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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대 지장암으로 가는 들머릿길.
남대 지장암으로 가는 들머릿길. ⓒ 안병기

지장암은 오대성지 중 지장성지로 일만의 지장보살님들이 항상 상주하신다는 곳이다. 지장암은 월정사에서 그리 멀지 않다. 월정사를 나와 상원사 쪽을 향해 조금 가면 돌다리가 나온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계곡의 물을 바라본다. 비 온 뒤끝이라 그런지 아주 깨끗하다.


다리를 건너자, 곧장 지장암으로 가는 길이 기다리고 있다. 길가 옆으로 도열한 전나무와 낙엽송이 나그네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 넓지도 않고, 좁지도 않은 알맞은 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길이 너무 짧고 일직선이다. 조금 사색 속으로 접어들 만하니, 지장암이 금세 나타나서 "나, 여기 있소" 하고 헛기침을 한다.


처음에 지장암은 기린산 정상 가까이에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지장암 뒤인 중부리라는 곳으로 한 번 옮겼다가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은 것은 조선시대 말이라고 한다.

 

 지장암 전경.
지장암 전경. ⓒ 안병기
이 양반들은 수도는 않고 노상 청소만 하면 사나. 암자가 아주 깨끗하다. 지장암은 오대산에서 유일한 비구니의 암자이다. 비구니 암자는 어디나 정갈하지만 이곳은 그동안 내가 다녀본 어느 암자보다 정갈한 것 같다.
 
방한암 스님께서는 1925년, 오대산 상원사에 들어오신 후로 입적할 때까지 27년간 산문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1930년경, 률노, 해노라는 두 비구니 스님이 한암 스님을 찾아왔다. 그리고 나선 이곳 지장암에 머물면서 결제와 해제도 없이 용맹정진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 선방이 생겨난 것이다.
 
그 뒤 지장암은 성진 스님과 혜종 스님, 정안 스님으로 이어지는 3대를 거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기둥에 걸린 한글 주련이 인상적인 지장전
 
 암자의 중심 전각인 지장전.
암자의 중심 전각인 지장전. ⓒ 안병기
 지장전의 한글 주련.
지장전의 한글 주련. ⓒ 안병기
절의 중심 전각이라 할 수 있는 지장전을 향해 돌계단을 오른다. 전통 석조건물들을 보수하고 복원하는 솜씨가 뛰어나 석공으로서 명장 칭호를 받은 임동조씨가 세운 계단이다. 지장전은 새로 짓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1975년에 지은 건물이 낡고 비좁았던 모양이다.
 
지장보살님은 한 사람의 중생이라도 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원력을 세우시고, 자신의 성불마저 미루신 분이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영가 천도 등 민간신앙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어쩌면 지장보살이야말로 종교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보살인지도 모른다. 사후 세계에 대비하는 측면이 강한 게 종교의 속성 아닌가. 
 
기둥에는 한글 주련이 걸려 있다. 만날 한자로 된 주련만 보다가 한글 주련을 보니 색다르다. 알아보지도 못할 한자를 적어 놓는 것보다 얼마나 좋은가.
 
근세 비구니계 수행자를 대표하는 인홍 스님이 출가했던 암자
 
 기린선원 금강문.
기린선원 금강문. ⓒ 안병기
 임시 법당으로 쓰고 있는 기린선원
임시 법당으로 쓰고 있는 기린선원 ⓒ 안병기
지장전 왼쪽엔 'ㄴ' 자형 전각인 기린 선원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개설된 비구니 선방이다. 비구니 선원이 자리를 잡는 데는 근세의 비구니계를 대표하는 인홍 스님의 역할이 컸다.
 
원허당 인홍 스님(1908~1997)은 근대의 선지식 만공 선사께 법을 받고 나서 비구니 선풍을 크게 진작시킨 분이다. 그는 1941년, 이곳 지장암에서 출가했다. 스님은 1954년, 종회의원으로서 대처승을 몰아내는 종단 정화불사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1997년 4월, 입적하실 때까지 용맹정진을 쉬지 않은 분으로 이름나 있다.
 
삼세불조(三世佛祖) 가신 길을 나도 가야지/ 구순 생애 사바의 길 몽환 아님 없도다/ 일엽편주처럼 두둥실 떠나가는 곳/ 공중에 둥근 달이 밝을 뿐이네 - 인홍 스님 '열반송'
 
오늘날의 기린선원의 모습을 만든 것은 혜종 스님이다. 스님은 삼 년여에 걸친 선원 불사를 이루고 1995년 입적하셨다. 지금은 결제 때면 40여 명의 비구니들이 참선한다고 한다.
 
다람쥐의 정경도 눈물겹긴 하지만
 
 요사채인 '육화요'와 삼성각.
요사채인 '육화요'와 삼성각. ⓒ 안병기
 
가만가만 발소리를 죽여가며 요사채를 둘러본다. 공양간을 들여다 보니, 2001년도에 나온 법정 스님의 수상집 <버리고 떠나기>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강원도 두메산골로 터를 옮겨 그곳에서의 생활과 사색을 담아 펴낸 책이다.
 
도살꾼에게 잡혀가 비명횡사한 개의 혼백을 달랠 수 있는 방도를 묻는 친지의 편지를 받은 법정 스님은 몇 해 전 오대산 지장암에서 실제로 있었던 '다람쥐를 위한 49재'의 일을 떠올린다.
 
겨울철 양식을 준비하느라고 아주 분주하게 움직이는 다람쥐를 지켜본 지장암 비구니는 그 굴을 파고 도토리와 알밤이 소두 한 말 남짓 저장된 것을 발견한다. 비구니 스님은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도토리묵을 해먹을 요량으로 죄다 꺼내 버린다.
 
그 다음 날 아침 섬돌 위에 벗어놓은 신발을 신으려고 했을 때 섬뜩한 광경을 보고 그 스님은 큰 충격을 받았다. 겨울 양식을 모조리 빼앗긴 다람쥐는 새끼를 데리고 나와 그 비구니의 고무신짝을 물고 죽어있었던 것이다. 이런 다람쥐를 어찌 미물이라고 지나쳐 버릴 수 있겠는가.
 
그 비구니는 뒤늦게 자신의 허물을 크게 자책하였다. 자신의 고무신짝을 물고 자결한 그 다람쥐 가족들을 위해 이레마다 제를 지내 49재까지 지내주었다고 한다. - 법정 수상집 <버리고 떠나기> 중 '잔인 무도해진 우리 인생'에서
 
생각해 보라.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도토리묵을 해먹을 요량으로 죄다 꺼내 버린" 비구니도 오죽 먹을 것이 없었으면 다람쥐 것을 훔쳤겠는가. 다람쥐의 정경도 눈물겹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난 스님에게 더 동정이 간다. 더욱이 다람쥐를 위해 49재까지 지내주었다지 않는가. 
 
이 글에서 법정 스님은 개고기 먹는 행위를 크게 지탄한다. 그러나 너무 기준이 높은 이상은 실천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는 것도 사실일 터.
 
날이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지장암 스님에게 동대 관음암으로 가는 길을 물으니, 친절히 가르쳐 주신다. 2km에서 조금 모자라는 거리라고 한다. 걸어가면 족히 20여 분은 걸릴 것이다. 언덕 위에 있는 부도의 주인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걸음을 빨리해서 관음암으로 향해 간다.
 
 언덕 위의 부도.
언덕 위의 부도. ⓒ 안병기

덧붙이는 글 | 기린산 남대 지장암은 지난 17일에 다녀왔습니다. 


#오대산 #지장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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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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