은 인순이는 더 이상 자신의 불행을 세상의 탓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세상이 인순이를 용서한 것이 아니라, 인순이가 세상을 용서한 것이다.

표민수 PD와 정유경 작가 콤비는 인순이라는 인물을 통해 또 한 번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드러내 보였다. <백만장자와 결혼하기>의 부진 이후 한동안 연기활동이 뜸했던 김현주는 오랜만의 복귀작에서 인상적인 호연을 펼치며 한층 성숙해진 매력을 보여줬다.

<인순이는 예쁘다>의 등장인물
 <인순이는 예쁘다>의 등장인물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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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것은, 인물에 대한 연민을 부각시키기 위해 인순이를 너무 '예쁘게만' 그려내는 데 치중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방송 초반부터 지적받았듯이, 김현주가 연기한 인순이는 감옥에서 막 출소한 전과자나 세상의 풍파를 겪은 여성이라기에는 너무나도 곱고 순박하기만한 모습을 보였다.

더 큰 문제는, 외적인 묘사 이상으로 인물의 공감대를 높이기 위해 현실적 고민에 처한 인순이의 다중적 면모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때로 인순이는 과도하게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묶여 있는 인물처럼 보였다.

때로는 고단한 상황 속에서 어쩔 수없이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혹은 감정을 좀 더 직설적으로 발산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캐릭터에 대한 현실성이 높아지지 않았을까.

마지막회에서 인순이가 진짜 살인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반전도, 극 전개상 꼭 필요한 설정이었는가 하는 의구심이 남는다.

'살인'이라는 부담스러운 원죄를 거세함으로써 인순이의 행복찾기를 편안하게 지지할 수 있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과거의 속죄와 참회를 통해 구원을 찾아가던 이야기를 주제의식은, 졸지에 갑자기 세상물정 모르는 어느 여성의 과도한 희생과 신파 코드로 변질되며 현실성을 상실했다는 것은 다소 찝찝하다. 완벽한 해피엔딩과 순수 코드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오히려 극의 일관성을 해친 느낌은 옥에 티라 할 수 있다.


태그:#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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