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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인 이야기> 완간 기념 '저자와 출판사와 독자를 위한 밤' 행사가 지난 13일 헤이리 북 하우스에서 열렸다.
ⓒ 오마이뉴스 조경국
1995년 9월, 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가 출간된 이후 250만 한국 독자의 세계사 지평을 넓혀준 <로마인 이야기>가 지난 5일 15권 '로마 세계의 종언'을 끝으로 완간되었다.

대학졸업 뒤 로마의 매력에 빠져 이탈리아로 건너가 40년 동안 '로마'를 파고 든 '만년필주의자' 시오노 나나미의 15년 작업이 비로소 큰 매듭을 지은 것이다.

200자 원고지 2만3000매를 만년필로 채운 시오노 나나미의 역작 <로마인 이야기>는 일본 내에서만 540만부가 넘게 팔렸으며, 국내에서도 538쇄 250만부가 팔린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국내에서 <로마인 이야기>가 이렇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작품을 도맡아 출판했던 한길사의 노력과 우리말로 매끄럽게 갈고 다듬어 옮긴 번역가 김석희씨의 공이 컸다.따라서 <로마인 이야기> 한국어판의 주인공엔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 뿐 아니라 출판사, 번역가, 독자까지 포함되는 셈이다.

지난 14년 동안 한국인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제와 인프라 정신'이라는 화두를 던져준 <로마인 이야기>의 완간을 축하하는 모임인 '저자와 출판사와 독자를 위한 밤'이 13일 저녁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 북 하우스에서 열렸다.

▲ 한길사 김언호 대표.
ⓒ 오마이뉴스 조경국
모임을 주최한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70~80년대 출간한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더불어 14년이라는 오랜 기간동안 기획·출간된 <로마인 이야기>는 한국인의 의식을 바꾼 출판물이었다"며 "<로마인 이야기>는 저자 뿐 아니라 시대가 함께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출판사, 번역자, 독자가 함께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으며, 이 책을 만드는 과정은 하나의 '축제'였다"고 소회했다.

김 대표는 "이제 <로마인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로마인 이야기>를 딛고 우리 책들을 어떻게 만들어 낼까 고민하는 게 중요한 시점"이라며 "<로마인 이야기>보다 잘 팔리는 책을 만들어 인문학을 살릴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14년 동안 <로마인 이야기>와 동고동락하며 1997년 1회 한국번역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번역가 김석희씨는 "1995년 시오노 선생의 <로마인 이야기>를 만난 후, 창작도 중요하지만 번역을 제대로 하는 것도 사회에 이바지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좋은 작품을 가지고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번역작업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번역가로서 행운이었다"며 "이 행운은 출판사의 뒷받침과 독자들의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를 따라 갈리아 전선으로 떠났다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온 늙은 로마병사에 비유하기도 했다.

모임에 참석한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는 "로마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로마인 이야기>도 하루아침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고 운을 뗀 뒤 "동양여성이 평생을 바쳐 서구문화의 뿌리에 접근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며, 이 책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명멸해온 '제국'과 '제국주의'를 포괄적인 개념으로 분석하고 인류문명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저작"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이날 모임에는 <한국사 이야기>의 저자 이이화, 정상우 YES24 대표, 서양사학자 이광주 교수 등 학계·출판계 인사와 독자 40여명이 참석해 <로마인 이야기>의 완간을 축하했다.

▲ 행사장 전시된 <로마인 이야기>를 비롯한 시오노 나나미의 한국어판 저작들.
ⓒ 오마이뉴스 조경국

<로마인 이야기>11권을 단숨에 읽다
[기고]박원순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사실 <로마인 이야기>에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 권의 책도 제대로 읽을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형편에서 11권(내가 읽을 당시에는 11권까지만 간행되어 있었다)을 몽땅 읽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마인 이야기>를 가방에 집어넣고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기 시작하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일단 첫 권을 단숨에 읽고 그날 밤부터 서울로 돌아오기까지 주제발표를 한 시간을 빼고는 <로마인 이야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틈만 나면 읽으면서 일주일이 되지 않아 모두 읽고 말았다.

"로마는 세상을 두 번 통일했다. 한 번은 영토를 통일했고 또 한 번은 법률로 통일했다"는 말이 있다. 법학도로서 민법이나 법학의 주요 개념과 용어가 로마법에서 유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로마는 법률이 아니라 더 세세한 '매뉴얼 국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사소한 일까지 모두 규정에 맞게 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위대한 장군이었지만 그가 죽으면서 대제국 마케도니아도 멸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로마의 장군이 전투중에 죽어도 로마군은 끄떡 없었다.

왜냐하면 그 다음 지휘자로서 계승할 사람이 누구인지 다 정해져 있었고, 전투와 행군, 숙영의 모든 방법이 세밀히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또 하나 전율한 것은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 황제는 노예와 함께 돌을 등에 지고 로마의 언덕을 오르내렸으며 또 다른 황제는 평생 변방의 전투지역이나 식민지역을 돌아다니며 군인들을 위로하고 수비태세를 살폈다. 전쟁이 일어나 함선을 만들고 전쟁비용을 위해 돈이 필요할 때 로마의 유력자와 원로원 의원들은 기꺼이 국채를 사 전비를 댔고, 자신의 자식을 기꺼이 전쟁에 내보냈다.

호화로운 궁전에서 사치생활을 하다가 반미치광이가 되어 로마를 불태우며 기뻐한 '네로 황제'를 연상한 필자로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황제와 귀족과 유력층의 헌신과 봉사, 기부와 희생의 수없는 사례와 문화, 전통을 보면서 로마가 천 년을 넘게 존속한 이유를 확연히 짐작할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작은 도시국가 로마에서 점차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나아가 오늘의 프랑스나 이베리아 반도, 독일을 포함한 게르마니아 지역, 영국까지 점령하는 과정에서 로마는 복속된 주민들을 지속적으로 포섭하고 포용해나갔다.

속주의 지배계층은 로마의 원로원으로 포섭되었고 심지어 그 가운데 황제가 된 사람도 여럿 있었다. 이런 포용의 정책 속에서 로마는 고대 지중해와 대서양의 거대제국을 건설하며 보편적 세계질서를 형성했던 것이다.

로마는 사실 2천 년 전, 까마득한 옛날에 존재했던 고대왕국이었다. 그러나 그때 꽃피운 문명과 인류의 지혜는 오늘날과 비교해보아도 별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로마인 이야기>에는 천 년을 지속한 거대한 국가, 강성한 제국의 건국과 성장, 쇠퇴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라고 역사학자 E. H 카는 이야기했다.

로마 제국은 바로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로마인 이야기>는 가르쳐주고 있다. 이제 제15권까지 출간되었다니 나머지 책을 읽어야겠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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