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유니콘스 시절 심정수. 그는 사구(死球)에 대한 공포로 검투사 헬멧을 착용하게 되었다
ⓒ 현대 유니콘스
"심정수 헬멧은 왜 저렇게 생겼어?"

몇 해 전 삼성과 LG의 경기가 있던 잠실야구장. 심정수의 '아픈 과거'를 알 리 없는 친구가 내게 물었다. 보통 타자들과는 다른 특이한 헬멧을 착용한 심정수가 친구에겐 신기했던 것이다. 일명 '검투사 헬멧' 한동안 심정수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헬멧이지만 처음부터 그가 검투사 헬멧을 착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검투사'를 자처한 이유는 140km가 넘는 투구를 두 번이나 얼굴에 맞고 난 뒤였다. 그는 2001년 6월 롯데 전에서 첫 번째 사구로 광대뼈가 함몰되는 부상을 당하며 한 달간 경기장을 떠나야 했고, 2003년 4월 롯데 전 두 번째 사구를 맞고는 무려 25바늘이나 얼굴을 꿰매야 했다.

그는 두 번의 사구로 많은 것을 잃었다. ‘헤라클래스’라는 별명처럼 거침없는 타격을 보여주던 심정수였지만 사구의 공포로 몸 쪽 코스에 약점이 생기자 성적도 하락했다. 타자가 착용할 경우 타석에서 시야를 가린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검투사 헬멧'이었지만 당시 그로서는 몸 쪽 공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전 두산 외국인 선수 쿨바, 파울타구 맞고 사망

7월 23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프로야구 마이너리그 경기에서 1루 베이스 코치가 파울 타구에 머리를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사망한 코치가 지난 2003년엔 한국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마이크 쿨바(35·mike coolbaugh)라는 사실이다.

AP통신에 의하면 콜로라도 로키스 산하 더블A팀 툴사 드릴러스 코치인 쿨바는 아칸소 트래블러스 전에서 1루 코치 박스에 서 있다가 9회 티노 산체스가 때린 강한 파울타구에 머리를 맞아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사망했다.

야구경기 도중 타자나 야수가 공에 맞아 다치는 일은 종종 일어나지만 타자가 친 타구에 코치가 맞는 일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쿨바 코치에게 운이 없었다고 말하기 보다는 그간 무사했던 다른 루심이나 코치들의 운이 좋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몸에 보호대를 착용한 주심이나 포수와 달리 아무런 보호 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각 루심과 주루코치는 항상 파울타구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잘 맞은 라인드라이브 타구의 속도가 시속 160km를 넘나드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에 머리를 맞고도 멀쩡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야구공은 코르크나 고무로 만든 작은 심에 실을 감고 그 위에 고무를 바른 다음 다시 흰색의 말가죽이나 쇠가죽을 실로 꿰매어 만들어진다. 1920년 이전에는 코르크가 들어있지 않은 물렁한 공이었지만 반발력을 높이기 위해 딱딱한 코르크 심을 첨가했다. 이른 바 '데드 볼(죽은 공) 시대'에서 '라이브 볼(살아 있는 공) 시대'로의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라이브 볼 시대'의 개막과 함께 홈런 개수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실례로 1919년 29개의 홈런을 기록했던 베이브 루스는 1920년 '라이브 볼 시대'의 개막과 함께 53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늘어난 홈런 개수에 타자들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야구공이 딱딱해지고 반발력이 증가한 탓에 투수가 던지는 공이 '살인무기'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야구 동아리에 가입되어 있는 탁경(26·건국대 수의학과)씨는 올해 초 코 수술을 받았다. 경기 수비도중 높이 뜬 플라이 볼을 잡다가 놓친 공이 그대로 코를 강타한 것이다. 의사의 진단은 코뼈 골절. 그는 사고의 여파로 한 달이나 학교를 쉬어야 했다.

야구공에 부상을 당했을 때의 상황을 묻자 탁경씨는 "공에 맞았을 때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기억나는 건 운동장에 엄청난 양의 코피를 쏟았다는 것 뿐"이라며 "아직도 밤에 누우면 공에 맞았을 때의 둔탁한 소리가 들려온다"고 말했다.

부상 전 우익수를 맡았던 탁경씨는 부상 후 얼마동안은 수비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수비 연습 중에 뜬 공이 날아오면 얼굴부터 가렸다"며 "직접 맞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야구공에 맞았을 때의 공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화 인터뷰 도중 떨려오는 그의 목소리에서 그때의 충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마음 스포츠클리닉 엄성웅 원장은 "야구공에 직접 맞을 경우 그 충격은 엄청나다"면서 "헬멧을 쓰고 있더라도 야구공처럼 속도감 있는 딱딱한 물체에 맞으면 일시적으로 뇌압이 증가해서 사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140g 안팎의 무게에 약 7.3cm 지름의 야구공. 수많은 야구팬을 웃기고 울리는 드라마의 주인공이지만 때때로 그것은 엄청난 위협으로 다가온다. 몇 년 뒤 야구장에선 보호 장비를 착용한 주루코치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조광민 기자는 <오마이뉴스> 6기 인턴기자 입니다
쿨바 심정수 검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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