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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뭐야 이거?"

"글쎄, 무덤 같은데?"

"가만, 의구총? 많이 들어본 건데?"

"어라! 여긴 우리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배웠던 바로 거기잖아!"

"아하 그렇구나. 세상에나, 의구총이 바로 여기 있었네."

 

지난 6일,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자주 갔던 구미시 해평면 '도리사'를 지나 일선리 쪽으로 갈 때였어요. 찻길 가에 '의구총'이란 알림판이 있어 자전거에서 내려 들어갔지요.푸른 잔디가 가지런하고 그 길을 따라 가면 안내판이 있어요. 아 글쎄, 여기가 바로 어렸을 때 교과서로 배웠던 그 '주인을 구한 개'의 무덤이지 뭐예요. 참 놀라웠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얘기가 담긴 '의구총'이 이토록 가까이 있다는 게 놀랍고, 또 여기를 몇 번이나 지나다녔는데도 미처 못 보고 그냥 스쳐 갔다는 게 더욱 그랬어요.

 

개가 술 취한 임자를 살리려 불을 끄다

 

경상북도 민속자료 105호인 이 의구총은 주인을 구한 '의로운 개'를 기리는 무덤이에요. 그 옛날, 해평면 산양리에 사는 '김성발'이라는 사람이 누렁이 개 한 마리를 길렀는데, 참 영리하고 주인 말을 아주 잘 들었대요.

 

하루는 개 임자가 술에 취해 길가에서 잠이 들었는데, 그만 들판에서 불이 났어요. 이것을 본 누렁이는 주인이 위험하다는 걸 알아차리고 멀리 떨어진 낙동강에 가서 제 몸에 물을 적셔와 불을 끄기를 여러 차례 거듭 했어요. 그러다가 탈진하여 그만 죽고 말았지요. 뒤늦게 깨어난 개 임자는 그제야 깨닫고 죽은 누렁이 시체를 거두어 정성스레 묻어주었대요.

 

훗날 사람들이 개의 의로움을 기려 무덤을 좀 더 크게 다시 손보고 다듬었다고 하네요. 또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들은 선산부사 '안응창(1665년 현종 6)'이 '의열도'에 이것을 쓰고, 뒷날 화공이 화강암에 네 폭짜리 '의구도'를 만들어 누렁이 죽음을 기렸다고 해요.

 

지금은 지난날에 도로공사를 하다가 한쪽이 깨진 것을 이곳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산 148번지로 새롭게 옮겨와 지금까지 그 뜻을 기리고 있어요.집으로 돌아온 뒤, '의구총'에 얽힌 이야기를 찾다가 의롭게 죽은 또 다른 짐승 이야기를 알게 되었어요. 그건 바로 '의우총'인데요. 여긴 소가 임자를 살린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그 다음 주인 지난 13일, 이번에는 의로운 ‘소 무덤’을 찾아갔어요.

 

소가 호랑이와 싸워 주인을 살리다

 

아직 여름도 안 왔는데, 벌써부터 햇볕이 따갑고 땀이 많이 나요. 자전거 발판을 힘겹게 밟으면서 '소 무덤'을 찾아가는 길에 오토바이 여러 대가 지나가며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어주네요. 아마 동호회 식구들인 가봐요. 길에서 만난 낯모르는 사람인데도 자전거를 타는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어주니, 더워서 힘들었던 기분도 싹 가셨어요.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에 있는 '의우총(경상북도 민속자료 106호)'은 산동 '경운대학' 둘레에 있고 길가에 알림판이 있어 길 찾기가 매우 쉬웠어요. 여기도 '의구총'에서 본 모습과 거의 비슷했는데, 들판 가운데 있는 게 조금 달라요. 무덤 앞에 작은 빗돌이 있고, 무덤 뒤로는 돌에 새긴 그림 여덟 폭이 병풍처럼 서서 의로운 소의 죽음을 기리고 있어요. 이 앞을 오가는 사람들 눈에 쉽게 띄어서 더욱 좋더군요.

 

이 의로운 소는 산동면 인덕리에 사는 '김기년'이란 사람이 집에서 기르는 소와 함께 밭을 갈다가 갑자기 나타난 호랑이에 맞서 싸워 임자의 목숨을 구했다고 합니다. 충성스런 소 때문에 살았지만 그때 다친 자리가 덧나 며칠 뒤에 소 임자는 죽고 말았대요. 그때, '나중에 소가 죽으면 내 무덤 곁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안타깝게도 주인이 죽자 소도 먹이를 먹지 않고 시름시름 앓다가 뒤따라 죽었어요. 소 무덤은 봉분과 빗돌이 부서진 걸 새롭게 고치고, 지난날 화공이 남겼던 '의우도'를 화강암에 다시 새겨 이 '의우총'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오죽하면 '개만도 못한 놈'이란 말을 할까?'

 

의구총'과 '의우총'을 둘러보면서, 집에서 기르는 한낱 짐승이 위험에 빠진 임자를 살린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했어요. 요즘 심심찮게 들려오는 뉴스를 들으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부대에 들어가지 않는 군인 아들을 나무라는 어머니를 아파트에서 밀어 떨어뜨려 숨지게 하고, 일흔 넘은 늙은 어머니가 잔소리한다고 때려서 숨지게 한 아들 이야기….

 

부모를 죽이고 제 식구를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고 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말로 답답해요. 오죽하면 '개만도 못한 놈'이란 이야기가 나왔을까 싶네요. 하다못해 집짐승도 자기를 길러준 사람한테 목숨을 바치며 은혜를 갚을 줄 아는데 말이에요. 개나 소나, 어찌 보면 하찮은 짐승이지만 때로는 은혜를 모르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이 있어요.

 

개 무덤, 소 무덤 다 봤는데, 사람 무덤 이야기도 해 볼까요?

 

의로운 개와 소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 정작 사람 무덤도 빠뜨릴 수 없겠죠? 그래서 구미시 낙산리에 있는 '낙산리 고분'도 잠깐 소개해 볼게요.의구총이나 의우총 만큼 남다른 얘깃거리는 없지만, 사적 336호인 낙산리 고분은 무덤 둘레와 봉분 크기가 매우 커요. 원 삼국시대(3세기)부터 통일신라시대(8세기 쯤) 때까지 있는 여러 가지 모양의 무덤인데요.

 

205기나 되는 큰 무덤이 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요. 이곳은 발굴조사만 세 차례 했다고 하는데, 토기, 칼, 장신구 같은 유물이 많이 나왔다고 해요. 무덤의 크기와 유물들을 살펴볼 때, 내가 사는 구미는 예부터 매우 큰 세력과 남다른 문화를 꽃피웠던 곳이구나! 하고 놀랐답니다.이번에 무덤 몇 곳을 둘러보며 느낀 게 참 많아요. 주인을 살리려고 애쓰다 죽어간 짐승 이야기도 무척 감동이었지만, 무엇보다 가까운 곳에 이런 소중한 문화재가 많이 있다는 게 참 놀라웠어요.

 

하지만 정작 가까이 사는 사람은 이런 문화재가 있다는 걸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웠어요. 둘레 사람한테 의구총이나 의우총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거의 모두가 듣기는 했는데 잘 모른다고 했어요.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그런가요? 조금만 더 마음을 기울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덧붙이는 글 |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의구총, #의우총, #낙산리고분, #문화재, #의로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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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자전거는 자전車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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