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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코리아, 코리아!> 홈페이지.
ⓒ EBS
개그맨들이 나와서 노래를 하고 퀴즈를 푼다. 오락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오락 프로그램이 깔깔깔 재미있지가 않다. 새로 알게 되는 것이 꽤 있고 못 느꼈던 것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면 교양 프로그램인가?

오락 프로그램이라고 하기에는 오락에 집중하지 않고 교양 프로그램이라고 하기에는 '일부러' 가볍다. 모호한 성격의 프로그램 하나가 크게 시청률을 올리지도 않고 별달리 주목받지도 못하면서 4년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2004년 3월에 첫 방송을 한 EBS의 <코리아, 코리아!>가 그것이다.

영화도 노래자랑도 아닌데, 일요일 오후에?

"<코리아 코리아>는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남북의 화해에 기여하고자 기획된 프로그램으로, 지역적으로는 남과 북, 이념적으로는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균형잡힌 시각으로 통일 문제를 바라보고자 노력하겠다"는 것이 제작진의 의도이다.

이것은 공중파 방송이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의도이기도 하다. 오히려 제작진이 추구한 균형 감각은 다른 지점에서 장점을 발휘하는데, 프로그램의 성격을 교양과 오락 사이의 어느 곳에 자리잡도록 한 것이다.

통일 프로그램으로서 교양의 목적을 전면에 내세울 때 자칫 새벽이나 심야 시간대를 떠돌게 될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코리아, 코리아!>의 본방 시간인 일요일 오후는 사실 시청률의 편재가 두드러지는 시간이다. 젊은 층은 영화 프로그램으로 쏠릴 것이고, 중장년층의 일부는 노래자랑 프로그램으로 몰릴 것이다. 그 틈바구니에서 <코리아, 코리아!>는 수줍어서 나서지 못하는 학생의 성실함처럼 한껏 독려되어야 할 장점을 쌓아가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남쪽과 북쪽 출신의 패널들이 양쪽으로 갈라 앉아 좌담을 벌이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세 개의 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하나는 새터민들을 대상으로 리서치를 벌인 결과를 퀴즈로 푸는 것이다.

남쪽에 와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거리를 좁혀보자는 것. 사실 새터민들은 외부인과 내부인의 경계에 있다. 내부인이지만 외부인처럼 남쪽의 문화를 더 정확하게 꿰뚫어볼 수 있는 것이다.

새터민들, 남쪽 문화를 더 정확하게 꿰뚫어본다

▲ 남·북 출연자들.
ⓒ EBS
일례로 지난 일요일(1일)의 퀴즈는 "나는 남쪽에서 ( )한 사람이 구속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남쪽은 인심이 참 야박하구나 생각했다"고 할 때, 괄호의 내용을 맞히는 것이었다. 그 때 새터민 패널 중 한 명이 병역 비리를 거론했다.

'전 인민의 군사화'를 지향하는 북한이라고 배웠는데, 오히려 병역 문제에 목숨 걸고 토론하고 목숨 걸고 반대하며 목숨 걸고 지켜내고 있는 남한 사람들의 모습이 객관적으로 볼 때 야박하거나 지나치거나 유난하게 보일 수 있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외부에서 온 인류학자가 다른 집단 내부의 속성을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부인들은 그런 외부의 시선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결국 그 퀴즈의 답은 "사과 상자를 준 사람이 구속되었다는"이었다. 참 실소가 나오는 답이었다. 너무 당연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그것이 남한 사회였다.

새터민 패널들은 대상화되지 않는다. 대개 북한을 이해한다는 명목 하에 가난하고 후진적인 생활상을 부각하거나 전근대적인 의식을 강조하는 등 남한이 이끌어주고 도움을 주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시선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코리아, 코리아!>의 가장 큰 장점은 그런 이분화와 대상화의 오류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제작진만의 계획이 아니라 전 출연자들의 태도에 잘 녹아 있다. 강원도 출신의 진행자 안혜경은 다른 출연자의 강원도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그쪽 사람들이 무슨 원주민인 줄 아세요?"라며 응수했다.

