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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에게 뒤떨어지고, 체력에서는 켈트족과 게르만인보다 약하고, 해운력에서는 그리스인만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유대인보다 가난하며, 문화력에서는 오리엔트인에 비해 미개하고, 경작력에서는 카르타고인에게 뒤떨어지는 평범한, 아니 더 뒤떨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로마, 자그마치 1500년 동안 지중해를 內海(내해)라 부르던 제국. 이 제국에 대하여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빌려 설명하고자 한다...<기자주>

로마는 아우구스투스가 제정을 창시하고 나서 5현제 시대 때 최고 절정기를 맞는다. 그러나 콤모두스 황제시절부터 서서히 쇠퇴하더니, 드디어 나라가 3등분 된다. 로마는 이를 기점으로 차츰 쓰러져간다. 로마를 다시 일으키려는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기독교가 다시 로마를 쇠퇴시키면서 로마는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마지막으로 멸망하고 만다.  로물루스는 로마를 건국한 사람이고, 아우구스투스는 제정을 만든 사람이다. 이 둘의 이름을 합친 사람이 로마의 마지막 황제라니... 아이러니하다.

로마는 이리하여 천년 세월을 살았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 세월을 살 수 있도록 했을까? 나름대로 정리해보면, 첫째, 관용정신이 있었다. 둘째, 계급이 유동성이 있었다. 셋째, 서로 협동했고, 국익을 우선했다. 넷째, 지도계급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가지고 있었으며, 다섯째, 가도와 수도를 만들었다. 여섯째로 꼽자면 많은 것을 민영화하여 정부를 작게 만들었고, 일곱째, 실패로부터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그 실패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배웠다. 여덟째,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인물이 등장했으며, 마지막으로 안정된 정치체제가 있었다.

관용! 로마는 건국 초기에 옆 부족들과 동등하게 합병을 했다. 로마의 기본 정신이자 이념인 동화ㆍ개방ㆍ포용ㆍ관용 정책은 이렇게 로물루스로부터 탄생한다. 그러나 로마도 카이사르가 등장할 무렵에는 이탈리아인 안에서의 평등을 주장하며 속주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카이사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속주민 유력자들에게 원로원 의석을 주고, 속주민에게도 시민권을 주고, 등용을 했다.

이 카이사르의 노력은 로마 최초의 속주출신 황제 트라야누스가 등장하면서 빛을 본다.  이것은 바로 로마가 식민 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카이사르 노선을 따라 동화정책을 완성한 이가 있다. 바로 카라칼라 황제! 카라칼라 황제는 모든 로마인에게 시민권을 주어 속주민과 로마인의 평등을 추구하였다. 로마가 강대해진 가장 큰 이유는 이 관용정책이 아닌가 싶다. 비유하면, 영국이 인도를 무조건 식민지배한 것이 아니라, 영국 의회 의석을 주었다고나 할까?

종교에서도 로마는 관용적이었다. 로마는 기독교가 지배하기 전까지는 다신교 국가였는데, 종교에 관해 다신교였다는 것은 그만큼의 관용을 의미한다. 그러니 속주민들도 로마를 잘 따르고, 종교 전쟁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등장하고 나서부터는 종교가 폐쇄적이고,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종교전쟁도 자주 나고, 마녀사냥 같은 일도 일어난 것이다. 이 시대 우리들의 종교는 어떠한가. 우리는 타종교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자신의 종교가 존중받기를 바란다면, 다른 종교도 존중해야 할 것이다.

로마의 계급, 그리고 의리와 협동심

로마가 발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계급의 유동성화에도 있다. 사람들이 알기에 로마는, 소수의 자유 시민과 다수의 노예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조금 달랐다. 로마의 노예는 자유를 돈으로 사든 어쩌든 해방이 되어 노예출신으로 원로원에 들어간 자가 있을 만큼 계급의 유동성이 강한 사회였다. 로마는 시민권 영역을 넓히는데 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로마에선 모든 시민, 귀족들이 군대에 자원했다. 그리고 귀족과 평민이 정치투쟁을 하다가도 전쟁이 나면 어김없이 협력하여 적을 무찌른다. 우리나라는 지도자들이 국민에 신뢰를 주지 못하므로, 국민들이 국가를 믿지 못하고, 결국 국론이 통일이 잘 안 된다. 결국 모든 문제의 출발은 '정치를 어떻게 하느냐?'인 것 같다.

노블리스 오블리주, 나는 이것을 로마의 정신이라 부른다. 로마는 실패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항상 모든 곳에 신참자가 들어가고, 모든 시민들이 군대에 자원했으며, 그리고 지도층은 바로 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가졌다. 로마의 지도계급은 이 '정신'으로 자기가 공을 세우고 돈을 벌면 공공건물을 기증, 보수했다. 후기에는 이것이 없어 로마가 멸망하지 않았나 싶다.

