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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도서출판 한길사가 공동으로 주최한 <로마인 이야기> 독후감 대회 응모작입니다 <편집자주>
▲ 노무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정권 들어 대통령의 화법이 자주 구설에 오르고 있다. "대통령 못해 먹겠다", "재신임을 묻겠다", "미국인보다 더 친미적인 사람들" 등의 발언이 계속되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가를 운영하는 대통령직을 수행하다 보면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수없이 들 수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매일 퇴사 충동을 느끼는 직장인이 3명 중 1명이라고 한다. 대통령은 오죽하랴. 문제는 공인으로서 그것을 공개적으로 언급해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맹자에 "사람들이 말을 쉽게 하는 것은 말에 대한 책임감이 없기 때문(人之易其言也 無責耳矣)"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일반인들의 경우 말에 대한 책임감이 없어도 서로 멱살잡이 하는 정도로 끝나겠지만 대통령의 실언은 한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반란군, 카이사르를 따르고 알렉산데르를 떠나다

여기 유사한 상황에 처한 로마 황제들이 있었다. 폼페이우스파 잔당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제10군단 병사들의 반란을 접한 카이사르. 그리고 페르시아와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기강이 해이해진 동료들에게 가혹한 처벌을 내렸다며 항의하는 병사들에 둘러싸인 알렉산데르.

급료 일시불 지급이라는 타협안도 거절한 채 제대를 요청하는 병사들 앞에서 카이사르는 위병대도 거느리지 않고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좋다, 제대를 허락한다" 그는 반란 사병들을 '시민 여러분'이라 호칭하며 전쟁 종료 후 봉급을 지불할 테니 안전한 곳에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친절한 부탁까지 곁들였다.

적당한 타협안을 예상했던 반란병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10년 넘게 명예로운 카이사르의 최정예부대원으로 복무하다 갑자기 일개 '시민'으로 전락하자 충격에 휩싸였던 것. 결국 병사들의 반란은 없었던 일이 됐다.

반면 알렉산데르의 대처방법은 달랐다. 난생 처음 만난 반란 사병들 앞에 선 그는 로마 사병의 규율이 왜 중요한지 큰 목소리로 연설하기 시작했다. 일면식도 없는 황제가 늘어놓는 장광설에 사병들은 흥분하기 시작했고 황제에게 칼을 뽑아 들었다. 분노하는 사병들에게 황제는 "시민 여러분, 무기를 놓고 떠나라"고 외쳤다. 그러자 사병들은 정말로 무기를 놓고 황제의 곁을 떠나버렸다.

연설이라면 카이사르에 뒤지지 않는 지도자가 또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평전을 쓰기도 했었던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험 링컨이다. 그는 1863년 11월 게티즈버그 전투가 끝난 뒤 열린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아직까지도 세계인들의 입에 회자되는 명연설을 남겼다. 게티즈버그 전투는 미국 남북전쟁의 향배를 가른 최대 격전 중 하나로 전투가 지속된 사흘간 5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연설시간 2분 동안 고작 266개의 단어를 사용한 이 연설에서 그는 상대방을 탓하지도 자기편의 승리에 도취하지도 않았다. '국민의, 국민의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강조하며 앞으로 살아나가야 할 사람들이 지켜야 할 민주주의 가치를 제시했다. 압축적인 말 몇 마디로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가 아닌가 싶다.

보수언론 시비는 대통령의 말이 아니라 '자격'

'대통령의 말'을 둘러싸고 서로 으르렁대던 보수언론과 청와대가 최근 기자실 통폐합 문제로 정면충돌했다. 현재 정부 각 부처에 있는 기사송고실을 폐지 또는 축소하는 대신 브리핑을 내실화한다는 것이 기자실 통폐합의 골자다. 대다수의 언론은 이러한 정부의 정책을 두고 '언론 탄압'이라는 단어까지 동원하며 강력 반대하고 있다. 기자들의 취재를 근본적으로 제한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언론은 비양심적"이라며 계획대로 기자실을 폐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기자실 통폐합 문제가 채 봉합되기도 전에 한나라당 대선후보들에 대한 노 대통령의 비판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원광대 명예박사학위 수여 후 열린 특강에서 "(이명박 후보의) 감세론에 절대 속지 말라"며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직접 공격했다.

대통령 단임제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에선 "5년 단임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민주주의 선진국 아니다라는 증명"이라며 "쪽 팔린다"는 비속어를 덧붙이기까지 했다. 정권 초기 노 대통령이 평검사들과의 토론회에서 했던 말을 그대로 빌려 표현하자면 최근 노 대통령의 발언은 "이 정도면 막가자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실 노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은 표면적인 것일 뿐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권 초기부터 계속됐던, 조중동(조선, 중앙, 동아)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과 청와대 사이의 갈등이다. 노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이 씌운 '말 막하는 불안한 좌파'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다녔다.