'그쪽 사람들을 원주민 취급하지 맙시다'라는 말은 매우 중요하다. 사실 내 안의 저 깊은 곳에는 서울이 아닌 곳은 시골이고, 시골은 가난하고 뒤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있고 나도 모르게 어느 틈엔가 불쑥 밖으로 삐져나오기도 한다. 우리 안에 중심과 변방의 이분법이 있음을 숨기지 않고 지적하며 경계하고자 할 때 남한과 북한의 이분법과 대상화도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남쪽 패널로 나오는 개그맨들은 <코리아, 코리아!>에 살짝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북의 모습을 희화화시키는 것에 재간을 보여 왔던 개그맨들이 진보된 태도를 가져야 하는 이런 형식의 대면 좌담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북쪽 출신의 새터민 패널들에 비해 연령층도 젊고 직업군도 단조롭게 구성되었지만, 남쪽의 개그맨들은 진지함과 화기애애함의 적절한 조화를 잘 만들어주고 있다. 그들은 북한이나 전쟁에 대해 직접적인 기억이 없고 70~80년대 북과 관련된 편향된 교육을 받지도 않아서 무모한 적의나 저급한 우월감에 젖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이제 북한과의 관계라든가 통일 이후를 대비하는 노력에 관해서는 늙은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가르침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난하고 불쌍한 북한'은 없다

꼭지 중의 또 하나는 '4인 4색 다사한 남북처녀들'이라는 소제목으로 2명의 남쪽 여성과 2명의 북쪽 여성의 만남을 일상적인 다큐멘터리로 보여준다. 전부 20대인 이들은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해 언니 동생으로 부르며 함께 여행도 간다. 이전에는 3명의 남쪽 총각과 3명의 북쪽 총각이 데굴데굴 한 집에 모여 사는 동거 이야기를 다루었었다.

이 꼭지가 재미있는 이유는 남과 북의 분열과 괴리에 대한 역사성 없이 접근하기 때문이다. 결국 통일 이후 남과 북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처리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은 역사성 없는 접근법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조급한 결론마저 만들어내고 싶다.

통일 이후의 사회를 준비할 사람들은 남한과 북한의 대립 관계의 연속적인 역사의 맥락을 잘 모르는 무식쟁이라 하더라도, 평안도를 강원도처럼 지역의 하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어야 할 것이라고.

강원도에 원주민이 사는 것이 아니듯이 평안도에 가난하고 헐벗고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사람들이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젊은 사람들이어야 할 것이라고. 북한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한 어르신들은 한발 물러나도 좋을 것이라고.

남은 한 꼭지는 '통일노래방'이라는 것이다. 아주 오래된 동요이거나 민요의 가사를 맞추는 게임인데, 지난 일요일에는 '골목대장'이라는 노래가 제시되었다. 이 노래는 신고승 선생이 작사를 하였는데, 그분의 월북으로 남쪽에서는 홍난파 작곡의 '엄마도 아빠도'라는 노래로 바뀌어서 전해졌다고 한다. 게임에서는 신고승 선생의 원 가사를 맞추는 것이었다.

"어머니 날보고 꾸지람 마소, (………) 그리 죄 되오."

어린 소년이 엄마에게 무슨 일인가로 꾸지람을 듣고 입이 불뚝 튀어나온 상태가 연상되는 재미난 노래이다. 남쪽의 한 패널이 "다리 좀 떨었다고"라는 답을 제시하자 남이건 북이건 진행자건 할 것 없이 폭소가 한꺼번에 터졌다.

어쩌면 이런 것이다. 월북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역사적 접근, 물론 이런 것이 필요한 영역이 분명 있다. 그러나 그런 것과 무관하게 그저 노래나 부르다 보니 이렇게 순간적으로 설명 없이 소통되는 반짝이는 한순간이 생기는 것이다. 다리를 떨었다는 표현은 사과상자와는 다르게 남에서도 북에서도 소년들이 흔히 할 법한 불량한 짓을 나타내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싱거운 오락, 너무 훌륭하다

통일 이후의 사회를 준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어렵다고 미룰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해야 한다고 결심을 할 시기가 아니라 방법에 대해 열 불나게 고민하고 시도해 볼 시기이다. 하다 보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EBS의 <코리아, 코리아!>는 싱겁기 짝이 없는 오락 프로그램이지만, 이에 관해 훌륭한 시도를 하고 있다. 더욱 훌륭한 것은 4년째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할 것을 기대할 수 있다면 가장 훌륭한 일이다.

통일을 말하는 것이 진부해진 지금 진부하지 않은 방법으로 통일을 말할 수 있어야겠다. 군웅할거 하는 방송 프로그램들 중에서 숨어 있는 1인치 같은 프로그램이다.

덧붙이는 글 | 티뷰 기자단


태그:#방송 프로그램, #EBS, #코리아코리아, #통일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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