나라가 없어도 정신이 살아있으면 언제든 부활할 수 있다. 로마의 정신을 잊지 않았던 이들은, 야만인이라고 불리더라도 그 정신을 이어서 로마를 유지할 수 있다. 그 예로 로마 멸망기에 오랫동안 로마를 지킨 스틸리코(반달족 출신)가 있다. 우리는 이게 뭔가. 여기저기서 횡령이 난무하고, 세금을 이상한 데다 쓰고 있다. 우리도 로마의 반만큼만 했으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는 가도의 나라다. 가도를 처음 만든 것은 로마가 아니지만, 가도를 네트워크와 한 것은 로마가 처음이다. 로마는 이렇게 함으로써 지중해 세계와 로마를 연결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했다가는 외적의 침략을 되레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한니발이 로마에 쳐들어왔을 때 로마 가도를 따라 쳐들어온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군사를 신속하게 옮기고, 황제의 칙령을 온 제국에 전달할 수 있으므로 중앙집권이 쉬워지고, 반란을 신속히 진압할 수 있는 편리한 것이다. 이 로마가도는 로마를 성공하게 한 직·간접적 요인이다.

로마는 로마 안에서 종사하는 모든 의사와 선생에게 로마 시민권을 줌으로써 국립학교와 국립병원을 만들지 않고 모든 것을 민영화했다. 민영화라면 무조건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모든 것을 국가가 관리하면 세금이 오르고, 국가가 커질 수 있다. 이것을 알고 로마는 군사, 중앙정부, 가도공사를 뺀 모든 것을 민영화한 것이다. 심지어 지방에서 세금을 걷는 일마저도 민간에 맡겼다. 그러니 자연히 국가의 크기가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간접세, 직접세, 부가가치세 등 세금이 너무 많다(사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우리나라가 북유럽의 사민주의 국가에 비해서는 많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느냐 하는 것이다. 세금을 잘 쓰지 못하는 게 정말 문제이겠지). 더군다나 공무원이나 군사인력, 복지 인력도 비대하다. 우리도 로마처럼 모든 것을 민영화하진 않더라도 많은 것을 국가에 맡기는 것에 대해선 생각을 좀 해봐야지 않을까? 우리가 로마처럼 노블리스 오블리주만 잘하면 될 일 같다.

실패로부터 배운다

로마는 언제나 무언가를 배웠다. 그리고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삼니움족(이탈리아의 부족)과의 전쟁에서 투창을 도입하고, 에스파냐에서의 전쟁에서 양날단검을 도입했으며, 로마를 침략한 한니발에게서 포위전술을 배웠다. 로마를 침략한 에트루리아족(이탈리아의 부족)에게서 토목기술, 가도기술을 배웠으며, 그리스 인에게서 항해술을 배웠다.

로마도 실패를 했다. 그러나 로마는 실패에서 뭔가를 배워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새로운 전술과 전략을 짜서 임했다. 그래서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았던 것이다. 역사로부터 개인도 배울 게 참 많다는 생각을 한다. 이 부분은 내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계속 같은 실수를 범할 때마다 되새기게 된다. 그러면서 실수를 줄여갈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게 될 것이라 믿는다.

로마의 기적

어머니는 산골에 사는 우리가 날마다의 기적을 체험하면서 산다고 하신다. 작게는 어머니의 옷이 지퍼가 망가졌는데, 우연히 친구가 선물해준다든지 하는 것들이고, 크게는 내가 손목을 베였는데, 딱 동맥 막까지만 베인 것을 들 수 있다.

로마도 자주 기적을 체험한다. 한니발 전쟁때는 스피키오 아프리카누스가 로마를 구했고, 로마가 공화정으로 망하려고 할 때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나타나 공화정을 제정으로 바꾸었으며, 로마가 멸망기를 맞아 로마가 3등분 되었을 때는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나타나 로마의 명을 연장했다.

만약 카이사르가 왕정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무런 업적 없이 죽었을 것이다. 모든 인물은 시대에 맞게 태어나야 한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지금 시대에 도로를 많이 만들고, 강을 일직선화 하고, 군대를 강화하는 것은 국가가 발전할 때는 나쁘지 않은 정책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에는 필요가 전혀 없는 정책이다. 한국의 지도자들이 이것을 알고, 지금이라도 시대에 맞는 정책을 펼쳐줬으면 좋겠다. 로마는 대부분의 인물이 시대에 맞게 태어났으니,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왕정이냐, 과두정이냐, 공화정이냐

로마는 로마 중기에 카이사르가 로마를 제정으로 바꾸기 전 약 500년 간 공화정이었다. 민주정을 하면 투표를 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아테네 같은 작은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왕정을 하면 자칫 독제체제가 될 수 있다. 과두정을 하면, 의견이 안 모인다.

결국 로마는 이 세 가지의 장점을 따와 집정관, 원로원, 민회를 만들어 정치를 한 것이다. 지금의 민주주의도 이와 다르지 않다. 대통령, 국회, 그리고 국민이 하는 투표. 민주정, 제정, 과두정의 장점을 따온 것이다. 역시 로마는 어디서나 시대를 앞서간다.

이렇게 하여 로마는 천년이나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나간 역사이지만 로마로부터 이 시대에도 여전히 배울 것이 이렇게 많다. 특히 이 책은 오늘의 한국정치에 더욱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정치인들은 이 책을 보면서 반성 좀 해야 할 것이다. 로마를 통한 배움으로 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류옥하다 기자는 열세 살 학생기자입니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1995)


태그:#로마인 이야기, #로마, #시오노 나나미, #제국주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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