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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대 경제대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전국민의 축제가 되어야 할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해외언론의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영국의 로이터 통신은 최근 이번 대선과 관련, 한 분석가의 말을 인용해 “보수진영에서 개를 후보로 내보내도 당선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 분석가는 경제를 망치고 집값 폭등을 방치한 것으로 보이는 좌파 성향의 퇴임하는 노무현 대통령 정부에 대한 반감 때문에 보수진영에서 개를 후보로 내보내도 당선될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One analyst joked that conservatives could put up a dog and still win because of the animosity toward left-leaning government of outgoing President Roh Moo-hyun, who is seen as having botched the economy and having allowed house prices to soar out of reach.) 로이터통신, 12월 17일

 

"보수진영에서 개를 내보내도 당선될 것"... "could가 아니라 이미 나왔삼"

 

아무리 재미있게 말한 농담이라지만 ‘뼈’가 있다. 이 기사에 대한 네티즌의 한줄 논평은 더 위트가 넘친다.

 

“could가 아니라 이미 나왔삼.”

 

이미 그보다 며칠 전에 영국의 권위 있는 경제전문지인 <파이낸셜 타임스(FT)>도 ‘한국은 정치 시계를 뒤로 돌릴 준비가 된 것처럼 보인다’는 제목으로 유사한 분석기사를 실었다.

 

“한국인들은 다음 주에 낡은(올드 스타일) 대통령을 뽑음으로써 시계를 되돌릴 준비를 하고 있다.”(South Korea looks set to turn back the political clock next week by voting in an old-style president.) <파이낸셜 타임스(FT)>, 12월 13일

 

한국인들이 왜 이런 선택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두 신문의 인식은 같았다. 광범위한 ‘반노 정서’ 때문이란다. 이 신문은 “이명박의 인기는 상당 부분 그가 노무현과 다르다는 데서 유래한다”며 “노무현은 한국 유권자들에게 하나의 실험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한국 사람들은 더 나은 경제를 위해서라면 민주주의 발전을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연세대 모종린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많은 정치분석가들이 ‘갓난아기’에 불과한 한국의 민주주의가 목욕물과 함께 버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그러나 “한국 사회는 지난 5년간 제도적 민주주의에서 많은 의미있는 발전을 보였다”며 “노 대통령은 국세청과 검찰, 법원을 행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기자 "마프펀드 회장이라고 하던데"... 이명박 "마포 해장국이냐"

 

일종의 ‘노무현 패러독스’다. 5년 전에 국민은 새로운 정치를 원했다. 그래서 ‘낡은 정치’를 거부한 ‘비주류 정치인’ 노무현 후보를 선택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비주류 정치인도 아닌 탈정치의 기업인 출신 대통령을 뽑으려 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기업처럼 운영해 보라는 주문이다.
 
‘반노 정서’가 이 후보에 대한 ‘묻지마 지지’로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그의 발목을 잡은 BBK 의혹 사건은 너무 복잡하고 전문적이다. 유권자들은 복잡한 사건을 받아들일 자세가 별로 안 되어 있는 것 같다. 이명박 후보는 그 복잡성을 10분 활용했다.

 

예를 들어 그는 BBK투자자문회사에서 운용한 MAF, 즉 밀레니엄 아비트리지 펀드와 관련, 기자들이 “이 후보님을 마프펀드 회장이라고 하던데요”라고 묻자 천연득스럽게 “마포 해장국이냐”고 반문했다.

 

7년 전 자신을 취재한 MBC 박영선 기자(현 국회의원)에게도 펀드 가입을 권유했던 그가 ‘마포 해장국이냐’고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것은 부도덕함의 극치다.

 

그는 2000년 당시 자신을 인터뷰했던 기자들의 기사를 ‘오보’라고 주장했다. 또 당시 ‘이명박 회장/대표이사’라고 적힌 명함이 나오자 역시 “위조된 것”이며 “김경준이 만든 것”이라고 해명했다.

 

자신의 육성 동영상이 나와도 '부정확한 표현'이나 '약간 부풀려진 것'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육성으로 “2000년 1월 BBK를 설립했다”고 말한 동영상까지 공개되었으나 그는 여전히 ‘부정확한 표현’이나 ‘약간 부풀려진 것’이라는 얼렁뚱땅으로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려고 한다.
 
