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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욕실에는 여자가 샤워를 하기 위해 들어가 있었다.

 

-오늘 마트에서 이상한 일이 있었다. 정체모를 인간들이 총을 쏘아 대었고 여자를 구해 주었어. 내가 구해준 여자는 지금 내 방에서 샤워중이야.

 

경수는 자주 가는 인터넷 사이트에 이런 글을 올렸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재미없어.

-전 마트에 가서 미사일을 피한 후 슈퍼모델을 납치해왔어요. 그리고 호텔에 가서….

-1 : 1 성인채팅 WWW….

 

“쳇, 찌질이들.”

 

경수는 금방 흥미를 잃고 여자가 벗어놓은 옷을 바라보았다.

 

“수건 좀 주실래요?”

 

경수는 옷장에서 뽀송뽀송한 새 수건을 꺼내어 슬그머니 열린 욕실 문에 가져다 대었다. 여인의 손이 나오더니 수건을 채어갔다.

 

“엉큼한 생각 말아요!”

 

여자의 말에 경수는 속으로 콧방귀를 꼈다.

 

‘원 여자가 부끄럽지도 않나. 처음 보는 남자 집에 가서 샤워까지 하다니. 생김새도 그렇고 저런 여자는 질색이야.’

 

사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며 나온 여자는 경수가 말없이 건네준 커피를 홀짝이며 컴퓨터와 경수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아까 일을 블로그에라도 올린 거예요?”

“아니오.”

 

경수는 게시판이 떠 있는 화면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괜히 마우스 커서를 위아래로 옮겨 다녔다.

 

“내 이름은 하영희예요.”

“난 노경수.”

“노용수?”

 

경수는 괜히 짜증이 났다.

 

“귀에 물이라도 들어갔어요? 경수라고요 경수. 용희씨!”

 

영희는 피식 웃으며 커피잔을 살살 돌려 보았다.

 

“아까 그 일 괜히 넷상에서 떠들고 다니지 마세요. 그 사람들 보통내기가 넘으니까… 어쩌면 이 집에 내가 있는 줄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 사람들이 뭐하는 사람들인지는 몰라도 이 아파트에서 소동을 일으켜서 좋을 건 없을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을 당하게 된 거예요?”

 

“그게 좀 황당해요. 다짜고짜 납치된 건 아니고 처음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를 기소중지자라고 경찰이 불심검문해서 체포되어 구치소까지 갔어요.”

 

영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죽거렸다.

 

“울고불고 항의도 했지만 도통 말이 통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검은 양복 사내들이 와서 절 꺼내주더라고요. 억울하게 잡혀온 거 안다. 그건 다 자기들이 한 짓이다. 자세한 사정은 천천히 얘기하겠다…. 그런데 여자의 육감이란 게 이 사람들 말이 뭔가 믿음이 안 가는 거예요. 품속에는 영화에서 본 권총집도 보이더라고요. 배가 너무 아파서 화장실에 가야 되니 어디 가까운 마트에 차를 좀 세워 달라고 했죠.”

 

영희의 말은 따발총처럼 이어졌다. 경수가 중간에 그 말을 잠깐 끊고 물었다.

 

“잠깐, 그럼 그 사람들이 개인정보를 조작하기라도 했단 말이야?”

 

영희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그래요. 난 저지르지도 않은 일로 절도 용의자가 되어 있었어요. 아무리 항의해도 경찰은 이렇게 기록이 남아 있는데 어디서 발뺌이냐고 윽박지르기까지 했지요. 그런데 왜 반말이세요?”

 

경수는 영희의 항의는 무시하고 중얼거렸다.

 

“그 정도 개인정보 조작이 가능하다는 건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든가 그 사람들이 경찰 내지 국정원과 관련이 있다는 얘기밖에는 안 되는데 이상하네.”

 

“내가 왜 이런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런데 자꾸 왜 반말이람.”

 

“나 서른셋이거든? 넌 몇 살인데.”

 

“… 난 서른이요. 뭐 별로 나이차도 안 나네.”

덧붙이는 글 |
1.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태그:#소설, #결전,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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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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