실제로 그는 인권변호사 시절부터 강직하고 굽힘이 없는 성품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같은 이유로 선동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심지어 대통령 취임 이후 보수언론들은 정권초기에는 비판을 자제하는 이른바 '허니문 기간'조차 갖지 않고 즉각적인 정권 비판에 나섰다.

'YS 시리즈'를 탄생시킬 정도로 말실수가 잦았던 김영삼 대통령 시절, 언론들은 그의 거친 표현을 자체적으로 여과해 전달하곤 했다. 이에 비해 보수언론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는 푸대접을 넘어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까지 권력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정권 재창출에 한몫했던 보수언론들에게 깜짝 해프닝 같았던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은 악몽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대선이 있었던 2002년 12월, 이회창의 우세로 싱겁게 끝날 것 같았던 승부는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를 계기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회창 대통령'의 꿈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보수언론들은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표 전날 밤, 정몽준 후보가 갑작스레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를 철회했다.

예상치 못한 호재를 만난 <조선일보>는 '할 말은 하는 신문'이라는 이미지에 부합하고자 대선 당일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라는 사설을 통해 이회창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원했다. 사설에서<조선일보>는 후보 단일화를 코미디로 규정하고 유권자들에게 "지금까지의 판단 기준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뒤집을 것"을 요청했다.

자칭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신문이 대선 당일 아침 전국의 가정에 배달된 신문을 통해 특정 후보에게 투표하지 말 것을 대놓고 호소한 것이다. <조선일보>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막판 스퍼트를 한 노무현 후보가 대한민국 엘리트의 상징 이회창씨를 보란 듯이 꺾었으니 당시 보수세력이 받았을 충격이 가히 짐작 간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계속된 언론과 청와대의 갈등은 대통령의 '말'이 아닌 대통령의 '자격'을 둘러싼 논란이다. 보수언론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머릿속에 있는 지도자와는 소원한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한 국가를 운영하는 모습을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분노나 복수는 상대방을 대등하게 여기기 때문"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이전부터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던 보수언론들이 정권말기까지 발목을 잡는다는 생각에 기자실 폐지 등의 물리적 방법뿐만 아니라 직설적 화법을 통한 감정적 방법까지 총동원해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 대통령과 언론 사이에 당연히 오가야 할 정책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비판은 찾아보기 힘들고 오직 '말꼬리 잡기'만이 만연하는 형국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이야기> 5권에서 "분노나 복수는 상대를 자신과 대등하게 여기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고 일어날 수 있는 행위"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으로 따졌을 때 비교 대상이 없는 대한민국 최고 통수권자다. 모든 국가의 정책을 집행하고 조율하는 장관들의 임면권을 쥐고 있을뿐더러 70만 대군의 지휘자이기도 하다. 그가 던지는 말 한마디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좌지우지될 수 있다. 대통령과 언론은 동급이 아니다. 그 전에 승률이 얼마였던지 간에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인들의 '월드시리즈'인 대선에서 결국 승리를 차지했다.

루비콘 강을 건너 폼페이우스파와 공화정 지지세력을 무찌른 뒤 로마 황제에 등극한 카이사르. 그는 로마 제국의 기초를 닦으며 자신의 반대세력에 대한 살생부를 만드는 것조차 거부했다. 피 터지는 경쟁을 했던 라이벌 폼페이우스 추종자도 공화정을 지지하는 원로원 의원들도 모두 용서했다. 시오노 나나미의 의견을 빌리자면 이는 카이사르가 분노나 복수에 무관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우월성에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공포, 반동정치로 유명한 독재관 술라는 자신의 집권 기간 중 정적이 될 만한 세력들은 다 제거했다. 집권 과정에서 자신이 제거한 술키피우스와 마리우스 등을 지지하는 세력에 대한 불안감이 커서였다. 정적에 대한 공포를 공포정치로 해결하며 반대파들에게 더 큰 증오를 남긴 것이다.

지도자는 반란 사병들 앞에 선 카이사르와 같이 상대방의 수를 훨씬 앞서는 전략과 단어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게티즈버그 연설을 한 링컨처럼 국민들에게 군더더기 없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지도자의 말에 감정이 실리거나 내용이 길어지면 반대파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뿐이다.

보수세력과의 역학관계를 감안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지도자로서 최소한 사려 깊지 못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카이사르와 같이 말할 자신이 없다면 아예 입을 다무는 편이 낫다. 부족한 설득력과 언변으로 결국 부하의 손에 살해당한 알렉산데르 황제가 이를 증명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이나마 대외적인 발언을 자제하고 임기 마무리에 힘써야 한다. 국민은 지도자를 정책으로 평가하지 말로 평가하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로마인이야기 글쓰기 대회' 응모작입니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1995)


태그:#로마인이야기, #노무현,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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