“당시 신금융산업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일부 부정확한 표현이 있었던 것뿐이다.”(17일, YTN 방송연설)

 

“이번에 문제가 된 동영상도 당시 김경준과 함께 하려던 신금융산업을 소개하고 홍보하면서 약간 부풀려진 것일 뿐이다.”(18일, 기자회견)

 

자신이 BBK를 설립했으며 이미 첫해에 28.8% 이익이 났다는 말로 수 천명에게 직간접으로 투자를 권유했던 그가 ‘약간 부풀려진 것’일 뿐이란다.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위장전입도, 자녀 위장취업도, 탈세도, 마사지걸 발언도 죄다 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실수는 했지만, 대통령 되기에 부끄러운 일 안했다”고 주장한다. 일물일어(一物一語)라고 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위장전입도, 자녀 위장취업도, 탈세도, 마사지걸 발언도 ‘크고 작은 실수’일 뿐 모두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사전에는 거짓말과 참말의 경계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그는 지난 7월 한나라당 후보검증청문회 때 “이 후보가 인정한 위장전입과 관련해서 불법 전출입을 맹모삼천지교와 비교해 달라”는 질의가 나오자 “그 문제는 국민들에게 사과를 드렸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당시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때이긴 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부끄러운 일이다.”

 

위장전입에 대해 어떤 때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고 어떤 때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에게는 ‘일물일어’ 원칙이 무색하다. 결국 모든 것이 다 얼렁뚱땅이고 거짓이라는 얘기다. 어쩌면 그의 사전에는 거짓말과 참말의 경계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실수는 했지만, 대통령 되기에 부끄러운 일 안했다”는 식의, 그의 코미디 같은 언행의 불일치와 부조화에 네티즌의 ‘성지순례’가 줄을 잇는다(‘성지순례’는 인기 있는 게시물을 주기적으로 방문해 댓글을 남기는 인터넷 용어다.)

 

네티즌의 눈과 귀에는 이런 얼렁뚱땅이 통하지 않는다. 그 복잡한 BBK 사건도 네티즌의 손을 거치면 10초 안에 끝난다. 다음은 ‘알기 쉬운 BBK, 10초에 끝내기’라는 제목의 네이버 댓글이다. 편의상 국면 변화에 따라 네 단계로 구분했다.

 

네이버 댓글 '알기 쉬운 BBK, 10초에 끝내기'
 
1. 이명백군, 2000년에 김경순양과 결혼 2. 부부가 둘이 계를 만들어 계돈을 사방팔방에서 끌어옴 3. 느닷없이 이혼 4. 계주 김양 곗돈 들고 도미 5. 피해자들 중 일부 자살 6. 미국서 김양 체포됨 7. 이군 "결혼 한 적도 없고 계돈 모은 적도 없다." 8. 청첩장 발견

 

9. 김양 귀국 "이군과 사랑하는 사이였다." 10. 이군 "절대 그런 적이 없다. 청첩장은 위조다." 11. 혼인신고서 공개됨 12. 이군 “혼신신고서도 위조다.”

 

13. 검찰 “혼인신고서, 청첩장은 위조이고 김양이 독신이라고 자백했다.” 14. 김양 “검찰이 무서워 거짓말 했다. 친정엄마한테 편지로 썼다.” 15. 이군 “편지도 위조다. 다 네거티브다.”

 

16. 결혼식 동영상 전격공개 17. 이군 “결혼식은 했지만, 결혼은 아니다.”

 

검찰은 이명박 후보에게 면죄부를 줬지만, 이처럼 네티즌은 이 후보의 해명을 조롱하고 있다. 문제는 조롱으로만 끝나면 이것 역시 또 다른 ‘언행의 불일치’라는 점이다. 네티즌의 이런 ‘유쾌한 반란’이 온라인 안에만 머물지 않고 오프라인에서의 적극적인 투표와 선택으로 이어질 때 세상을 바꿀 수가 있다.

 

"검찰은 사법적으로 판단하고, 국민은 청와대 보낼지 말지를 판단해야"

 

지난 13일 검찰이 BBK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을 때, 이 사건의 본질과 의미를 가장 적확하게 짚은 대선후보는 법률가인 이인제 민주당 후보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검찰은 이명박을 감옥에 보내야 할 것인지 아닌지를 사법적으로 판단하는 것이고, 국민은 이명박을 청와대에 보내야 할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

 

죄가 되는지 안되는지를 판단하는 검찰의 잣대와 도덕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는 국민의 눈높이는 다를 수밖에 없고 또 달라야 한다.

 

그래도 판단하기 어려우면 이명박 후보의 육성이 담긴 동영상을 보시라. 흐릿한 화면 탓인지 마치 ‘BBK 교주’ 같은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이 후보의 육성이 담긴 동영상을 보고 나면 선명한 판단 기준이 떠오를 것이다.


태그:#정치톺아보기, #이명박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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