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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한국 고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제대로 된 건국 신화의 형상화를 기대한 한국인들이다. 이러한 점을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가 판타지를 통해 어느 정도 채워 주리라 기대되었고, 그에 대한 소기의 목적은 성취된 것으로 보인다.

 

그만한 신화적 상상력을 구성하기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판타지가 개입하면 반드시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불평이 쏟아져 나오게 마련이다. 이러한 불평은 높은 기대치에 따른 욕구 불만족에 기초로한 점도 있다. 기대가 높으면 쓴소리도 많아진다.

 

한 민간 역사 연구회가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는가 하면, 해당 방송국 앞 시위를 통해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역사 왜곡을 성토하고 있다. 여러 가지 지적이 있지만, 핵심은 <태왕사신기>가 광개토대왕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가운데 백제의 위대함과 일본의 시조 관계를 도외시했다는 지적이다.

 

그들은 이 같은 <태왕사신기>의 태도가 결국 일제가 행한 광개토대왕 비문의 날조와 다름이 없다고 말한다. 일본자금이 <태왕사신기> 제작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들어 일부러 백제의 역사를 축소하는 음모론이 개입되었다고 문제 제기한다.

 

이러한 주장이 반드시 맞다 할 수는 없으나 고구려 사극이 대거 등장하면서 백제의 역사가 위축되거나 역사 저편으로 밀려간 것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 <태왕사신기>를 볼 때 위축된 것은 백제만이 아니라 단군의 (고)조선도 포함이 된다는 것이다. 아니 쥬신 제국에 대한 조명도 없이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을 역사의 중심을 환원시켜버렸다.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호족의 여신 가진(문소리)의 만행에 복수의 화신이 된 웅족의 새오(이지아)로 인해 환웅(배용준)은 이상적 국가의 지상 건설에 실패했음을 자인하고, 하늘나라로 돌아간다. 그런데 순식간에 새오와 환웅 사이에 태어난 단군은 물바다가 된 지상에 버려진다. 물론 단군은 제왕의 호칭이기는 하다.

 

사신(四神)도 자신의 직계 아들 단군 곁에 놔두는 것이 아니라 따로 분산시켜버린다. 그러면서 때가 되면 새로운 쥬신의 왕이 하늘에서 보낼 것이며, 그때 사신이 깨어날 것이라고 한다. 정작 자신의 아들은 버려두고 새삼 쥬신의 왕을 새로 보낸다고 한다. 환웅의 뜻을 받들었던 단군의 나라 조선-쥬신의 나라는 그야말로 새~ 됐다.

 

수많은 동북아시아의 민족들이 갈라져 나왔던 원형의 나라 (고)조선이 별거 아닌 나라로 취급받는 것이다. 단군 왕들이나 조선은 하찮고 쥬신의 적자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혹은 호태왕이 된다. 하지만 여기에서 조선(朝鮮)은 여러 가지 학설이 많지만, 대체적으로 쥬신의 한자 표기에 따른 것이다. (고)조선은 동이족에게 마치 공자가 이상으로 삼은 주나라와 같다. 그렇다면 쥬신의 제왕을 (고)조선에서 제외하면 비약이 된다. 즉 (고)조선보다 일개 고구려가 상위에 위치하는 것은 너무 큰 비약이다.

 

다잡아 물으면, 단군이 세웠다는 조선이 더 큰 나라였을까? 아니면 고구려였을까? 다시 말하면 (고)조선이 더 넓은 강역을 유지했을까? 아니면 고구려 아니 광개토대왕이 더 큰 강역을 가졌을까? 우리의 상식으로는 (고)조선이다. 호태왕은 대개 조선-쥬신의 옛 강역을 가장 많이 회복한 정복군주다. 아니, 강역으로 보게 되면 고구려보다 발해가 더욱 넓었다는 지적도 있다.

 

요컨대, <태왕사신기>는 단군의 (고)조선-쥬신의 나라를 한순간에 건너뛰어 버리고 고구려의 호태왕으로 무리하게 치달아 버린다. 광개토대왕에 너무 함몰되어 (고)조선이라는 나라를 배제시켜버렸기에 가능했다. 지나치게 고구려를 강조하는 드라마의 무리한 도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조선이 없으면 쥬신의 제왕의 부활이 이루어야 할 모델이 없어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한 가지 더욱 이상야릇한 것은 하늘의 점지를 받았다는 왕들이 실제로는 일찍 죽었다는 사실이다. 드라마 <주몽>에서는 삼족오의 상징을 필두로 추모(주몽)를 하늘이 내리신 혹은 세상을 구할 운명을 타고난 절대적 영웅으로 그린다. 하지만 40세에 단명한 사실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더구나 그 위대한 광개토대왕은 39세에 죽는다. 물론 자신의 소명을 다했기 때문에 하늘로 올라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같은 인간이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지나친 신비화에 대한 경계의 필요성이다.

 

물론 왜 환웅의 시대에서 바로 조선을 건너뛰고 고구려로 갔는지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환웅이라는 신화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고구려)를 연결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광개토대왕을 가장 위대한 역사적 실존 인물로 그리고 한민족의 우월성을 드러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을 적자로 삼고, 고조선을 배제한 것은 조선에서 갈라진 여타민족을 배제하고 오로지 한민족을 중심으로 한 정통성을 세우고자 하는 또 다른 배타적 민족의식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의식은 오히려 동북아시아의 주도권을 주장하는 데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조선에서 갈라진 수많은 나라와 민족들을 끌어안아야 동북아시아의 주인이 누구인지 주장을 할 수 있다. (고)조선이 중요한 이유이고 최근 학계 일각에서 (고)조선에 주목하는 이유다. 또한 <태왕사신기>의 이러한 태도는 수많은 민족들을 아울러야 하는 다민족 국가의 시대에서 함의점을 주기에는 부족하다고 여겨질 뿐이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서프라이즈에도 보낸 글입니다.


태그:#태왕사신기, #고조선, #단군, #드라마, #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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