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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시작하며

소설 <결전>은 각각의 인물들이 역사, 또는 가상 역사의 에피소드 속에서 얽혀가며 종반부로 치달아가는 옴니버스 소설입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얼마나 많은 투쟁의 역사가 있었을까요? 그 투쟁의 역사속에서 조용히 잊혀져간 인물들은 어떠한 한을 가지며 살아갔을까요?

이런 의문에서 소설 <결전>은 시작됩니다.

<결전>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의 각각 제목은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이며 독자분들은 독자적으로 보이는 이야기 속에서 보이는 연관성을 찾아보며 결론을 유추해 보시기 바랍니다. / 최항기


노란 민들레가 가득 피어 있는 따사로운 가을의 들판에는 수백 명의 장정들이 가득 모여 돌낫으로 굵게 여문 이삭을 드리우고 있는 벼의 허리춤을 연실 베어내고 있었다. 누런 벼이삭이 쌓일 때마다 장정들은 절로 흥이 났고 이때를 기다리기도 했다는 듯이 옆에서 일하는 양을 느긋하게 지켜보던 늙은이 하나가 길게 소리를 내었다.

“어어기야 디여라챠 어허기여 디어라차.”

딱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장정들은 그 소리에 입을 모아 흥겹게 장단을 맞추었다.

“얼쑤 얼쑤 디어라차 어히야 디혀라 넘어간다.”

장정들의 손놀림이 점점 빨라지고 옆에서 쌓아놓은 볏단을 짊어지고 다니는 일을 맡은 사람들도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두레마을은 벼 추수가 다 끝나면 돼지를 잡아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햅쌀로 밥을 지어 사람들이 배불리 먹은 후 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할 터였다. 두레는 그 주위에서 가장 크고 풍족한 마을이었다. 다른 마을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때에도 두레 마을만큼은 먹거리가 단순해진다는 불편함 정도를 감수할 정도였다.

“밥 왔어요. 밥이 왔어요. 모두 밥을 자시요.”

수 십 명의 여인들이 광주리를 이고 우르르 몰려와 마른자리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펼쳐 놓았다. 장정들은 하던 일손을 놓고 천천히 몰려와 줄을 서서 잡곡을 똘똘 뭉친 짭짤한 주먹밥과 익힌 채소, 나물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볕이 잘 드는 나무 아래 모여 이곳저곳에 사사오오 모여 달게 밥을 먹었다. 장정들이 밥을 나누어 받는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늙은이의 눈빛이 어떤 이를 보더니 갑자기 날카롭게 빛났다.

“거, 자네 이리 좀 와보게.”

주먹밥을 손에 든 장정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엉거주춤 선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래 자네 말일세. 자네 부모님이 뉘신가?”

장정은 여전히 어쭙잖은 태도와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아 내가 묻지 않는가? 부모님이 뉘신가?”

늙은이가 약간 화가 난 듯 큰 소리로 외치자 사람들은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늙은이와 장정을 번갈아 살폈다. 늙은이는 보통 인물이 아니라 두레 마을의 장로중 하나이자 그들 중 가장 우두머리 족장인 하달이라는 자였다. 하달은 웬만한 일에 함부로 목청을 높이거나 남을 꾸짖는 법이 없는 자였다. 그런 족장인 하달이 난데없이 장정 하나를 두고 크게 소리를 치니 자연히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장정은 더욱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하달입니다.”

“뭐라?”

하달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적어도 두레마을에서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이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달은 손을 번쩍 치켜들어 장정을 가리키며 크게 외쳤다.

“누가 이 자를 아는 이가 없는가?”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볼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 장정의 몸이 옆으로 슬쩍 기울었고 하달의 목에서 조금은 쉬어 갈라진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 놈 잡아라!”

난데없는 상황에 멈칫거리는 사람들의 사이를 뚫고 그 장정은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밥을 먹으며 상황을 보던 눈치 빠른 장정 셋이 그 뒤를 쫓아갔지만 대다수는 대체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우두커니 서 있을 따름이었다.

“뭘 하고 있느냐! 저 놈을 잡아야 한다. 잡아!”

뒤를 쫓던 장정들은 하달의 독촉에 더욱 힘을 내어 달려갔지만 오히려 앞서 달리는 장정과의 간격은 더욱 더 멀어질 뿐이었다.

“허 그놈 되게 빠르구나! 에이 퉤이!”

결국 도망가던 장정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야 추격을 포기한 장정들은 숨을 헐떡이며 털썩 엉덩이를 깔고 주저앉고 말았다. 조금 뒤 하달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려와서는 장정들을 질책했다.

“뭣들 하는 거냐! 어서 쫓아가 잡지 않고!”

“봄날 숫 노루만큼 빠른 놈입니다. 이젠 보이질 않으니 어찌 쫓아가겠소. 그런데 저 놈은 옆 마을에서 일을 돕고 양식을 얻으러 온 자가 아니었습니까?”

장정들 중 하나가 슬쩍 하달의 눈치를 보면서도 자기 할말을 다했다. 하달은 장정들을 노려 보며 소리쳤다.

“큰 일이 생겼으니 너희들은 당장 마을로 돌아가 장로들에게 해가 진 후 모이라고 해라.”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태그:#결전, #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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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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