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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를 앞둔 한국의 한 백화점.
ⓒ 김혜원
"한국 백화점의 여직원들은 너무나 친절합니다. 백화점에 가보고 놀랐습니다. 일본에서는 그러지 않습니다. 한국 여직원들은 예쁘고 친절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친절합니까?"

지난 8월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한국을 여러 번 다녀왔다는 한 일본인이 나에게 물어온 질문이다. 예쁘고 친절한 여직원들이 깍듯하고 싹싹하게 손님을 응대하는 게 보기에는 좋았지만 지나치게 아는 척을 해 호객 행위처럼 느껴져 부담스러웠다는 것.

이 말을 들었을 때 무척 당황스러웠다. 한국 백화점의 친절한 태도가 일본에서 넘어온 것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일 아줌마 이구동성 "백화점 너무 비싸요~"

@BRI@사실 일본인하면 '친절'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친절이 국민성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친절제일국가'라는 일본의 백화점 친절은 어떻길래 한국 백화점의 친절이 부담스럽다는 것일까?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시민 친구 만들기' 행사에서 일본 백화점을 직접 취재했다.

크리스마스가 끼어 있는 12월은 한국 백화점들에겐 대박 시즌이다. 평월 대비 20% 가까이 매출이 오른다고 한다. 일본 역시 한국과 다르지 않다.

사실 일본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가장 성대하고 시끌벅적하게 치르는 나라 중 한 곳이다. 지난 16일 일본의 '오바상(아줌마)' 시민기자 3명과 한국의 아줌마 시민기자 5명이 도쿄 신주쿠의 이세탄 백화점과 다카시마야 백화점을 찾았다. 토요일인 데다가 연말연시 시즌까지 겹쳐 두 곳 모두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이 붐비고 있었다.

"백화점을 자주 찾지는 않습니다. 주로 집 근처 대형마트를 이용하지요. 백화점에 온 것이 언제인지... 오래 전인 것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백화점보다는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편이고요. 백화점에는 선물을 사기 위해서 가끔 가지요. 선물은 포장지(백화점 포장지)가 중요하거든요. 호호."
"저는 주로 명품 브랜드를 구입하기 위해 백화점을 찾는 편이에요. 마트에서는 살 수 없는 것들을 사기 위해서 갑니다. 백화점에서만 파는 상품, 백화점에서만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이 있거든요."

이번 한일 시민 친구 만들기 행사에 참가한 3명의 오바상 기자 마츠야마 노리코씨와 코무라 토모코씨, 와타나베 마리코씨 모두 백화점을 애용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값싸고 좋은 물건을 파는 대형 마트가 집 근처에 있기 때문에 일부러 백화점까지 오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 때문에 한일 백화점의 친절도를 비교해 보자는 취재 제안에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한국인 시민기자 이명옥, 한미숙, 안소민, 김미영씨도 자주 백화점을 찾는 편은 아니라고 했다. 보아 뒀던 물건을 세일이나 행사 기간을 이용해 구입하는 정도지만 윈도쇼핑이든 구매를 하든 백화점은 좋아한다고 했다. 백화점 출입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가격. 대형 마트에 비해 비싼 가격이 부담이라고 한일 시민기자 모두 지적했다.

나에게 친절을 베풀지 마세요?

▲ 이세탄백화점의 시식 코너. 직원들의 친절한 안내가 인상적이었다.
ⓒ 안소민
한일 아줌마 시민기자들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이세탄 백화점. 도쿄 사람들이 가장 즐겨찾는 백화점이라고 한다. 지하철 출구와 곧장 연결된 지하 1층 매장은 식품매장이었다. 한국과 비슷하게 시식 코너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이거 맛 좀 보세요. 고사리로 만든 일본 전통 떡인데 맛있어요."
"이거 먹으면 사야 되지 않나요? 우리가 다 먹으면 적은 양이 아닌데..."
"아니요. 안 사도 돼요. 그냥 편하게 드세요. 한국에선 먹으면 사야 되나요?"
"꼭 그렇치는 않지만 먹고 안 사면 눈치가 보이잖아요. 호호."

시식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면서도 백화점 직원의 눈치를 보는 아줌마. 하지만 일본 백화점 시식코너는 인색하지 않았다. 특히 일본은 시식코너와 구매를 연결시키지 않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인 듯했다.

식품매장의 각종 시식 코너에서 배를 채운 후 백화점 맨 윗 층부터 내려오면서 직원들의 응대 모습을 살펴보기로 했다.

고객들에게 호객 행위를 하기도 하는 식품매장과는 달리 의류나 잡화, 가전, 가구 매장의 직원들은 자신의 자리를 얌전하게 지키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국 백화점에 비해 너무나 모른 체하는 것 아닌가? 그래도 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어 일본 주부들에게 물으니 의외의 대답이 나온다. 고객 입장에서는 모른 체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는 것.

"몇 년 전 일본의 한 백화점은 손님들이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기도 했어요. '말 걸지 마세요. 필요하면 내가 부르겠습니다'라는 글이 적힌 스티커였지요. 모른 척하는 것도 친절이라는 거지요."

엘리베이터 걸 대신 엘리베이터 할아버지, 든든해요

▲ 어린아이를 둔 부모에게 필요한 모든 시설이 갖춰진 유아 휴게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쇼핑을 좀 더 편하게 하려는 백화점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었다.
ⓒ 안소민
백화점 친절이라고 하면 안내 데스크 직원, 주차 안내 도우미, 엘리베이터걸 등이 있다. 일본 백화점에도 같은 일을 하는 직원들이 있었다.

'백화점의 얼굴'이라고 하는 안내 데스크. 하지만 일본의 안내 데스크 직원들의 얼굴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 특별한 용모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외모를 하고 있었다. 주차도 주로 남자직원들이 도우미로 나서고 있었다. 한국의 백화점처럼 요란한 치장을 하고 현란한 손짓을 해대는 여성 도우미는 볼 수 없었다.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다카시마야 백화점의 엘리베이터 도우미였다. 백발의 할아버지들이 그 일을 하고 있었던 것.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할아버지들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따뜻하고 친절한 미소로 줄서기를 도와주고 있었다. 위험스러울 정도로 짧은 치마를 입고 인형 같은 미소를 지으며 특이한 동작과 목소리로 안내를 하는 한국의 엘리베이터 걸과는 대조적인 광경이었다.

유아용품을 파는 층에 올라가니 굉장히 큰 규모의 유아 휴게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아내들의 편안한 쇼핑을 위해 아기들을 돌보고 있는 아빠들로 가득했다. 아빠들은 익숙하게 아기들에게 젖병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았고 휴게실은 아기 돌보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이 또한 백화점을 이용하는 고객들에게는 또 다른 친절일 것이다.

▲ 우리들을 사로잡은 일본의 과자들. 제과제빵의 강국답게 화려한 색깔의 과자들이 즐비했다.
ⓒ 안소민
짧은 백화점 구경을 마친 다음 한일 주부들이 간단하게 소감을 교환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백화점을 이용하는 주부들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담이 되지 않는 친절을 베풀어 달라'는 것. 부담만 주는 과장된 인사나 미소, 목소리, 용모보다는 교환, 환불, A/S가 중요하다는 것. 특히 좀 더 할인을 해주거나 쿠폰을 제공한다든가 하는 실질적인 혜택을 가장 큰 요구사항으로 꼽았다.

한국인 아줌마 시민기자들이 가장 부러워한 부분은 엘리베이터 할아버지들이었다. 나이드신 할아버지들을 엘리베이터 안내로 재취업 시킨 것이야 말로 백화점의 따뜻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분들의 따뜻한 미소와 인사, 훈훈함이야 말로 백화점의 진정한 얼굴이라고 할 만했다.

젊고 멋진 사람들만 도우미로 쓰는 한국의 백화점들. 앞으로는 사회 공헌까지 고민하길 기대해 본다.

"먹을 것과 꽃미남, 이것만 있으면 돼"
일본 도쿄를 접수한 한일 주부 시민기자들

▲ 한일 시민 친구 만들기에 참여한 주부 시민기자들.
ⓒ김혜원

역시 밥을 같이 먹어야 사람은 친해진다. 현장 취재 나가기 전 오마이뉴스 재팬 사무실에서 도시락을 먹고 백화점에 도착해서는 식품매장 시식코너를 휩쓸고 나니 어느새 우리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역시 주부들의 심정은 국경을 초월했다. 일본 역시 주부들의 주된 관심사는 먹을거리였다. 좋은 물건을 싼 값에 하나라도 더 사려고 이리저리 꼼꼼히 따지고 재는 모습은 한국 주부들과 같았다.

때마침 백화점 식품매장에는 시식 코너가 한창이었는데 일본 시민기자들은 쑥스러워하는 한국 주부들을 위해 시식코너에서 직접 음식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와타나베 마리짱은 한국 기자들에게 요쿠르트를 선물로 안겨주기도 했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외식 횟수가 갈수록 증가하고 인스턴트 음식을 즐겨 먹는 경향이 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주부들의 고민거리도 늘어나고 있단다.

역시 백화점은 조금만 돌아다녀도 피곤해진다. 가까스로 백화점 취재를 마친 뒤 가까운 커피숍으로 이동해 본격적인 수다에 돌입했다. 이 자리에서는 영화나 소설, 드라마 등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 정말 좋아해요." - 한국 주부 시민기자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신문연재됐던 소설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좋아해요. 츠지 하토나리가 쓴 것보다는 공지영이 쓴 게 더 좋던 걸요." - 일본 주부 시민기자

특히 인기그룹 <동방신기>나 이준기, 송승헌, 조승우와 같은 배우에게 열광하는 일본 주부들을 보면서 한류 열풍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한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일본 영화(이와이 슈운지의 <러브레터>)가 정작 일본인 사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는 것을 보며 한일의 정서나 감성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정서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 자체로도 큰 수확이었다. 서로가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이 바로 큰 기쁨이었다. 물론 처음 만났을 때는 한일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한 데다가 언어까지 통하지 않아 서먹서먹했다. 하지만 나중에 헤어질 때는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으며 훗날을 기약했다. 내년 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을 친하게 한 '아줌마'라는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여담 하나. 취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주부 기자단 일부가 신쥬쿠역에서 혼잡한 인파에 떠밀려 잠시 길을 잃게 됐다. 헤어진 지 30여 분이 지난 후 다행히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마주잡은 손 끝에서 전해지던 반가움과 안도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 안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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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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